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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미술 인문학'] 한옥마을과 콘텐츠

2019년 11월 공개되었을 때의 경기전 어진박물관의 태조 어진. 한옥마을의 가장 중요한 콘텐츠임에도 년중 20여일만 공개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19년 11월 공개되었을 때의 경기전 어진박물관의 태조 어진. 한옥마을의 가장 중요한 콘텐츠임에도 년중 20여일만 공개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연간 천만의 관광객이 든다는 한옥마을에는 독보적인 콘텐츠 하나가 있다. 바로 ‘현존하는 유일한’ 태조어진이 그것이다. 태조는 조선의 개국 시조로서 왕실의 영구한 존속을 도모하는 의미에서 국초부터 어진을 봉안했는데, 전주 경기전 외에도 서울, 영흥, 평양, 개성, 경주 등에 봉안 되었지만, 남은 것은 경기전 어진이 유일하다.

이 어진도 1872년 당시 경기전에서 받들던 어진이 오래되어 낡고 해짐에 따라 영희전에서 받들던 태조어진을 범본으로 하여 화사 박기준, 조중묵, 백은배 등이 모사한 이모본이라고 한다. 이모본이라 하지만 원본에 충실하여 이성계의 위풍당당한 군주의 위엄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익선관과 곤룡포를 착용한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곤룡포의 윤곽선은 각지게 묘사되었고, 용상에는 용문양이 새겨져 있고, 채전(채색 양탄자)은 높이 올라가 안정감을 준다. 한옥마을 입장에서 보면 태조어진은 곧 한옥마을의 혼과 같다. 그래서 단순 관광지가 아닌, 풍패지관으로서의 풍취를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 눈에 익숙한 한옥마을 풍경은 한복을 빌려 입은 젊은 남녀들이 사진 찍는 모습, 전동킥보드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 카페 와 식당 그리고 선물가게 등 일반적인 모습이지만 중요한 콘텐츠는 지루해지기 쉬운 풍경을 의미 있게 바꾼다. 콘텐츠는 새롭게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경기전, 향교, 전동성당, 풍남문 등 이미 알려지고 고정된 것은 한번 보고나면 더 흥미를 끌지 못한다.

예를 들어 조선후기 창암 이삼만의 진본 서예를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면 관람객의 시선은 한옥마을에서 조선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깊이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창암은 조선의 동국진체를 완성한, 조선후기 3대 명필로 꼽히고 전주가 자랑할 만한 예술가이다. 관람객의 영혼을 울리는 콘텐츠 없이 단순히 한옥마을이 명소로 지속하기를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제대로 된 콘텐츠를 만들어야 산다. 이것이 한옥마을 관광 브랜드를 두텁게, 매력 있게 만든다.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즐기는 것과 정신적인 것이 공존해야 힘을 받는다. 관광객을 우습게보지 말라. 그들은 단순히 소비하러 온 고객이 아니다. 관광 산업이 탄력을 받기를 기대하면서도 제대로 된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바보 행정이 된다. 이제 껍데기를 벗어나 정신적 기대를 충족시키는 정도까지 가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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