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세계소리축제는 판소리를 가장 중심에 놓고 프로그램을 짠다. 사람들은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물론 말과는 달리 판소리에 가장 많은 자원이 투자되는 것도 아니고, 판소리에 가장 많은 청중이 몰리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전주세계소리축제가 판소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데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왜 그런가?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시작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재임하던 국민의 정부 때다. 20세기가 끝나고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되는 2001년을 맞아 지방자치단체마다 각종 축제를 준비했었다. 그때 전라북도에서는 판소리를 앞세워 축제를 하기로 했다. 전북은 자타가 공인하는 판소리의 중심지이기 때문이었다.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소리’는 우리 전통음악에서 민속음악 성악곡을 가리는 말이다. 판소리의 ‘소리’도 마찬가지다.
‘판소리’ 하면 전주와 전북을 떠올리게 된 것은 전주와 전북이 판소리의 역사 속에서 수행한 역할이 크고 중요했기 때문이다.
먼저 판소리다운 판소리는 전북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판소리사에서 처음으로 더늠을 남긴 소리꾼인 권삼득, 판소리를 집대성하고 한 차원 높은 예술로 끌어올려 동편제 판소리라고 하는 전통을 수립한 가왕 송흥록, 김세종 바디 판소리를 만든 김세종, 동편제 판소리에 대립되는 서편제 판소리를 창안한 박유전 등이 다 전북 사람이다. 결국 현재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의 대부분이 전북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판소리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모두 우리 지역 출신 소리꾼에 의해서였다는 점이다. 앞에서 든 권삼득, 송흥록, 박유전은 말할 것도 없고, 고창 출신 진채선은 최초로 판소리를 한 여성이었다. 현대 판소리의 특징이 된 장단의 엇부침이나 계면조 위주의 창법, 그리고 창극 등은 익산군 망성면 출신의 정정렬을 빼고 말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현대적 상황에 맞게 새로이 만들어진 연극적 판소리인 김연수제 판소리는 우리 지방 출신의 오정숙에 의해 우리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승되면서 꽃을 피우고 있다.
셋째, 각종 판소리 축제 혹은 판소리 경연대회가 우리 지방에서 출발되었고, 또 현재까지 줄기찬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판소리 축제로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이 바로 전주대사습이다. 전주는 19세기에 판소리 명창의 등용문이었던 전주대사습과 같은 판소리 축제를 만들어냈고, 이를 잘 유지해왔다. 물론 이 대회는 1975년에 전국에서 가장 먼저 복원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31년부터 시작되었던 남원 춘향제의 판소리 경연은 일제 강점기에 존재했던 유일한 판소리 축제였다. 그 외에도 전국고수대회, 학생대사습 등도 그 부문에서는 가장 먼저 시작된 판소리 축제이다. 이러한 행사들이 모두 다 우리 지방에서 시작되어 판소리 문화를 선도해 나갔다.
넷째, 판소리 전통의 마지막 보루라는 점이다. 1960년대 들어 판소리가 사멸지경에 이르렀다가 요즘에 와서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은, 마지막까지 판소리에 대한 감성을 잃지 않고 있었던 우리 지역 판소리 청중들에 의해 가능했다. 전주대사습이 부활되었을 때 경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로부터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추임새는 우리나라의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산을 바탕으로 전북은 전국에서 최초로 도립국악원을 만들어 사회교육에 나섰고, 이미 수많은 연수생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까닭으로 우리 고장은 판소리의 고장, 판소리의 중심지, 전통의 도시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며 가꾸어 왔다. 이러한 역사성을 배경으로 우리는 ‘소리축제’를 만들었다. 그러기 때문에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판소리가 중심을 차지한다. 이는 판소리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린다거나, 가장 많은 자원이 투자된다거나 하는 것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서도 모든 일의 근원이 된 것이 바로 판소리이기 때문이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 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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