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이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을 모시고 왕복 2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앞에 달리던 스쿨버스가 달리다가 속도를 줄이며 노란색 점멸등을 켜고 갓길에 정지한 후에 빨간 점멸등으로 바꾸었다. 바로 도로 가운데 차를 세웠더니 한 분이 왜 갑자기 정지하냐고 물으신다.
“스쿨버스가 아이들을 내려주고 있으니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차량은 모두 정지해야 합니다.”
“아 그래요? 우리 같으면 뒤에 차들이 빵빵거리고 난리가 났을 텐데? 어? 그런데 반대편 차선의 차들은 왜 섰어요?”
“네, 혹시라도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려 무단으로 길을 가로질러 건널 수도 있으니 건너편 차들도 스쿨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모두 정지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매일 2700만 이상의 학생들이 스쿨버스로 통학을 하는데 1년에 스쿨버스 사고로 죽는 아이들의 숫자는 평균 다섯 명 정도이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가 매년 3만 명에 달하는 미국에서 스쿨버스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0.02%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스쿨버스가 많지 않은 한국은 대신 학원버스가 많은데 1년에 학원버스 사고로 사망하는 숫자가 약 150명에 달한다. 600만 명 학생들의 절반인 300만 명이 학원버스를 이용한다고 가정할 때 한국의 학생이 학원버스 사고로 사망할 위험이 미국의 학생에 비교해 270배 정도 높은 것이다.
미국은 어떻게 스쿨버스 사고 사망자 수를 이렇게 줄일 수 있었을까?
일단 스쿨버스는 일반 차량과 다르게 만들어진다. 미국의 스쿨버스는 1930년대부터 차체는 강철을 사용하고 유리도 안전유리를 사용토록 했다. 그리고 운전자가 학생들의 승하차를 직접 확인하며 문을 여닫을 수 있도록 차량 앞에 문을 설치하게 했으며 비상시에 학생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뒤쪽에도 문을 별도로 두도록 했다. 이후 70년대에는 버스가 사고로 구를 때 차체가 손상되거나 분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차체를 이어 붙이지 않고 하나의 단일 차체로 만들도록 했다. 그리고 눈에 잘 띄게 노란색으로 칠해진 버스는 상황에 따라 주황색과 빨간색 점멸등을 설치해 학생들이 승하차 중이라는 것을 알려 다른 운전자들이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정차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 외에도 충돌 시에 차량의 앞부분이 충격을 효과적으로 흡수하며 찌그러지도록 설계돼 학생들이 타고 있는 부분의 손상을 최소화한다. 또 학생들의 의자 높이를 높여서 사고 시에 학생들이 좌석에서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게 했고, 운전자의 좌석은 운전자가 버스 내외부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위치와 높이에 두도록 설계되었고 각종 계기판도 운전자가 손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단순화해 설치됐다.
버스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상업용 면허 중에 별도의 스쿨버스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일반 면허보다 훨씬 더 어렵고 많은 필기 테스트를 통과한 이후엔 차량 안전 점검, 코스 및 주행 테스트를 두 시간 동안 실시해 차량의 문제를 미리 파악하고 운전 중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이런 규정은 1930년대 유타주에서 발생했던 짙은 안개 낀 날에 스쿨버스 운전자가 시각에 의존해 안전을 확인하고 건너다 생긴 사고 이후에 도입됐다.
학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방식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10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다.
해마다 통학버스 사고로만 세월호 희생자의 절반가량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우리는 세월호에서 무엇을 배웠으며 아이들의 안전은 그동안 얼마나 나아졌을까? 이제는 책임자 처벌과 희생자 추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예방 방안들을 마련하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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