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6월 故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新경영 선언’이 나오기 1년 전, 삼성 임직원들 사이에 ‘업(業)의 개념’이 무엇인지 묻고 답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당시 방산(防産) 물자를 수출하던 필자에게도 ‘특수사업부’ 업의 개념과 본질이 무엇인지 답해보라는 뜬금없는 질문이 들어왔다. 당시 우리는 자신이 하고 있던 업무와 프로젝트에 대해 개념이나 본질 따위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그저 선배가 해왔던 대로 관성과 관행에 맞춰 일을 처리(處理)하고 있을 뿐 이었다.
업의 개념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술집 매니저의 업의 개념은 무엇인가?"였다. 이건희 회장의 선문(禪問)에 맞춰 "매출을 올리는 것이다." "술 취한 고객을 관리하는 것이다." 등 여러 답변이 나왔지만, 결국 이건희 회장이 생각했던 "외상값을 잘 받아내는 것이다."라는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호텔신라 사장에게 호텔업의 개념을 물었을 때 ‘서비스업’이라고 답하자, 이회장은 “호텔업의 본질은 부동산이고 장치산업이 아니냐”고 되물었고 "삼성카드는 외상값을 잘 받아야 한다. 즉, 채권관리가 핵심이고 보험업은 사람을 모집하는 것이 중요하고, 증권업은 상담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백화점은 부동산업, 가전은 조립양산업, 에스원은 단결력이 업의 본질이고 반도체는 시간산업이다.”라는 이회장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서로에게 회자되었고 종국에 자동차산업 또한 화석연료를 대체하여 수소연료나 전기에너지를 동력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로 산업이 전환되면 기계장치산업에서 전기·전장산업으로 업의 본질과 패러다임이 변화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했다고 하니 이회장의 통찰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전자(前者)를 미뤄 생각건대 백화점은 ‘상품’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과 가치'을 팔고 화장품회사는 '화장품'이 아닌 '아름다움과 욕망'을 퍼니처회사는 '가구'가 아닌 '공간과 안락(安樂)'을 크루즈 회사는 '이동수단'이 아닌 '판타지와 위락(慰樂)'을 팔고 있으며 에어비앤비는 단순히 '숙박을 위한 룸(room)'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이국에서의 일상적 경험'을 전달해야 하는 것 처럼 ‘업의 본질’은 ‘코디네이팅(coordinating)’이다. 결국 업의 개념은 "사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며, 업의 본질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그 업의 기본 가치를 의미하며, 업의 특성은 시대나 환경 등의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업의 속성(屬性)을 의미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업’을 입체적인 사고를 통해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의 본질과 특성을 이해하여 직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정의한 것이다. 업의 개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조직이 일하는 방식이 결정될 수 있고 각종 시스템과 제도, 구성원의 마인드 등 조직문화가 달라진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업의 개념’은 경영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낡은 사고의 틀을 깨트리고 양(量)에 경도되지 않고 질(質)에 눈높이를 맞춰 끊임없이 산업과 경영 환경의 변화와 흐름을 읽고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모험정신을 갖추라는 독려였던 것이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이제 누구라도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본인의 인생을 경영해야 한다. 인생을 주도하며 평생을 살아가려면 자기가 하는 일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며 특히, 조직에서 리더가 되어 변화에 대응하며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이건희 회장이 강조한 업의 개념과 경영의 본질을 연구해보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윤여봉 전북경제통상진흥원 원장
△윤여봉 원장은 익산 출신으로 해성고·고려대를 졸업했으며 삼성전자 법인장·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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