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빌 아데어(Bill Adair) 듀크대 교수-
“선거 때 가짜뉴스 중에는 수년 전 이민자가 저지른 범죄가 지금 발생한 것처럼 둔갑돼 반 이민정서를 키운 내용도 많다”
-조반니 차니(Giovanni Zagni) 파겔라폴리티카 대표
“사람의 얼굴을 합성하는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은 두려울 정도다”
-크리스천 리에스(Christian Riess) 에어랑렌 뉘른베르크대 교수-
팩트체크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발언이다. 동영상도 사진도, 이제는 검증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몇 년 전부터 한국 언론에서도 팩트체크가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가짜 뉴스’가 만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예맨 난민 500여명이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입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심화됐다. 그들을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끓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받아준 국가에서 살인·강간·폭행을 일삼는 사람들’이라는 거짓 프레임이 덧씌워졌다. 최근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는 ‘무슬림 남성에게 폭행당한 영국 여성들’이라는 사진이 돌고 있을 정도다.
이런 가짜뉴스의 생산자는 누구일까. 현재까진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넘쳐나는 가짜뉴스 속에서 언론은 팩트체크를 통해 ‘사실(Fact)’을 건져 올려야 한다. 정치, 사회적으로 가짜뉴스가 만연했던 최근은 더욱 그렇다.
사실 팩트체크는 언론에게 있어서 기본 중의 기본이다. 언론이 기본을 잘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방법을 찾기 위해 본보 기자가 6월 20일~22일 로마에서 열렸던 ‘글로벌 팩트체크 서밋’(Fifth Global Fact Checking Summit, Global Fact Ⅴ)에 참가했다. 미국 미디어 교육기관인 포인터 재단(Poynter Institute) 산하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International Fact Checking Network)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올해로 5회째를 맞았다. 올해는 전 세계 56개 나라에서 225명의 팩트체커(Fact Checker)들이 참석, 다양한 토론과 발표 등을 통해 전 세계 팩트체크의 현 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놓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진화하는 가짜뉴스
사진·동영상 조작을 통한 가짜뉴스는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올해 글로벌 팩트체크 서밋에서 소개한 사례들은 이미 ‘악마의 편집’ 수준을 넘어섰다. 과거에 찍힌 영상이나 사진이 최근 것으로 유통되며, 영상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나라별 상황에 맞게 내용도 변형된다.
특히 올해 서밋에서는 영상에 나온 인물의 외형과 감정을 조작하는 기술인 ‘딥페이크(Deepfake)’가 큰 화두였다. 가령 A라는 사람에게 B라는 사람의 얼굴, 목소리, 표정, 감정을 합성하는 식이다. 변조도 가능하다. 주로 유력 정치인의 생중계 영상이 조작의 대상이다.
올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설을 조작한 영상이 소개됐다. 영상 속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의지에 따라 파리 기후 협정을 탈퇴해야 한다. 벨기에에서 실제 하는 일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트럼프는 실제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이 영상은 벨기에 플랑드르 사회당(Flemish Socialist Party)이 기후 변화에 대처할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지난해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한 트럼프 얼굴을 활용해 조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공적인 인물이 등장한 영상이 뉴스로 둔갑해 유포될 경우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IFCN 알렉시오스 만찰리스(Alexios Mantzarlis) 국장은 “팩트체커들이 영상이나 사진을 입수한 뒤 검증을 하지 않고 근거로 활용하면 도리어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에어랑렌 뉘른베르크대학교 크리스천 리에스(Christian Riess) 교수도 “저널리스트들은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동영상과 사진을 뉴스로 쓸 때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짜뉴스에 맞춰 진화하는 팩트체크 기술
팩트체크 기술도 서서히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건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팩트체킹 자동화(automared fact checking)다. 다만 현재는 팩트체킹이 가능한 발언을 추출하거나 기존 데이터베이스 검색 결과와 대비시켜 사람의 팩트체크가 보다 빠르게 이뤄지도록 보조하는 수준이다.
아르헨티나 팩트체크 단체인 체케아도(Chequeado)는 자신들이 만든 체케아봇(Chequeabot)을 소개했다. 이 툴은 전국 30개의 언론 텍스트를 자동으로 스캔해서 정치인이 했던 발언을 추출한다. 검증은 수동으로 이뤄지는 데, 기존의 팩트체크와 데이터베이스화된 1000개의 사례를 대조해서 진위여부를 가려낸다.
영국의 펙트체크 공익단체인 ‘풀 팩트(Full Fact)’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이들은 BBC 방송과 의회 발언록에서 확인이 가능한 클레임을 자동으로 가져와서 기존 데이터베이스 자료와 비교해 검증하는 프로그램을 시연했다. 가령 “실업률이 줄어들고 있다”는 정치인의 발언을 음성으로 인식하면, 영국 통계청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 자료를 찾아와 자동으로 사실여부를 검증한다. 담당 국장인 메반 바바카르(Mevan Babakar)는 “정치인들이 기자회견에서 거짓주장을 하면 신속하게 검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브라질의 아오스 파투스(Aos Fatos)는 소문과 주장에 대한 독자의 질문에 자동으로 응답하는 페이스북 메신저 봇 ‘파티마(Fatima)’를 선보였다.
이런 기술진화의 흐름에 발맞춰 글로벌 IT기업인 페이스북도 자동화 검증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프로덕트 매니저인 테사 라이언스(Tessa Lyons)는 “뉴스피드에 올라가는 가짜뉴스를 추려내기 위해 알고리즘 개선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인공지능을 활용한 머신러닝기술을 통해 가짜뉴스를 판별하고 프랑스, 멕시코 등 4개국에선 영상, 사진조작 검증 시스템도 실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대 협업 통한 팩트체크의 정교화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국가에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형태의 팩트체크 전문기업과 NGO, 프리랜서를 중심으로 팩트체크 활동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주로 연대와 협업의 모델을 추구한다. 진화하는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해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상호보완하기 위해서다. 그만큼 검증방식도 다양해진다. 일부 기성 언론들은 이들과 파트너십을 맺기도 한다.
서밋에서는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됐다. 프랑스의 국제보도 전문채널인 ‘프랑스 24(France 24)’는 세계 여러 나라의 관측자(Observer)들과 손을 잡고 팩트체크 취재와 방송제작을 한다. 관측자는 프랑스 24에 자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혀온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며, 이들은 간단한 심사를 통해 선발된다. 지난 10년간 모인 관측자는 5000여명이다. 이들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돌아다니는 사진과 영상 중 정밀한 검증이 필요한 것들만을 골라 팩트체커들의 이메일과 사회관계망 서비스로 보낸다. 거주하는 지역의 큰 사건과 사고에 대한 뉴스를 제공하고 직접 TV프로그램 제작·방영에도 참여한다. 해당 시스템을 만든 데릭 탐슨(Derek Thomson)은 “정확한 팩트체크를 위해서는 비전문가들과의 의사소통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르헨티나의 체케아도(Chequeado)도 좋은 협업 모델을 만들었다. 이들은 직원 12명과 자원봉사자 20명 정도의 작은 조직이지만 아르펜티나의 미디어 회사들과 제휴를 맺어 파급력을 높였다. 이들은 데이터 크라우드 시스템을 통해 자사와 협력사가 팩트체크를 위해 공유한 데이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미국 듀크대학교 언론인 연구실(Duke Reporters‘ Lab)은 매일 컴퓨터가 자동으로 CNN방송을 모니터링해서 추출한 팩트체크 소재를 워싱턴포스트, 팩트체크 전문 온라인 저널리즘 폴리티팩트(PolitiFact), NBC방송의 프로그램 ‘미트 더 프레스(Meet the Press)를 상대로 제공한다. 이들은 또 폴리티팩트 등 미국 3대 팩트체크 기관의 결과물을 자동으로 제공하는 앱인 팩트스트림(FactStream)을 개발했다.
SNU팩트체크 정은령 센터장은 “기술적으로 진화하는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해 팩트체커와 학계, IT사업자들이 협력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이다”며 “해마다 노하우가 축적되고 구체화하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nternational Fact-Checking Nework)
국제 팩트체킹 네트워크(이하 IFCN)는 2015년 미국의 미디어 교육기관인 포인터 재단에 의해 설립된 전 세계의 팩트체크 기관을 위한 포럼이다. IFCN은 세계적으로 펙트체크의 열기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분야를 활성화하기 위해 출범했다. 이탈리아 정치 팩트체크 웹사이트 파겔라 폴리티카의 공동 설립자인 알렉시오스 만찰리스가 이끌고 있다.
IFCN은 전 세계 팩트체커들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언론재단(American Press Institute)과 제휴해서 팩트체커 양성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전 세계 팩트체커들의 국제 교류를 돕기 위해 매년 글로벌팩트(Global Fact)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특히 컨퍼런스에서는 팩트체킹과 인지과학, 팩트체킹의 자동화 등 팩트체크와 관련한 광범위한 주제로 세미나가 열린다. 올해는 전북일보를 비롯해 KBS, MBN, SBS, 경향신문, 머니투데이, 문화일보, 부산일보,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 등 10개 언론사의 팩트체크 담당기자들과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팩트체크센터 정은령 센터장 등이 참석했다.
IFCN은 팩트체커가 지켜야 할 강령(The Code of Principles)을 마련해놓고 있다. 강령은 불편부당성과 공정성을 위한 헌신, 정보원의 투명성, 자금과 기관의 투명성, 방법론 공개, 기사 수정에 대해 열린 자세 등 다섯 가지다. 이 강령에 따라 팩트체크 기사를 쓰는 데 활용한 근거와 사용한 재원 등을 공개한다.
IFCN은 이 강령에 따라 자신들의 운영방식을 밝힌 팩트체크 기관을 회원사로 인증해주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의 폴리티팩트와 워싱턴포스트 팩트체커, 영국의 풀팩트 등 세계 57개 단체가 회원사로 등록돼 있다.
※이 취재는 한국언론학회와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 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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