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전에 한국은행 전북본부가 주최하는 도내 고교생의 여름방학 경제학 교실에서 <위대한 경제학자의 사상>이란 주제로 강의했다.
PT 첫 화면은 아일랜드 대서양 끝에 깎아지른 듯한 모허(Moher) 절벽으로 장엄하게 채웠다. 이 곳은 지구가 사각으로 평평하다고 생각했던 시대의 서쪽 끝이었다. 가까이 가면 배와 사람들이 거대한 폭포수 아래로 추락하였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다. 마침내 지구가 둥글다고 믿는 한 사람이 앞장섰다. 이제 지구의 끝은 둥근 지구에서 저 너머 다른 세계로 떠나는 출발점이 되었다. 생각을 바꾸자 영토는 아스라하게 넓어졌다.
위대한 경제학자들도 새로운 비전과 관점으로 세상을 바꾸었다.
몇 장의 슬라이드가 넘어가 1929년 대공황을 맞는 어두운 장면에서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종전의 시장경제에서는 예를 들어 빵을 만들어 공급하면 무조건 팔려서 종업원 임금, 우유와 밀가루 비용, 임대료를 즉각 지급할 수 있었다. 이렇게 빵집이 지출한 생산비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득으로 돌아가서 빵을 사먹는 수요를 만들어주었다. 바로 ‘공급은 수요를 창출하였던 것이다.’
당시 대공황으로 기업마다 상품이 팔리지 않자 공장은 문을 닫고 실업자가 넘쳐났다. 수요는 바닥을 헤맸다. 국가는 여전히 시장이 모든 것을 잘 해결해줄 것이라 믿고 자유방임하였다. 어떻게 할 것인가? 케인스는 생각을 뒤집었다. 새로운 관점에서 1933년에 학생들에게 말했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 그때부터 적극적 재정 지출을 통해 유효수요가 만들어지고 국가가 시장경제에 개입하는 혼합경제 자본주의가 출발하였다.
지금도 우리는 소비를 재화와 용역을 소모해서 만족을 얻는 것으로 생각한다. 130년 전에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런은 소비의 개념을 바꾸었다. “소비는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소비는 자신의 엄청난 부를 과시하고 타인과 구별 짓기 위한 유한계급의 문화 상징적 행위로 포착되었다. 불로소득이 많아야 흥청망청 과시적 소비도 가능하다. 이 또한 부자들의 야만성이나 영리만을 추구하는 기업가의 약탈 없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베블런은 현대 소비욕망과 유한계급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198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솔로는 미국의 경제데이터를 살펴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1909~1949년간 미국의 노동시간당 생산량이 2배나 뛰어 올랐던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전통적인 생산요소인 노동이나 자본 공급량이 기여한 몫은 12%로 미미했다. 나머지 88%의 성장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지식의 성장이었음을 발견했다. 이때부터 교육, 행동학습, 지식축적, R&D투자가 본격화되어 지식기반 경제가 시작하였다.
언어는 곧 세계라는 말을 조금 비틀면 새로운 경제사상과 언어가 세계를 바꾸었다. 특강을 마치자 질문도 탄탄했다. 오늘 강의는 학생들이 자기만의 길 위에서 무한한 영토를 발견하겠다고 설레기만 해도 성공이었다. 엉뚱하게도 마지막 슬라이드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나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 사람들이 덜 지나간 길을 택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원용찬 전북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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