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서울에서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집을 내놓은 주민이 같은 아파트 주민들로 부터 집단 항의를 받은 일이 있었다. 같은 단지내 아파트 가격을 전체적으로 하락시킨다는 불만이었다. 아파트가 주거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넘어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생긴 일이다.
전북혁신도시에서는 얼마전 주민 반발로 아파트 단지 옆에 들어설 제조업체 2곳의 건축허가가 불허됐다. 기업과 연구기관 유치를 위해 미리 마련해둔 혁신도시 클러스터 부지였고, 입주제한업종도 아니었지만 완주군은 기업을 외면했다. 한발 더 나아가 완주군의회는 기업의 입주를 반대하는 결의문까지 채택했다.
해당 업체 2곳은 건물 등의 전기를 제어하고 감시하는 장치인 배전반 생산업체로 외부에서 부품을 가져와 단순 조립하는 기업이다. 공급받는 부품도 중소형 트럭이 2주에 한 두 차례 정도 가져올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제조공장 입주시 소음과 대형화물차로 인해 아파트 어린이와 입주민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며 반발했다. 이면에는 아파트 가격 하락 우려도 담겨있다. 완주군의 건축허가 불허에 업체들은 행정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2019년 0.92명보다 더 낮아졌다. 역대 최저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전북의 합계출산율은 0.90명으로 경기도를 제외한 전국 8개 도(道)지역 가운데 가장 낮았다.
낮은 출산율로 인한 사회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문 닫는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이 늘고, 학생없는 학교는 문을 닫아야 한다. 1982년부터 40년 동안 전국의 3855개 학교가 문을 닫았다. 매년 100개 가까운 학교가 사라지고 있고, 전북은 매년 평균 8개 학교(전체 326개)가 문을 닫았다.
문 닫는 학교들이 늘면서 농촌지역 고등학교와 지방대학의 신입생 모집난이 도미노 처럼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고3 수험생은 더 좋은 대학을 찾아 수도권으로 향하고,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지방 청년들의 수도권 행렬도 줄지 않고 있다. 올해 통계청과 함께 저출산의 원인을 분석한 감사원은 저출산 해결책이 교육과 취업에 있다고 결론 내렸다. 지난 20년간 159만명의 청년층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올라갔는데 대학 진학과 취업 시기에 집중됐다.
정부는 균형발전을 위해 전국에 혁신도시를 조성했지만 지방대학과 일자리에 주는 도움은 여전히 미미하다. 전북혁신도시에는 12개 공공기관이 이전했지만 지역인재 의무채용대상 기관은 5곳에 불과하다. 농촌진흥청과 소속 기관이 모두 제외됐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 혁신도시에 비해 전북인재들이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실제 지역인재 채용률도 전체 채용인원의 10%에도 못미칠 정도로 저조하다.
혁신도시로 이전한 기업의 고용도 아직은 기대 이하다. 2019년말 기준 전국 혁신도시 입주기업 1425개의 77%가 10명 미만 기업이다. 전북혁신도시에는 190개 기업이 이전했는데 수도권 기업은 14곳 뿐이다. 전북혁신도시의 수도권 이전기업 수도 제주·울산·강원에 이어 하위권이다.
아파트 바로 옆에 제조업체가 들어서는 것은 주민 입장에서 분명 반갑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아파트보다 업체가 먼저 자리잡았다면 어찌할 것인가. 전국 지자체마다 기업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마당에 민원을 이유로 건축허가를 불허하는 행정, 민원 조정에 나서기보다 오히려 결의문까지 채택해 기업을 내쫓으려는 지방의회가 오늘의 전북의 모습이다.
저출산과 교육, 취업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과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공유 없이 전북의 미래는 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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