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전 10시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새마을. 마치 탑돌이 하듯 용담호를 끼고 한참을 굽이굽이 들어간 끝에 당도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마을 입구부터 나직하게 피어있는 채송화가 앞다퉈 반겼다. 아침에만 잠깐 핀다는 귀띔에 서둘러 찾아갔으나 길을 잃어 뒤늦게 당도한 참이었다.
새마을의 또 다른 이름은 '채송화 마을'이다. 2005년 오랜 지기인 김명순씨(59)를 따라 귀촌한 박영희씨(60)가 낸 아이디어에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 일궈낸 결실. 여름마다 뒤란을 붐비게 해준 채송화가 피고 진 게 벌써 5년 째다. 박씨는 "본래 7월에 가장 활짝 피는데, 최근에 비가 오락가락 해 시들해졌다"며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빨갛고 노랗고 하얀 채송화들이 화사한 꽃길을 만들고 있었다.
2009년 이장을 맡았던 박씨가 채송화를 심자고 제안했을 때 마을 어른들의 의견이 갈렸다. "콩이라도 심으면 자식들이라도 줄 수 있지 않느냐"부터 "다른 꽃도 섞어서 심는 건 어떠냐"는 제안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이에 박씨는 "채송화는 심기만 하면 특별히 관리 안 해도 잘 자란다"면서 "여러 꽃을 심을 수도 있겠지만, 채송화로만 통일해서 심으면 오히려 마을이 명소가 되면 좋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우여곡절 끝에 마을이 채송화로 채워지게 됐다. 그런데 비만 오면 꽃이 피지 않는 채송화가 2008년 가뭄을 만났다. 논밭이 쩍쩍 갈라지던 그 해 여름 이곳은 돌연 채송화 꽃밭이 됐다. 일대 입소문이 나면서 진안군이 연락을 해왔다. '으뜸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결국 회의 끝에 채송화 축제 개최와 마을회관 리모델링으로 결정이 났다. 어르신들은 "밭 매러 길만 지나가더라도 "아이고, 이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고 기억했다.
비만 오면 채송화가 쉽사리 지는 데다 아침에만 잠깐 피기 터라 일정 잡기가 까다로웠다. 축제는 채송화가 만개하는 7월4일로 잡고 손맛 좋은 이들의 도움으로 어르신들과 푸지게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담한 자리가 됐다. 축제 경험이 전혀 없는 초보자들이 간신히 연 축제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자리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던 시간. 김씨는 "여기서 낳고 자란 어르신들은 우리 동네가 예쁜 줄 전혀 몰랐다. 하찮게 여기고 시작했던 채송화 심기로 인해 너도나도 찾다 보니까 자부심이 생겼던 것 같다"고 했다.
진안군노인회 용담군회장을 맡고 있는 이동규씨(80)도 "꽃밭으로 인해 마을이 훨씬 예뻐지고 깨끗해졌다. 마을 사람들끼리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단합이 잘 됐다"면서 "내일도 마을 사람들이 잡풀을 뽑기 위해 모이기로 한 상태"라고 거들었다.
허름한 마을회관도 새 옷을 입게 됐다. 10명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침대를 들이고 깔끔한 욕실을 마련해 농촌을 경험하고픈 여행객들에게 민박 체험을 제공하는 것. 처음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어르신들도 "이런 시설이 마련 돼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게 된다면 좋겠다"면서 나중엔 반겼다.
새마을에 이젠 채송화축제가 없지만, 채송화가 올망졸망 핀 정감있는 마을의 모습은 여전하다. 겉으로 치장하고 허명(虛名) 속에 사는 이들을 정화시키는,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풍경이다. 가 사진 촬영을 요구하자 모정 앞으로 일하러 밭으로 나갔던 어르신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사진기를 들이대자 누군가는 어색하게 또 누군가는 환하게 웃었다. 이들을 보면서 농촌과 공동체, 사랑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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