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후와 소외에 둘러싸인 전북
부정적 지역 이미지에 함몰돼
긍정의 DNA 확산 희망 키워야
‘우승도 해본 사람이 한다’는 말이 있다. 미국남자프로골프(PGA) 82승의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갖고 있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나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최다인 20회 우승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위기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승 DNA’를 갖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9년 동안 도민들에게 우승의 기쁨을 선사해 온 프로축구 전북 현대에도 우승 DNA가 있다. 올해 K리그 개막 초반 3경기 연속 패배의 부진에 빠지며 11위까지 추락했지만 우승 DNA를 가진 팀은 달랐다. 중반부터 8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심기일전해 리그 2위로 뛰어올랐다. 1위와의 격차가 제법 있지만 우승 DNA가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
전북 현대의 우승 DNA와 달리 수십 년 동안 낙후와 소외란 단어에 둘러싸인 전북은 아쉽게도 긍정적 DNA를 배양하지 못해 왔다. 전국 꼴찌, 전국 최하위, 차별과 역차별 등 부정적 지역 이미지에 스스로 함몰돼 왔다. 성공과 승리의 경험보다는 실패와 패배의 아픔이 더 많았다.
새만금잼버리와 아태마스터스대회 유치 등 성공 경험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지속돼온 낙후와 소외로 인한 피해의식이 더 컸다. 굴지의 대기업도 없는 현실에서 군산조선소와 GM대우 군산공장 폐쇄로 인한 지역경제의 충격, 공항과 철도·항만 등 국책사업 차별과 배제의 설움을 견뎌내야 했다.
전북의 아픈 현실은 통계에서 잘 드러난다. 1980년대 중반까지 전국의 4%를 차지했던 전북의 지역내총생산(GRDP) 규모는 2%대로 추락했다. 민선자치가 출범한 1995년말 200만명을 넘던 인구는 지난해 180만명 선이 무너졌고 2050년엔 150만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란 어두운 전망도 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민선 8기 들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긍정의 DNA가 꿈틀대고 있다는 점이다. 선봉에는 정치인 출신 50대 초반의 젊은 도지사가 있다. 행정가와 정치인 출신 관료의 차이점은 추진력에서 나타난다. 행정가 출신은 정해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책을 고민하고, 정치인 출신은 없는 법을 만들어서라도 정책을 추진한다는 말이 있다. 안된다고 미리 포기하기 전에 한 번 해보자는 의지가 더 강하다.
지난달 열린 윤석열 대통령 주재 민선 8기 시·도지사 간담회 자리가 이를 확인시켜 준다. 김관영 지사는 윤 대통령에게 지방정부 역할 강화를 위해 시·도지사에게 10% 범위 내 비자 발급 및 지역대학 학과 조정 권한을 달라고 요청했다. 정치인 출신 도지사가 아니면 꺼내기 쉽지 않은 파격적 요청이었다.
정파를 초월한 민선 8기 도정의 협치도 파격이다. 민주당 도지사의 사상 첫 국민의힘 도당 방문에 이어 정책보좌관도 국민의힘 인사를 추천받았다. 시장·군수들과 만나 기업유치·교육협력·인사교류 등 과거와는 다른 상생과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젊음과 열정을 무기로 중앙 부처와 국회를 수시로 오가며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뛰는 도지사의 모습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의례적인 정책간담회를 뛰어넘어 실질적인 협치가 실현되며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새만금 하이퍼튜브 종합시험센터와 익산 국립 호남권청소년디딤센터 유치, 군산항 제2준설토 투기장 건설 확정 등 최근 잇단 대형 국가사업 선정·유치는 달라진 도정의 성과물이다. 대형 국가사업 선정만으로 전북의 획기적 변화를 낙관할 수 없지만 함께 노력하면 이뤄낼 수 있다는 긍정적 DNA가 싹트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김 지사는 지난 11일 세계 최고 권위의 윔블던 테니스대회 14세부 남자단식에서 우승한 남원 출신 조세혁 선수를 초청한 자리에서 “우리에게는 성공과 승리의 경험이 중요하다. 조 선수의 세계 제패 소식은 전북도민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키우는 선물이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민선 8기 전북 도정의 성공과 승리의 경험이 더 많이 축적돼 ‘전북도 할 수 있다’는 긍정의 DNA가 확산되길 기대한다.
/강인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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