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1-29 00:44 (금)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장석원의 '미술 인문학'
일반기사

[장석원의 '미술 인문학'] 백석의 시 그리고 사랑

젊은 시절의 백석
젊은 시절의 백석

내가 좋아하는 백석의 시 중에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백석을 사랑했던 김자야의 글을 보면 그들의 청진동 시절, 모처럼 같이 외출을 하여 명동의 제일다방을 들러 백석이 문학하는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사이 김자야가 슬그머니 나와서 ‘문예춘추’와 ‘여원’을 사서 나오다가 문득 한 가게의 쇼윈도에 걸린 넥타이 하나가 눈에 띄어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 백석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 사서 곧바로 매어드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뒤로 당신은 매일 출퇴근뿐만 아니라 바깥나들이를 할 때마다 늘 꼭 내가 선사한 그 넥타이만을 즐겨 매고 다니셨다. 지금 그 넥타이가 이렇게 당신의 시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의 한 대목에 들어가 있을 줄이야.’

만년의 김자야. 시가 1000억원대의 대원각 부지를 헌납하고 아깝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내가 평생 모은 돈은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 나에게 그의 시는 슬슬한 적막을 시들지 않게 하는 맑고 신선한 생명의 원천수였다.’고 답했다
만년의 김자야. 시가 1000억원대의 대원각 부지를 헌납하고 아깝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내가 평생 모은 돈은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 나에게 그의 시는 슬슬한 적막을 시들지 않게 하는 맑고 신선한 생명의 원천수였다.’고 답했다

그들의 사랑은 짧았지만, 그 사랑에 대한 기억은 시로서 또는 회고록을 통해 영원히 남아있다. 기생 신분으로 시인을 사랑했던 그녀는 1955년부터 성북동에서 운영하던 한정식 집 대원각을 1987년 법정 스님에게 불교도량으로 만들 것을 요청하여 1997년 길상사가 창건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세워진 공덕비에는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가 적혀 있는데, 연애시절 백석이 친필로 적어준 시로 알려져 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비극적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사랑은 변함없이 감동을 준다. 뱁새가 우는 산골의 오두막이 아니어도 그리움은 눈이 푹푹 날리는 날 홀로 앉아 소주를 마시게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