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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규 교수의 '마한 이야기'] 마한역사 기록관 '나주 복암리 3호분' (상)

나주 복암리 전경 
나주 복암리 전경 

나주 복암리 3호분은 몇 년전에 KBS의 역사관련 다큐프로그램에서 “아파트형 고분”으로 소개되어 많은 관심을 끈 바 있다. 그것은 하나의 분구(墳丘) 내에 41기의 매장(埋葬)시설들이 마치 아파트처럼 중층 구조로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특징을 잘 묘사한 제목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복암리 3호분은 마한 분구묘의 속성 가운데 가장 마한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곧 혈연을 기반으로 하나의 분구 내에 무려 300〜400년의 시간 폭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매장이 추가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특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매장부의 구조가 변하고 있는 점이 잘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마한의 정치 사회문화를 살펴 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유적으로서 가히 ‘마한역사 기록관’ 또는 ‘마한 박물관’이라 불릴 수 있을 정도이다.

나주 복암리 3호분 발굴 전경
나주 복암리 3호분 발굴 전경

나주 복암리 고분군은 주변의 경지정리가 되기 이전에는 7기가 자리잡고 있어서 七造山이라 불렸으나 경지정리 과정에서 3기는 훼손되고 현재는 4기만이 남아 있다. 이와 같이 대형 분구묘가 저평한 구릉에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마치 산으로 보였던 것으로 이를 인위적으로 조성된 산이라는 의미에서 조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3호분은 1996년에서 1998년에 걸쳐 전남대학교와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서 전면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 졌는데, 조사가 한창 이루어지던 시점인 1998년 2월에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사적 404호로 지정되었다.

나주 복암리 3호분 매장시설 노출상태
나주 복암리 3호분 매장시설 노출상태

이 고분의 분구 규모는 동서 36m〜38m, 남북 37m〜42m, 높이는 6m 정도이며, 평면 형태는 방대형을 이루고 있다. 분구의 하단 주위에는 주구가 돌려져 있는데, 경작으로 인하여 일부가 훼손된 상태였다. 이와 같이 거대한 분구를 갖추게 된 것은 오랜 기간 매장이 이루어지면서 평면적으로 확장되고 상하로 중첩이 이루어진 결과로 판단된다. 곧 조사 결과에서 확인된 분구 조성이전의 선행기와 분구 조성은 2차에 걸쳐 이루어진 3단계를 거친 것으로 층서관계를 통해 파악되었다. 또한 각 단계마다 매장부의 구조에 따라 다시 2〜3단계로 세부적인 분기 설정이 가능하였다.

선행기는 방대형 분구 조성 이전에 사다리 모양의 분구묘가 주구를 통해 확인되는데, 매장 시설로는 옹관과 목관이 사용되었다. 방대형 분구 조성 1기는 선행기의 분구를 조정 확대하여 축조한 것으로 기존의 분구형태를 유지하면서 주구 및 옹관의 사이의 공백을 메웠다. 1기 분구 조성과 함께 안치된 매장시설은 96석실, 수혈식석곽, 옹관 등이다. 분구 조성 2기에는 방대형 분구 완성이후, 성토층을 되파기하여 묘광을 설치한 후 옹관, 횡혈식석실, 횡구식석실, 석곽옹관 등 다양한 매장시설이 보이고 있다.

나주 복암리 3호분은 분구 축조과정 및 매장시설에서 마한 분구묘의 속성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성격을 규명함으로서 마한의 정치와 사회문화의 변화를 추적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최완규(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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