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선배교수가 영국 경제학자 브렛 크리스토퍼스의「Rentier Capitalism(2020)」를 함께 번역하자고 했을 때 rentier capitalism은 이미 ‘불로소득 자본주의’라는 용어로 정리되어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들추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rentier(지대수익 추구)는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의 수익 창출이라는 단순한 개념을 훨씬 뛰어 넘어 시장지배력을 강화하여 자신이 기여한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뽑아내는 행위를 가리키기 때문에 불로소득이란 용어가 더욱 적절하리라 싶다. 지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경쟁이 제한되거나 아예 경쟁을 사라지게 만든 상황에서 (희소)자원을 소유·통제하거나 지배함으로써 도출되는 비생산적 부문의 소득을 의미한다.
최근 철도파업이 벌어진 원인처럼 효율과 경쟁을 앞세워 공공부문을 줄곧 민영화하거나 규제완화하려는 시도 역시 지대추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에너지, 교통, 통신, 철도, 전력, 의료와 같은 집합적 필수자원이 소수 자본에게 사유화되면 당연히 독점과 강력한 시장지배력으로 적정 가치를 넘는 초과지대가 발생한다.
불로소득이 노동소득을 약탈하면 소비 구매력이 줄어들어 경제는 침체에 빠진다. 시장지배력으로 땀 흘리지 않고도 돈을 버는 불로소득 기업가들은 혁신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양극화된 불평등은 심화되어 파국의 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다.
독점화와 권력집중으로 강력한 지배력을 확보한 비경제적 권력이 취약한 타자에게 끊임없이 비용지불을 압박하는 조건에서도 지대는 발생한다.
수도권은 인구의 절반이 집중하고 정부 공공기관, 교육과 의료기관, 법인 본사, 첨단산업과 제조업을 비롯한 모든 기회와 정보가 몰려있어서 독점지대를 발생시킨다. 지역의 대기업과 대형유통망을 통한 지역자금의 역외유출은 물론 고가의 교육과 의료기관 접근에다 자녀들의 수도권 정착비용까지 3%(GRDP) 비중의 최하위 전북경제는 힘겹기만 하다. 고가의 부동산 비용은 지역경제까지 메말린다. 서울에서 수도권을 거쳐 지역에 이르기까지 지대추구를 매개로 피라미드 구조로 이어져있음이다.
한국의 불로소득 자본주의가 지역을 갉아 먹고 소멸위기로 몰아가는 상황은, 자기 꼬리를 잡아먹으며 마침내 자멸하는 뱀과도 같은「식인(카니발) 자본주의(2023)」(낸시 프레이저)의 모습이다.
단계적으로 윗돌이 아랫돌을 짓누르며 기생하는 불로소득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위계화되어 있다. 그것은 수능성적으로 줄 세워진 1등과 꼴등의 사다리꼴 모형에도 투영된다. 이번 잼버리 사태에서도 드러나듯 중앙은 유능하고 전북이 무능하다는 여당의 책임 떠넘기기는 지역을 이간시키고 종속화하여 지대 추구를 정당화한다. 뺏는 자의 최선은 뺏기는 자가 저항하지 못하도록 혐오하고 무력화하는 일이다.
브렛 크리스토퍼스는 불로소득 자본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지역 공동체 부의 형성’(지역 살찌우기)와 지역의 재생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전북의 지역문제도 지대 추출의 불로소득 자본주의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면 지역순환의 내생적 발전과 더불어 분권, 자치, 연대가 왜 필요한지도 정확히 알게 된다.
/ 원용찬 전북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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