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의 기점은 역시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이다. ‘시간여행! 군산 근대항 스탬프 투어’도 근대역사박물관에서 시작하고 말이다.
군산시 관광진흥과가 배포하는 ‘근대역사문화거리 관광안내도’도 근대역사박물관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고 이 박물관을 중심으로 도보 8분권, 15분권, 20분권 등 권역이 표시돼 있는 것을 보면 애초 군산시의 의도가 이것이었던 것 같다.
이곳에서 출발해 발길 따라 20분 거리, 군산 근대역사문화거리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을 (앞선 기사에서 소개한 곳은 빼고)여섯 곳 골라봤다. 마침 오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군산 시간여행 축제’가 열린다.
옛 군산 세관 본관
앞선 기사에서 소개한 군산 근대건축관(옛 조선은행)이나 근대미술관(옛 제18은행) 등을 제외하면,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에서 출발하면 아마 가장 먼저 들르게 되는 곳이 이곳 아닐까. 박물관 바로 옆에 있으니 말이다. 특히 ‘스탬프 투어’에 욕심을 낸다면 근대역사박물관에 이어 두 번째로 들러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군산항이 열린 것은 1899년. ‘개항’이라는 말은 ‘항구가 열린다’는 뜻인데, 이 ‘항구’는 ‘무역항’을 말하는 것이었다. 무역에는 통관 절차와 관세가 따르고, 이런 업무를 맡아 보는 기관도 필요했을 터다. 그래서 세워진 것이 이 군산 세관이다.
1908년 지어진 옛 군산 세관 본관 건물은 지금은 호남관세전시관으로 쓰인다. 아담한 서양식 단층 건물인데, 석재와 벽돌이 적절한 비율로 쓰여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준다.
세관이라는 기관의 특성상 군산항을 통해 이뤄졌던 수탈의 기록을 담고 있다.
또 군산 세관이 적발한 각종 신묘한 물건들을 전시해놓은 곳도 있는데, 석궁이나 총 같은 위험한 물건부터 호랑이 탈(...), 비아그라(...) 같은 물건들도 볼 수 있다.
얼핏 보고 지나가면 모를 수도 있겠는데, 세관장실에서 제복을 입고 ‘코스프레’를 해볼 수도 있다. 인스타그램에 이런 인증샷 한 컷쯤 올리는 것도 재미지 않을까.
빈해원과 이성당
‘군산 맛집’이라 하면 중화요리 전문점 이름이 여럿 나온다. ‘짬뽕 명가’만 해도 벌써 복성루, 쌍용반점, 용해장, 수송반점 같은 이름들이 술술 나오는데, 역시 항구도시라 그런지 다들 해산물을 잘 쓰기로 정평이 나 있다.
쟁쟁한 군산 중화요릿집 가운데서도 특별한 한 곳을 꼽자면 아무래도 빈해원을 꼽아야 할 것 같다. 1952년 개업, 엄연히 군산 역사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지난 2010년 개항 111주년을 맞아 군산시청이 선정한 ‘군산 기네스’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군산 근대건축관(옛 조선은행)에서 길을 건너면 나오는 빈해원은 겉모습은 초라하다.
아무리 봐도 ‘그냥 평범하고 오래된 중국집’ 정도의 인상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2층 구조인 식당 안으로는 넓은 홀이 나오고, 옛날 여관을 연상시키는 작은 방이 좌우로 늘어서 있다. 그 양식이 마치 중국에 있는 건축물을 그대로 들어다 심어놓은 것처럼 돼 있어 인상적이다. ‘꽁시파차이’라고 읽는 ‘恭喜發財’ 글씨가 붙어 있고 붉은 등이 여럿 걸려 있는 것을 보면 영락없다.
이곳의 대표 메뉴로는 역시 짬뽕을 꼽을 수 있다. 짜지 않으면서 칼칼한 것이 퍽 자연스러워 그릇째 들고 들이키게 된다. 물론 탕수육, 별미고추초면 역시 널리 입소문을 타고 알려진 주력 상품이다.
카테고리는 조금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인 이성당 또한 군산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맛집이다.
광복을 맞은 해인 1945년에 ‘이성당’이라는 이름으로 개업한 이 빵집은 군산은 물론 우리나라 전체를 놓고 봐도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전주에서는 관광객들이 죄다 PNB의 주황색 종이봉투를 들고 다닌다고 하면, 군산에서는 이성당의 노란 종이봉투가 정확히 그 자리에 놓인다고 보면 된다.
이성당을 찾을 때는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팥, 야채. 팥 앙금빵과 야채빵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이 두 가지를 찾는 손님을 위한 대기 장소가 따로 마련돼 있을 정도다.
달달하면서 깊은 맛이 나는 팥 앙금은 여름에는 빙수에도 올라가는데, 이 역시 일품이다.
물론 이성당 역시 ‘군산 기네스’에 등재돼 있다.
고우당이 고우당께
형용사 ‘곱다’는 ‘고’와 ‘-ㅂ’, 그리고 ‘-다’로 이뤄져 있다. 활용 때에는 ‘고운’, ‘고우니’ 등과 같이 ‘우’가 붙곤 하는데, 이는 ‘-ㅂ’이 변한 것이다.
가끔 이것이 사람들 입에서 ‘고우다’, ‘고우당께’ 등으로 나오기도 한다. ‘추+우+ㅓ’인 ‘추워’가 가끔 ‘추+ㅂ+ㅓ’, ‘추버’로 나오기도 하는 것의 역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군산 근대역사문화거리 한가운데에 위치한 근대역사체험공간 ‘고우당’은 한자로 ‘古友堂’, 그러니까 ‘옛 벗 집’인데, 전라도 사투리 ‘고우당께’를 표현한 것이라고도 한다.
지난 2012년 문을 연 고우당은 이듬해 ‘제2회 군산시 건축문화상’에서 ‘아름다운 건축물’ 부문 금상을 받을 정도로 곱다.
옛 가옥을 고쳐 다듬은 일본식 건물이 모여 있으니 꼭 일본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게스트하우스’로 알려진 고우당의 핵심은 물론 숙박공간이다. 다다미가 깔려 있고 겨울에는 코타츠(일본식 탁자형 난방기구)가 놓이는 일본식 공간인데, 그 이국적인 모습이 신선하다.
건물들 가운데 놓여 있는 정원은 정원을 둘러싼 일본식 건물과 연못, 징검다리와 나무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선사한다. 취재팀이 방문한 날은 구름이 많이 꼈지만, 하늘이 새파란 날이나 눈이 많이 쌓인 날이라면 더욱 아름답다.
고은 시인의 동명의 시에서 이름을 따온 선술집 ‘세노야’와 편의점, 카페가 딸려 있다. 또 히로쓰 가옥이나 동국사, 창작문화공간 여인숙 등 주변 명소와도 가까워, 군산 ‘시간여행’의 거점으로 삼기에 손색이 없다.
동국사의 아이러니
담장 위, 분홍빛 꽃이 몽글몽글 달린 배롱나무 가지를 따라 시선을 움직이면 경사로 끝 대문을 지나게 된다. 이어 오른쪽으로 시선을 다시 옮기면, 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웅장하게 아주 큰 것도 아닌, 그러면서 또 뭔가 지붕 모양이 이질적인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동국사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이다. 동국사의 모체는 1909년 일본 조동종 계열 승려 우치다(內田)가 세운 ‘금강선사’라고 하는데, 현재의 자리에 세워진 것은 1913년이다. 그러니까 동국사 대웅전이 지어진 지는 올해로 103년이 지난 셈이다.
건축 당시 일본인 승려가 일본에서 건축자재를 들여와 지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듣고 보니 더욱 ‘일본스러운’ 느낌이다.
그러나 이 ‘일본인이 일본산 자재를 가지고 지은 일본식 사찰’의 모습을 완성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범종각 근처, 대문에서는 곧바로 정면에 위치한 ‘참사비’와 ‘소녀상’이다.
지난 2012년, 일본 ‘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이 주관해 이 비석을 세웠다(관련기사 : 日 불교종단 동국사에 '참사비' 제막). 제막식이 열린 날은 9월 16일이었는데, 그날이 바로 동국사 창건 기념일이었다.
참사비에는 그보다 20년 전인 1992년에 발표된 ‘참사문’의 일부가 적혔다. ‘참사문’이란 ‘참회와 사죄의 글’이라는 뜻이다. 전쟁이 끝난 것이 1945년이었으니, 좀 늦은 감이 있다.
“우리 조동종은 명치유신 이후 태평양 전쟁 패전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해외포교라는 미명 하에 당시의 정치권력이 자행한 아시아 지배 야욕에 가담하거나 영합하여 수많은 아시아인들의 인권을 침해해 왔다. …(중략)… 과거 일본의 억압 때문에 고통을 받은 아시아 사람들에게 깊이 사죄하면서 권력에 편승하여 가해자 입장에서 포교했던 조동종 해외 전도의 과오를 진심으로 사죄하는 바이다.”
2012년 참사비 제막식에 참석한 이치노헤 쇼코(一戶彰晃) 스님은 당시
“일본 불교계는 근대화를 추진하는 일본의 국가 권력에 협력하여 전쟁에 가담했다.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동아시아에 남긴 점을 참회하며 사죄드린다”
고 말했다(관련기사 : "일제 강점기 과오, 용서 빕니다" 군산 동국사 '참사문비' 건립 日 이치노혜 쇼고 스님). 또 과거 침탈 자료들을 군산시에 기증하기도 했다.
참사비 앞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서 있다. 일본군이 강제로 동원한 이른바 ‘위안부’ 문제를 상징하는 것이다.
지난해 세워진 이 소녀상은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그 시선은 대웅전 옆 요사채에 가 닿는다. 대웅전과 연결돼 있는, 일본인이 일본산 자재로 지은 일본식 건물이다.
제국주의와 국가 가부장제가 만들어낸 이 거대한 집단 성폭력 사건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아무도 일본 정부가 건네는 10억 엔을 ‘참회와 사죄의’ 표시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한편 동국사는 그 자체도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지만, 고우당에서 길 건너 올라오는 ‘동국사길’ 전체가 또 훌륭한 문화예술 거리다. 1960년 개업해 2006년까지는 ‘상봉여인숙’이었던 문화창작공간 여인숙이 이 길에 있고, 발달장애 대안학교인 산돌학교가 있다. 같은 건물에 산돌갤러리와 고은 시화전시관이 있다.
‘아수라발발타’ 신흥동 히로쓰 가옥
어릴 적에는 주위 사람들이 ‘히로쓰 가옥’, ‘히로쓰 가옥’ 하니까 ‘히로쓰’라는 말이 어떤 건축 양식을 가리키는 말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 이 집을 세운 ‘히로쓰 게이샤부로’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지금은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은 2층짜리 목조 건축물 두 채와 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정원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돌과 나무의 배치가 꽤 조화롭다. 조그만 석탑은 귀여운 느낌마저 든다.
이 집을 지은 사람이 포목점과 농장을 운영하던 지주였으니, 이 건물과 정원도 결국 농민 수탈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눈썰미가 좋은 이들에게는 낯이 익을 수도 있다. 바로 영화 ‘타짜’에서 고니(조승우)가 평경장(백윤식)에게 도박을 배우던 곳이다. ‘아수라발발타’ 하는 소리가 문득 귀를 스친다.
사실 이 일대에는 이런 ‘일본식 가옥’이 여럿 있다. 그냥 길을 걷다가도 뭐가 보여서 보면 그게 ‘일본식 가옥’이고 그렇다.
이를테면 옛 조선주조 군산 분공장이 있던 건물은 지금 게스트하우스로 쓰이고 있다. 고우당 인근 사거리에 위치한 관광안내소나 동국사길 들어가는 입구 즈음에 위치한 군산항쟁관도 일본식 건물이다. 길 가다 마주친 조그만 상가 건물이 뭔가 평범하지 않은 것 같아서 보면 일본식 건물이다. 이런 것들이 거리 발 닿는 데마다 하나씩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든다.
‘시간여행’이라면 ‘시간여행’이랄 수 있지만, 그 기분을 조금 더 엄밀하게 말한다면 ‘시간의 모자이크’라고 할까. 1900년대의 조각과 1930년대의 조각과 1960년대의 조각과 2000년대의 조각이 ‘무심한 듯 시크하게’ 붙어 있는 느낌이다.
그 시대에 고정된, 어떤 잘 통제된 그런 ‘박제된’ 것이 아니라, 한 블록을 걸어도 100년의 시간을 관통할 수 있는, 그런 살아있는 거리. 그것이 군산의 근대역사문화거리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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