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음악을 다양하게 접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어쩌면 이게 무슨 엉뚱한 말장난인가 할 수 있다. 세계음악? 그게 생활과 무슨 연관이냐고 할 수 있다. 그럼 다른 예를 들어본다. 안전한 보행자 인도가 있는 도시, 자연주의 놀이터가 있는 도시, 쾌적한 도서관이 많은 도시, 가깝게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 있는 도시를 떠올리면 누구나 그런 곳은 사람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고 인정한다. 반대 상황도 그려 보자. 주차공간이 부족해 불법주차가 많아 걷기 힘든 도시, 삐걱거리는 녹슨 놀이기구만 있는 놀이터, 환기도 되지 않는 어두침침한 도서관, 산책할 수 있는 공원 하나 없이 빌딩만 빼곡한 도시...잠시 상상만 해도 긍정 의욕이 감소한다. 약간의 과장을 포함해서 말하자면, 필자는 풍요로운 기반시설이 지역민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듯 다양한 세계음악을 듣는 것, 즉 다양한 문화를 만나는 것도 유사한 영향을 준다고 믿고 있다. 물론 다른 문화를 접하고, 이해하고, 수용하기까지는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도시)의 교육, 복지, 문화예술, 환경 등의 방향성은 당장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계획과 지속성이 필요하다. 축적의 힘 때문이다.
어디든 지역마다의 고유한 전통예술이 내려오기 마련이지만, 전북은 지역 곳곳에 판소리, 시조, 줄풍류를 이어 들노래, 풍물굿 등 문화예술적 유산이 풍부하다. 그런 조건이 전주대사습놀이와 같은 전국적인 국악경연대회를 가능하게 했고,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같은 국악중심의 세계음악축제를 존재하게 했다.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세계’를 붙이게 된 이유는 아마도 양가적인 바람을 담고 있을 것이다. 전주세계소리축제를 통해 세계 문화예술과 동등하게 판소리를 비롯한 한국전통음악을 알리고 싶은 바람과 우리가 펼치는 축제의 판 속에 세계의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고자 하는 바람이 공존한다. 전자는 ‘우리것이 좋은 것이야.’를 외치며 이러한 문화자산이 있는 전북특별자치도의 가치와 경쟁력을 자랑하고, 후자에서는 전북특별자치도민들이 소리축제와 같은 문화사업을 통해 열린 문화적 소양이 있는 행복한 지역 생활을 누리기 바랬을 것이다. 물론 관광활성화, 지역예술가 성장, 국제교류 활성화 등 더 많은 기대와 요구들이 연결되어 있지만 큰 맥락에서의 첫 출발은 ‘세계 속의 소리, 우리 소리의 세계화’로 짐작된다.
이런 지역의 여건과 기대로 인해 소리축제는 2001년에 시작되었고,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23회 소리축제를 코앞에 두고 있다. 올해는 13개국 13개의 해외 단체가 전북을 방문할 예정인데, 폴란드, 네덜란드, 아일랜드, 이탈리아, 일본,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미지의 음악 혹은 한번쯤은 들어봤을 음악이 소개될 것이다. 그 5일간의 축제판에 초대된 해외 예술가들은 지금 한창 한국이라는 나라를 검색하고, 자신들의 무대를 상상해 볼 것이다. 축제는 관객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도 즐겨야 판이 살아난다. 그들도 역시 ‘우리의 음악과 문화를 알리고 싶다’는 우리의 마음과 다르지 않은 뜻을 품고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대한민국 전주로 날아온다. 서로 다르지만, 음악과 예술로 소통할 수 있기에 우리는 그들을 초대하고, 환대하고, 호기심으로 경청한다. 축제판에서는 평가와 판단을 멈추고 지금은 우리 삶에 자극과 전환를 줄 수 있는 순간이라 생각하고 즐겨야 한다.
그런데 맘껏 즐기는 것은 좀처럼 쉽지는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노래와 춤을 좋아하긴 하지만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해외 음악이 어렵고 익숙하지 않아서만은 아닌 것 같다. 전국노래자랑을 봐도 흥이 넘쳐 춤추는 몇몇 어르신을 제외하고는 얌전히 앉아서 쑥쓰러운 얼굴을 가리며 박수만 치는 관객이 대부분이다. 가끔 국제교류 공연 기획자들은 “한국 사람이 가장 일으켜 춤추게 하기 어려운 관객”, “예술가보다 놀줄 아는 해외 관객들을 초청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한다. 물론 MZ세대가 열광하는 싸이콘서트나 레전드 팝스타 공연이나 축제는 제외하고 말이다.
사실 판소리와 국악, 해외 민속음악이나 소위 월드뮤직이라고 하는 분야는 알면 알수록 즐거움이 증가하는 장르이다. 대중음악이나 클래식처럼 즉각적인 감정 몰입이나 공감이 쉽지 않다. 하지만 한번 알아가기 시작하면 그 매력에 두 손을 모르게 되는 장르임에는 틀림없다. 소리축제는 올해 처음으로 ‘월드뮤직 아카데미’라는 공연과 강의의 중간 형태의 수업(?)을 진행했다. 누구나 익숙하지 않은 세계음악과 악기에 대해 알리는 것이 결국 소리축제를 찾는 마니아 관객 확보에 효과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물론 평일 저녁에 4주간 과연 도민들이 관심있을까? 축제를 앞두고 괜한 사업으로 힘을 빼는 것이 아닐지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웬걸, 수강 신청을 시작하자 50여석의 객석이 찼고, 매회차 반짝이는 도민 수강생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르헨티나의 반도네온(실제는 독일이 고향이라고 함), 인도의 시타르, 아일랜드의 휘슬과 아코디언, 중국의 비파를 주제로 진행된 아카데미에서는 “아~ 그렇구나. 아~”라는 알아감의 탄성이 지속되었다. 4주를 모두 참석한 충성 관객 비율이 높았고, 어느 관객들은 일주일 한 번의 외출을 위해 한껏 멋을 부리기도 했고,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해서 앞자리를 사수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예술가를 마주하는 것을 부끄러워 했지만, 점점 궁금한 점을 직접 묻기도 하고 사진을 같이 찍기도 하며, 소리축제 응원군이 되어주었다. 축제를 준비하는 스태프들도 좋은 경험이었다. 소리축제 기간에는 모든 직원들이 평균 4Kg씩 강제 다이어트가 될 만큼 바쁜 일정을 보내기 때문에, 관객 한사람 한사람과 소통하거나 관찰하기 어렵다. 그런데 작은 사업을 통해 도민의 다양한 바람과 만족, 공감을 마주하고 아카데미 수업도 같이 들으며 관객과 소통하는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4주간 세계 음악을 듣는 삶은, 그 시간에 머물지 않고 흐르는 우리의 삶과 일터에서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포용의 여유를 주었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소양을 확장하고자 배우고 찾아가는 지역민들이 있는 도시, 그들이 살아가는 도시의 분위기는 바로 지역의 경쟁력, 차별성의 작은 시작이 아닐까.
곧 축제 판이 시작된다. 관객들이 춤을 추었으면 한다. 아일랜드 켈틱 음악에, 이탈리아 타란타 지역의 민속음악에, 혹은 우리나라 뽕짝의 대가 이박사의 탬버린 장단에, 김반장의 신들린 드럼장단에 춤을 추었으면 좋겠다. 춤은 흥미 없고 수준 높은 공연작품을 보거나 유명예술가를 만나고 싶다면, 세계적인 연주자 정경화&임동혁의 듀오 리사이틀, 대니구&조윤성트리오, 음악극 ‘적로’를 놓치지 말자. 추임새를 외치고 싶다면 판소리 다섯바탕에서 “얼씨구, 좋다”를 외쳐보자. 어린이에게 새로운 체험을 안겨주고 싶다면 어린이소리축제에서 악기체험, 재활용음악극을 찾아보자, 분명 엄마가 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소리축제의 판은 우리 지역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위한 특권이다. 부디 놓치지 말고 일년의 한번 축제를 풍성하게 즐기시길 바란다! 세계음악을 듣는 삶은 분명 우리에게 행복감을 안겨줄 것이다.
한지영 (사)전주세계소리축제 콘텐츠운영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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