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를 승리로 이끈 슬로건이다. 경제를 강조한 이 슬로건으로 클린턴은 냉전 승리와 안보 성과를 선거 전략으로 내세운 공화당 조지 부시 후보를 꺾고 미국의 42대 대통령에 당선돼 연임에 성공했다. 클린턴에게 대선 승리를 안긴 ‘바보야, 문제는~’이란 구호는 우리나라에서도 책 제목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경구(警句)로 사용돼 왔다.
“바보야, 전북의 문제는 비정상이야!”
현직 시장이 정당의 지역위원장을 맡으면서 제기된 지방의회 무력화 논란, 불륜 스캔들의 당사자인 시의원의 버젓한 의정활동, 임기가 절반 이상 남은 현직 경제단체장의 다른 경제단체장 선거 출마.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전북의 현주소다.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져 비정상이 마치 정상이 된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다.
민주당은 지난해 7월 남원·순창·임실 지역위원장 직무대행에 이환주 남원시장을 임명했다. 현직 시장이 정당의 지역위원장에 임명된 것은 전북에서는 처음있는 일로 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결정”이라며 반발했다.
남원시의원들 사이에서도 “시장이 공천권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누가 거리낌없이 집행부를 견제할 수 있겠느냐. 민주주의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대단히 잘못된 일”이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청와대에 이 시장의 지역위원장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국민청원까지 제기됐다. 비정상을 바로잡으라는 지역의 비판적 지적에 대해 이 시장 본인은 물론 민주당도 속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제시의회는 지난해 남녀 의원간 불륜 스캔들 주장으로 본회의장이 난장판이 되면서 전국적인 망신을 샀다. 시의회가 ‘부적절한 관계’로 물의를 일으킨 해당 의원 2명을 제명했지만 여성 의원은 법원에 제기한 ‘의원 제명 집행정지 가처분’이 받아들여져 의원직에 복귀했다.
김제지역 시민단체는 “설령 불륜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시의회 본회의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린 치욕스런 현장의 당사자란 점에서 시민들에게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란다”며 여성 의원의 의원직 재박탈을 촉구하고 시의원 전체에 대한 탄핵운동까지 경고했지만 달라진 건 없다. 해당 의원을 공천한 민주당도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
다음달로 예정된 전주상공회의소 회장 선거도 지역 경제계에 나타난 비정상의 단면이다. 3명의 후보가 정치판 선거 같은 볼썽사나운 회원 모집 경쟁에 열을 올려 매표 논란까지 제기됐다. 더욱이 전북건설협회장 임기가 절반 이상 남아있는 윤방섭 회장의 선거 출마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지난 2019년 7월 취임한 윤 회장은 취임사에서 “앞으로 4년간 혁신으로 상생건설, 비전으로 희망건설을 실현하겠다. 지역건설산업 발전과 회원들의 권익보호에 앞장서겠다”고 밝혔었다. 그의 재임기간 1년 반 동안 상생건설과 희망건설이 실현되고, 지역건설산업 발전과 회원들의 권익 신장이 충분히 이뤄진 것인지 궁금하다.
전주상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기도 한 그의 회장 선거 도전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맡은 직책을 임기동안 성실히 수행한 뒤 더 나은 봉사의 길을 찾거나, 굳이 임기 안에 다른 봉사를 원한다면 지금 맡고 있는 직을 내려놓고 정정당당하게 나서는 것이 보기좋은 모습이다. 진퇴가 분명한 경제계 리더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정상적이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 父父子子)’는 논어의 구절은 전북 정치·경제계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각자의 위상과 본분에 맞게 처신하고 행동해야 존경받는다. 비정상의 일상화가 계속되는 한 전북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강인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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