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돈은 거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도구이자 돈을 벌기 위해 공부하고, 일하며, 심지어 인간관계조차도 돈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돈은 자원의 배분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경제적 성장을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돈을 벌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근본적인 목적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곧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지구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으며, 경제 성장의 무분별한 추구는 환경 파괴와 자원 고갈을 초래한다. 이는 결국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다.
경제 성장의 대표적 지표인 GDP와 국민행복지수 사이의 상관관계에서 일반적으로 GDP가 높아지면 삶의 질이 향상되고, 이는 곧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이 항상 성립하지는 않는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데이터에 따르면, GDP가 일정 수준이상으로 상승하면 국민 행복도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 경향을 나타낸다. 미국 같은 고소득 국가들은 높은 GDP를 자랑하지만, 종종 중·저소득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국민의 주관적 행복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코스타리카는 상대적으로 낮은 GDP에도 불구하고 높은 국민행복 지수를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 풍요도가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소득 불평등 지표인 지니계수 역시 돈의 분배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준다. 연구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이 큰 나라일수록 사회적 불안정성과 범죄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경제적 성장이 단지 일부 계층에 집중될 때 오히려 사회 전체의 안정성이 악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유엔개발계획이 발표한 인간개발지수와 지니계수의 관계를 보면, 소득 불평등이 심한 나라일수록 인간개발지수가 낮아지는 경향을 보여준다. 소득이 사회 전반에 걸쳐 고르게 분배되지 않으면, 경제적 성장이 국민의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다는 의미다. 즉, 그 돈이 어떻게 분배되고 사용되는지가 사회의 복지와 안정성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다.
OECD가 발표한 ‘더 나은 삶의 지수’는 소득뿐만 아니라 건강, 교육, 환경, 사회적 연결망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우리의 생활 만족도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평가한다.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일 때 이와 같은 비경제적 요소들이 삶의 질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덴마크, 노르웨이 등과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비교적 높은 세율과 공공복지 제도를 운영하면서도 세계적으로 높은 생활 만족도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경제적 풍요와 상관없이 높은 삶의 질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인 미국의 마틴 셀리그먼은 연구에서 돈보다 중요한 삶의 만족 요인으로 긍정적 감정, 몰입, 의미, 성취감 등을 제시했다. 경제적 풍요와 관련 없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들인 비물질적 가치에 더 큰 만족감과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 8월 27일 2025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지난 정권에 비해 예산 평균 증가율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특히 보건·복지·고용 예산 증가율도 10년 새 최저 수준이었던 2023년 이후 두 번째로 낮다. 정부는 한정된 자원으로 인구변화의 구조적 위기, 경제위기, 기후위기 등 복합적 위기에 대응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곳에 돈을 분배해야한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국민들의 경고,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
/지용승 우석대 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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