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문화센터 크로스핏 동아리부터, 전주의 우주로 1216
청소년들위한 전문적인 공연 전시, 체험더 늘려야
‘이제 꽤 덥네?’하고 돌아보니 어느새 한 해의 반절이 흘러있다. 어느 기관이든 이즈음엔 상반기 진행 상황과 성과를 점검하고 남은 하반기에 대한 계획과 보고로 분주한 요즘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개개인들도 연초에 세웠던 목표를 돌아보고, 다가오는 하반기 일정에 바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최근 개인적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고등학생 자녀 때문인지 ‘청소년’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청소년들은 지금 무슨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하루하루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가는 생활, 이제 2~3주 뒤면 1학기 기말고사가 있고, 여름 방학이 있다. 저녁 시간에 우르르 학원에서 나오는 모습들, 그러면서도 깔깔깔 즐거운 아이들, 학원가는 벌써 여름 특강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내신을 올릴 수 있는 좋은 찬스! 국영수 여름방학 특강!’
‘청소년’,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읽어보니, 참 어색하다. 알다가도 모를 존재들, 그들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늘 만나게 되지만 무엇인가 거리감이 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분명 보이지 않은 벽 안에 그들만의 세계가 있고 청소년이 아닌 사람들은 그 세계를 들여다보지 못하는, 혹은 봐도 해석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해맑고 귀여워서 무엇을 해도 칭찬받는 어린이 그룹과 취향에 대해 선택권을 보장받으면서도 끊임없이 남을 판단하는 성인 그룹 사이에 끼어있는 애처로운 그룹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들의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워서인지, 이해하기 싫어서인지 ‘성인’ 그룹으로부터 존중받지는 못하는 것 같다. 청소년의 시간은 입시 준비나 취업 준비 등 이제 곧 ‘성인’이 될 시간을 준비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규정된 듯하다. 마치 지금 당장 행복한 시간보다 미래의 시간만이 중요하다고 장담하고 있는 것 같다. 학업이나 취업을 위한 활동 외의 행동들은 성인 이후로 미루기를 권유받거나 걱정으로 돌아온다. 예를 들어 갑자기 고등학교 2학년이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듣게 될까? 물론 적극적으로 찬성하면서 응원하는 부모도 있겠지만, 대부분 전공할 것도 아닌데, 지금 공부할 시간을 빼앗기면서 배우지 말고 대학교 가서 천천히 배우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입시나 취업 외 예체능을 비롯한 다른 활동은 일단 대학 입학 후나 취업 뒤로 보류할 것을 요구받는다. 청소년 시기 바로 직전, 어린이 그룹일 때는 그림을 그려도, 노래를 불러도, 춤을 춰도, 혹여 공부를 좀 못해도 칭찬받았는데, 청소년 시기로 접어들면 상황이 달라진다. 학교나 사회는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자! 이제 놀기 끝, 경쟁 시작!’ 청소년들의 혼란스러움이 공감된다. 스트레스 풀 곳은 코인 노래방, 피씨방, 그리고 끊임없이 콘텐츠를 쏟아내는 핸드폰 속 릴스와 인스타그램 이미지에 의지한다. 그렇게만 머물기에 청소년들의 가능성과 지금의 행복도 너무 중요한데 말이다. 그런 면에서 꾸준히 청소년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몇몇 청소년 공간과 문화 행사의 소중함은 더 가치 있다.
전주청소년센터를 비롯하여 전주시 6개 지역에 있는 청소년센터에서는 작지만 내실있는 청소년 동아리 지원사업이나 청소년을 위한 방과후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재미있게 본 사례는 전주청소년센터와 효자청소년센터에서 함께 진행하고 있는 ‘모글리’라는 크로스핏 동아리이다. 크로스핏이란 여러 종목의 운동을 섞어서 하는 운동으로 미국에서 경찰, 군인, 소방관 등의 훈련을 위해 고안된 운동법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인기있는 운동법이다. 처음 이 동아리에 대해 들었을 때, 필자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독서 토론, 음악감상, 봉사 동아리가 아닌 현대적이고 활동적인 장르인 점에서부터 호기심이 생겼다. 더불어 어른이 가르쳐주고 싶은 것을 정해서 일방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 아닌 청소년이 원하는 것을 선택한 점이 반가웠다. 요즘 청소년들은 다양한 미디어에 노출되어 외모에 관심이 많다. 여학생들은 일찍부터 메이크업을 한다거나, 늘 다이어트를 하면서 건강이 염려되도록 몸매 관리에 신경을 쓰는데, ‘모글리’에서는 기특하게도 건강을 위한 운동을 함께 한다. 청소년센터에서는 전문가의 지도와 공간을 지원하여, 청소년들이 동아리 활동을 통해 잠시라도 학업 스트레스에서 멀어지고, 자신의 몸 움직임을 배우도록 돕는다. 운동하는 시간 동안 핸드폰에서도 멀어지니 청소년들은 활기를 찾을 수밖에 없다. 효자청소년센터에서는 이밖에 바리스타 동아리 ‘다믈’, 텃밭을 가꾸는 ‘텃새꾼’, 댄스 동아리 ‘홀림’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커피를 내리면서 자신의 취향을 찾고, 텃밭을 가꾸며 흙의 위대함을 알고, 음악에 맞춰 바이브를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청소년들에게는 얼마나 멋진 시간일까. 그런 즐거움과 긍정의 시간이 축적되면서 분명 좋은 어른들도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청소년을 위한 멋진 공간도 있다. 이미 전주의 이색적인 청소년 공간으로 유명한 전주 꽃심도서관 내 ‘우주로 1216’는 타지역에서도 자주 견학오는 곳이다. 소위 트윈세대(틴에이저와 어린이 사이에 낀 between 세대)를 위한 공간을 표방하는 이곳은 매월 셋째주 목요일을 제외하고는 12~16세만 입장이 가능하다. 모던하고 자유분방한 실내 인테리어도 인상적이고 쿵쿵존, 톡톡존, 슥슥존, 곰곰존으로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한 부분이나, 다양한 미술, 조형, 3D펜, 뜨개질 등을 활용해서 창작활동을 할 수 있게 한 부분이 특징이다. 특히 슥스튜디오에서는 동영상 제작이나 악기 연주를 할 수 있도록 관련 장비까지 구비해 놓아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갈 수 있는 청소년들의 가능성을 지원하고 있다. 무엇보다 어른들이 없는 그들만의 공간이니 어른 앞에서는 꽁꽁 숨기는 끼와 재능이 더 발현되지 않을까?
이렇게 우리 지역에 청소년을 위한 공간과 사업이 있지만, 아직 그 수와 다양함이 전북 청소년들의 인원에 비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부모가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거나, 청소년 자신이 관심이 높거나, 학교나 집이 해당 문화기관과 가깝지 않다면, 이런 공간과 프로그램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런 차이와 공백을 극복하기 위해서 공공영역의 관심과 정책이 중요하다. 공공기관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학교단위로 차별없이 참여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는데, 실은 어린이나 노년층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기관은 다수 있으나, 청소년 대상 사업, 예를 들어 청소년을 위한 전문적인 공연이나 전시, 체험은 쉽게 찾기 어렵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문화예술사업을 기획하는 것은 다른 사업보다 조사와 고민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섣부르게 시작해서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외면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서두에서 거론했듯 그들은 알다가도 모를 존재, 성인과는 같은 연극을 봐도 다르게 해석할 가능성도 있고, 때론 쉽게 상처받게 할 수도 있다. 그뿐인가 그들은 재미없으면 빠른 속도로 돌아선다.
국립극단에서는 십여년전부터 청소년극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데, 예술적으로도 관객 확장면에서도 의미있는 행보로 인정받고 있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 성인관객 마니아층도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 주제도 청소년기에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인간관계-밀고 당기는 밀당-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외모적 고민, 성정체성, 우정과 연애, 트라우마 등 다양하다. 국립극단은 창작 과정부터 일반 극과 다르게 진행한다. 우선 청소년극을 쓰고자 하는 작가를 모집하고, 청소년 창작파트너인 ‘청소년 17인’과 협력해서 창작의 주체로 함께 할 수 있게 운영한다. 참여 작가들의 초고 집필은 작가와 청소년이 함께하는 워크숍, 소그룹 활동 등 실제 청소년과의 상호 작용이 선행된 후에 진행되어 청소년의 시선이 살아 있는 희곡이 만들어진다. 공연 종료 후 작가, 연출가와 함께하는 ‘예술가와의 대화’도 진행함으로 청소년 관객들이 작품을 더 깊게 수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물론 이런 작업은 촘촘한 기획력과 의지뿐만 아니라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일이다. 공공예술단체일지라도 예산은 늘 부족하고 이미 수행할 공연이나 사업들이 빼곡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쉽게 청소년 레퍼토리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체된 기존 사업들을 정리하거니 잠시 휴식기를 갖고, 과감하게 청소년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것이 미래 지향적인 방법이지 않을까 한다. 청소년들에게 공을 들이면 그 피드백은 사회 전체가 폭넓게 받게 된다. 어른으로 성장해서 좋은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 사회를 좀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도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 아! 이제 떠오른다. 전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비보이그룹 ‘라스트포원’도 전주청소년센터의 댄스 동아리로 출발해 세계 무대에 섰다. 청소년, 그들은 그렇게 가능성 있는 존재들이다.
한지영 (사)전주세계소리축제 콘텐츠운영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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