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안 주나요.” 설 명절을 앞두고 이곳저곳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일부 지자체가 다시 돈보따리를 풀기로 하면서다. 꽁꽁 얼어붙은 골목상권을 녹이기 위한 ‘민생회복지원금’이다. 주민들의 관심이 높다. 하지만 당장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의 이 ‘돈 풀기’ 경쟁에 동참할 수 있는 지자체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 전북지역 지자체가 유독 많다. 전북에서는 김제와 정읍·남원·완주·진안 등 5개 시·군이 전체 주민에게 1인당 20~50만원씩을 지급하기로 했다. 가뜩이나 재정자립도가 낮아 살림살이가 빠듯한 지역인데 어떻게 수백억원의 재원을 마련했는지 의문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북특별자치도의 재정자립도(23.51%)는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낮다. 또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진안(6.69%)이 전국 꼴찌다.
당연히 논란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포퓰리즘 정책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연임이 최대 관심사인 일부 단체장들이 심각한 재정난 속에서 선심행정을 앞세웠다는 지적이다. 공교롭게도 ‘단체장 3선 연임 제한’에 걸리는 익산과 임실은 전 주민 민생지원금 경쟁에 동참하지 않았다.
해당 지자체에서는 골목상권 살리기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지원금이 경기 활성화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과거 조선시대 극심한 흉년이나 재난으로 백성들이 굶주릴 때면 이들을 살리기 위해 나라에서 쟁여 놓았던 곡식을 ‘구휼미(救恤米)’라는 이름으로 풀었다. 심각한 기근으로 세금을 내야 할 농민들이 농사를 때려치우고 정처 없이 유랑하는 사태, 즉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을 막기 위한 긴급조치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계속되는 경기 불황 속에 탄핵정국으로 인한 정치·경제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서 민생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골목상권은 붕괴 위기에 몰렸다. 골목상권, 서민경제를 살려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현대판 구휼미’가 필요한 시점인 것은 맞다.
하지만 곳간이 텅 비어 있는데 대책도 없이 빚을 내 모든 주민에게 곡식을 펑펑 내주는 지방관을 칭송할 수 있을까? 게다가 지난해 말 국회가 감액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정부가 지방교부금을 대폭 감액하면서 지자체의 살림이 더 힘겨워진 상황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다. 민생지원금을 풀기 위해 다른 사업비를 대폭 축소하거나 올 한해 각종 재난에 대비해 남겨둬야 할 예비비를 전부 끌어와야 하고, 지방채를 발행해야 할 수도 있다. 무리한 지원금은 자치단체 살림에 큰 부담을 주고, 그 빚은 결국 주민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당장 주민생활 안정과 지역발전에 필요한 현안 사업 추진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판단하기 쉽지 않지만 ‘염불보다 잿밥’이거나 ‘부화뇌동(附和雷同)‘식의 결정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당장의 현금에 매혹될 게 아니다. ‘우리는 왜 안 주냐, 이사 가겠다’며 지자체장을 압박할 일도 아니다. 주민들의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때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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