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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기행: 군산항선 편] 탁류 따라 덜컹덜컹, 100년을 관통하다

“다른 도시보다 보존이 잘 돼 있는 게 매력인 것 같아요. 일본식 가옥이나 철길에서 옛날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보통 관광지라고 하면 명소 한 군데만 꾸며놓는데, 군산은 그쪽(근대역사문화지구) 분위기가 다 그래서 좋아요.”

대전에서 온 백모 씨·김모 씨(25) 커플은 군산에서 받은 느낌을 이렇게 정리했다. 군산시가 내세우는 ‘시간여행’이라는 말이 문자 그대로인 것이다.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100여 년 세월, 군산의 ‘구도심’ 지역에는 켜켜이 쌓인 그 시간이 그대로 겹쳐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로 철길이 지나고 있었다.

 

▲ 그림=이권중

 

경암동을 지난 철길은 쭉쭉 대명동 옛 군산역(군산화물역)을 향해 뻗어 있었다.

군산 화력발전소 방향으로 난 지선이 하나 보였는데, 골목을 채 다 빠져나가기도 전에 아스팔트에 묻혀 사라져 있었다. 이 선로는 군산 화력발전소 인입선으로, 지금의 화력발전소 자리에 있던 옛 화력발전소가 지어질 때 함께 건설된 것이다.

풍경은 바둑이와 나비가 노는 여느 골목길과 다를 바 없었다. 가운데 철길이 지난다는 것만 빼면.

▲ 8월 30일. 왼쪽 곧은 선로가 페이퍼코리아선, 오른쪽 굽은 선로가 화력발전소 인입선이다. 나무 상자는 마을 텃밭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 반대 방향.

 

▲ 경암동 철길마을 방향을 바라보며.

 

▲ 주의: 따라하지 마시오.

 

▲ 마을을 빠져나와 경포천을 건너면 이런 풍경이 나온다. 철길은 아스팔트를 이불 삼아 덮었다.

 

철길은 경안천 다리와 주차장을 지나며 마침내 자취를 감춘다.

도로는 철로를 간단히 밟고 넘어가 구시장로와 중앙로(‘전군도로’라 불리던 번영로에서 곧장 이어지는 길)에 연이어 닿는다.

신작로가 철로를 밟고 넘은 자리, 도로 좌우에는 녹색 철문이 걸려 있었다. 철문 너머로는 잡초가 무성한 가운데, 붉게 녹슨 레일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서쪽으로는 ‘역전종합시장’이라 쓰인 건물과 오래된 듯 보이는 상점 건물들과 널따란 주차장이, 동쪽으로는 굴러다니는 자갈과 웃자란 풀과 조그만 콘크리트 건물이 있었다.

옛 군산역(군산화물역)이 있던 자리다.

▲ 8월 30일, 대명동 옛 군산역(군산화물역) 자리.

 

군산역은 1912년 3월 6일 문을 열었다. 전주역이 처음 개업한 것이 1914년이었으니 전북지역에서는 꽤 이른 것이다.

물론 군산선 철도와 군산역이 먼저 개통된 것은 순전히 일본 측의 편의 때문이었다.

군산은 개항장이었기 때문에 일본인이 많이 살았으므로 여객 수요도 충분했고, 군산항은 호남 지역에서 몇 안 되는 근대 항구였으므로 화물 수요도 충분했다. 그 ‘화물 수요’라는 것은 사실상 ‘미곡 수탈’과 등치 된다.

군산선은 여기서 군산 내항 방향으로 다시 뻗어가고, 또 이곳에서 남쪽 옥구 방향으로도 뻗는다. 이 철도가 옥구선인데, 옥구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경영하던 대농장이 있던 곳이다.

군산역은 한국전쟁 중에 소실됐다가 1960년에 흔한 콘크리트 상자 모양으로 다시 지어졌고, 그 뒤로 47년 더 이용되다가 2008년 1월 1일 여객 기능을 내흥동 새 역으로 넘기고 ‘군산화물역’이 됐다. 그리고 2010년 말에 마침내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열차가 다니지 않게 되면서 굳이 있을 필요가 없게 된 팔마고가차도도 사라졌다.

▲ 군산 역전종합시장 입구에 세워져 있는 비석. 군산시 행정구역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 군산선 철도가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다.

 

▲ 1976년 4월 3일, 팔마고가도로 개통 무렵 촬영된 사진. 바로 위의 사진에 담긴 지점을 통과하는 도로였다.

 

▲ 2011년 9월 7일, 옛 군산역(군산화물역) 터를 관통하는 구암3·1로가 개통된 모습. 군산=오균진 기자

 

9월 6일, 옛 군산역 자리를 다시 찾았다.

어느 도시나 철도역 주변부터, 그러니까 ‘역세권’부터 상권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이른바 ‘역전 그룹’이라 불리는, ‘역전 ○○’류 상호를 필두로 다양한 상점들이 들어서곤 하는데, 군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성한 풀이 덮어버린 옛 군산역 플랫폼을 떠난 철길은 다시 단선으로 합쳐지며 역전종합시장과 군산 공설시장 곁을 스쳐 지나간다.

작은 가열로를 갖춘 대장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마치 큰 돔구장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한 군산 공설시장 건물이 뒤이어 눈에 띈다.

‘구시장’이라 불리는 역전종합시장과 군산 공설시장은 연속돼 있다. 그 사이에 양키시장도 있다. 더 나아가면 신영시장도 연속 선상에 있어, 군산선·군산항선 철길과 구시장로를 따라 대명동과 흥남동, 신영동을 아우르는 거대한 상권이 형성돼 있다.

▲ 대야 방향을 바라본 모습. 왼쪽의 콘크리트 구조물은 옛 플랫폼.

 

▲ 군산 공설시장 방향을 바라본 모습.

 

▲ 군산 역전종합시장.

 

▲ 군산 공설시장 내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모습이 대형 마트를 연상시킨다.

 

▲ 군산 공설시장.

 

▲ 이것은 1981년 3월 20일 모습.

 

▲ 신영시장은 철길을 밟고 확장된 모습이었다.

 

철길을 계속 따라가면 ‘째보선창 삼거리’에 이른다.

얼핏 보기엔 삼거리보다는 오거리 정도에 가까운 구조인데, 아스팔트에 파묻힌 철길이 유유히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째보선창’이라는 말이 재미있는데, 여기서 ‘째보’의 어원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대중적인 설은 언청이, 그러니까 구순구개열을 가진 이를 가리키는 멸칭 ‘째보’에서 왔다는 설이다. 구순구개열을 가진 힘이 센 사람이 이곳 상인들에게 돈 상납을 요구하곤 해 이 일대를 ‘째보선창’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혹은 강 물줄기가 옆으로 째져서 ‘째보’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있고, 옛 지명 ‘진포’가 ‘찐포’로 변하고 이것이 다시 ‘째보’로 변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확실한 것은 없다.

▲ 9월 6일, 째보선창 삼거리. 할 일을 잃은 차단기.

 

째보선창을 ‘죽성포구’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은 근처의 ‘죽성동’이라는 지명과도 연결된다. 정작 째보선창은 죽성동이 아니라 금암동에 있다.

지금은 콘크리트로 덮였기 때문에 포구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바다를 보려면 조금 더 걸어가야 한다.

▲ 째보선창 삼거리.

 

바닷물은 쭉 밀려나 있었다.

어선 몇 척이 넓게 펼쳐진 펄을 깔고 앉아 있었고, 드러난 갈색 내지는 고동색 ‘육지’ 위를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게가 바삐 오가고 있었다. 그게 다 갈매기 뱃속으로 가는 것인지, 뒤뚱뒤뚱 움직이는 갈매기가 도심 ‘닭둘기’ 뺨치도록 투실투실하다.

▲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다.

 

▲ 펄 위에 앉아 있는 어선들.

철길은 해안과 나란히 달렸다. 왼쪽에는 일본식 창고 건물이 있었다.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는 ‘중본상점(中本商店)’이었다고 한다. 아마 ‘나카모토 쇼텐’이라고 읽었을 것이다.

철길은 이즈음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오른쪽에 진포해양테마공원을 두고 널따란 공터로 진입한다. 여기는 군산부두역이 있던 자리다.

▲ '중본상점'이었던 건물.

 

▲ 군산부두역 구내로 들어가는 지점. 녹슨 닻이 놓여 있다.

 

▲ 기차 대신 배가 레일 위에 있다.

군산부두역은 조선총독부 관보 고시에 따르면 1943년 12월 1일에 영업을 시작했는데, 군산항의 역사에 비교해 보면 개통이 너무 늦다. 사실 군산항역은 1931년 8월 1일에 먼저 개통됐다. 12년 동안 그렇게 활용되다가 이후 이곳에 기능을 넘긴 것이다.

곽동근 군산시청 근대문화시설계장은 “흔히 생각하는 것 같은 역사(驛舍)가 있었던 게 아니라, 쌀을 싣고 내릴 수 있는 시설(플랫폼)을 갖춘 곳으로 본다”고 말했다.

“군산항역은 도선장 쪽에 있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대합실도 갖추고 여객 업무를 포함한 기능을 했을 것으로 봅니다. 부두역은 쌀을 내리기 위해 부두 쪽에 만든 것이지요. 저 어렸을 적만 해도 해양공원 쪽에 큰 창고가 많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공터는 지금은 주차장이 돼 있는데, 플랫폼 또는 화물 창고의 기능을 했던 곳이다. 그렇다면 이곳엔 과거에는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쌀가마가 그득그득 쌓여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의 사진 자료(링크: http://museum.gunsan.go.kr/content/sub04/04_02.do?act=view&Id=181&tct=04&page=9)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 군산부두역 터. 왼쪽 민트색 건물이 근대역사박물관, 오른쪽이 진포해양테마공원이다.

 

▲ 군산 내항, 바지선에서 작업 중인 모습.

 

▲ 뜬 다리 부두, 그러니까 '부잔교'.

 

▲ 이곳에서는 이제 꽃이 자란다.

 

군산부두역 터에서 바다 방향을 바라보면 ‘함포가 사용된 최초의 해전’이라 불리는 진포대첩을 기념하는 진포해양테마공원이 보인다.

‘뜬 다리 부두’, 그러니까 ‘부잔교’라 불리는 구조물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또 커다란 함선과 그보다는 좀 작은 해경 경비정이 놓여 있다.

그리고 전차, 자주포, 전투기 등 병기들이 함께 이 ‘테마공원’을 장식하고 있다. 전쟁박물관도 아닌데 육해공을 아우르는 다양한 병기들이 전시된 것이 조금 생경했지만, ‘화약’과 ‘포’를 연결고리로 묶어 보면 또 아주 이해를 못 할 바는 아니겠다. 물론 ‘대체 이곳의 정체성이 뭐냐’고 묻는다면… 음, 대답하기가 쉽지는 않을 듯하다.

전시된 함선은 미국과 한국 해군이 사용하던 LST(전차상륙함) ‘위봉’ 호다. 1945년 1월생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부터 두루두루 거쳐 온 역전의 용사다.

함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고, 스탬프를 찍을 수도 있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먼저 들러 ‘스탬프 투어’ 용지를 받아 와서 찍어보는 것이 좋겠다.

▲ 9월 6일, 공사가 진행 중인 진포해양테마공원 광장.

 

▲ 진포해양테마공원에 전시된 비행기.

 

▲ 새똥을 잔뜩 뒤집어쓴 화포들.

 

▲ 위봉 함에 들어가볼 수 있다.

 

▲ 함 내부에서는 최무선과 화포 이야기, 해전사, 한국전쟁사 등을 볼 수 있다.

 

▲ 스탬프도 잊지 말자.

 

교통이 편리한 곳에는 상권이 발달하고, 상권이 발달한 곳에는 돈이 모이며, 돈이 모이는 곳에는 금융기관이 들어선다.

철길 바로 남쪽에는 일본식 건물이 여러 채 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옛 조선은행 건물이다.

지난 2013년 보수·복원을 거쳐 지금은 군산 근대건축관으로 쓰이고 있는 이 건물은 1922년 지어진 건물인데,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꽤 세련된 외관을 하고 있다.

벽돌과 석재로 구성된 이 2층짜리 건물 안에는 옛 군산역 등 근대 건축물 모형·사진 등과 과거 일제 강점기의 수탈 상을 보여주는 자료가 전시돼 있다.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옛 건물의 벽체를 그 자리 그대로 보존해 유리 벽을 둘러쳐 놓은 부분이다. 단지 단순한 벽체요 창틀일 뿐인데, 과거와 현재가 손을 맞잡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 근대건축관으로 쓰이는 옛 조선은행 건물.

 

▲ 옛 조선은행 건물의 흔적을 남겨둔 모습.

 

▲ 오래 전의 군산역 등 근대 건축물 모형이 전시돼 있다.

 

은행이라면 또 옛 일본 제18은행 건물을 빼놓을 수 없겠다.

일본 제18은행은 나가사키에 본사를 두고 있던 은행으로, ‘나가사키 18은행’ 또는 나가사키의 한자 표기(長崎)를 따서 ‘장기 18은행’으로 부르기도 한다.

왠지 기분이 나쁜 숫자 18은 일본에서 18번째로 설립 인가를 받은 은행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1907년 설립된 군산 지점은 제18은행의 7번째 지점이었다.

▲ 근대미술관으로 쓰이는 옛 일본 제18은행 건물.

이 건물은 1911년 준공됐는데, 1936년 지점 폐지 이후 조선식산은행에 팔렸고, 이후 다시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가 매입해 쓰기도 했다.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는 대한통운의 전신이다.

지난 2008년 보수·복원 후 군산 근대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건물 뒤쪽으로 나가면 금고를 볼 수 있다. 금고 위에 적힌 글귀가 인상적이다.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

전라북도는 1910년 기준 일본인 소유 경지면적 비율이 18.92%로 2위 전남의 세 배에 달했다. 군산항을 통해 유출된 미곡은 1926년 137만 석, 1933년 179만 석이었고, 1934년에는 200만 석에 이르렀다. 이는 조선 전체 쌀 생산량의 20%를 넘는 것이었다.

▲ 금고.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만 했다”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근대미술관 주변으로 장미갤러리, 옛 미즈상사(현 미즈카페), 옛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 창고(현 장미공연장) 등 일제 강점기 건물들이 한 블록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이 모양만으로도 꽤 신선하다. 마치 군산이 아니라 어디 일본 나가사키에라도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혹은 중국 남경 1912거리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고.

그리고 그 중심에는 군산 ‘시간여행’의 기점인 근대역사박물관이 있다.

지난 2011년 문을 연 근대역사박물관은 지난해 무려 81만5337명이 찾은 관광 명소이자 근대역사지구의 구심점이다.

특히 3층 ‘근대생활관’은 1930년대 군산을 충실히 재현해 놓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시간여행 튜토리얼’을 경험해 봐도 좋을 듯하다.

▲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 들어서면 등대와 소방펌프가 맞이한다.

 

▲ 매우 다양한 곳에서 찾아오셨다.

 

▲ 물론 스탬프 찍는 것은 잊지 말자. 총 8장으로 된 스탬프 용지는 박물관에서 나눠준다.

 

군산부두역 터를 지나온 철길은 근대역사박물관 건물 뒤로도 몇 가닥 뻗어 있다.

여기서 끝나는 레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거의 파묻혀 있던 레일의 끝부분은 위로 들려 있다.

그 바로 옆 목화밭 건너편에는 어디에 있던 것인지 걷힌 레일과 폐침목이 쌓여 있고, 그 뒤로 보일 듯 말듯 철길이 지나고 있다. 원래 해망동까지 이어져 있던 철길은 그러나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이내 자취를 감춘다.

▲ 끝을 향해 달려가는 철길.

 

▲ 폐침목, 레일.

 

▲ 9월 6일, 이날 찾을 수 있는 철길 흔적은 여기까지였다.

 

▲ 온통 담쟁이 넝쿨이 뒤덮은 옛날 창고 건물과 근대역사박물관과 함께.

 

선로의 끝단이 가리키는 곳에 군산 세관이 서 있다. 1908년 지어진 세관 옛 본관 건물은 벽돌로 지어진 아담한 서양식 단층 건물로, 지금은 ‘호남관세전시관’이라는 문패를 달고 있다.

철길을 따라온 쌀은 이곳을 거쳐 강철로 된 배에 실려 바다로 나갔다.

▲ 옛 군산 세관 본관 건물.

 

▲ 군산 세관.

 

쌀이 떠나고, 한국전쟁 이후 군산부두역이 기능을 잃으면서 기차도 떠나고, 1979년 군산 외항이 개항하면서 큰 배들도 떠나고, 그리고 그 모두가 지나야 했던 세관은 108년째 말없이 그 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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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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