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900년,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도성이었던 전주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겼던 곳이 바로 고부였다. 지금이야 정읍시 북서부에 있는 작은 면단위 행정구역에 불과하지만, 그 역사를 되돌아보면 가히 호남의 중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역동적이었다.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의 중심에 위치한 고부면은 동진강과 고부천을 끼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넓은 충적지와 나지막한 구릉지가 조화롭게 형성되어 있어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에 매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더해, 호남의 3호(湖) 중 으뜸으로 알려진 벽골제와 눌제를 기반으로 한 방대한 농업생산력은 고대사회의 정치·문화·행정의 거점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으며, 동진강 하구·줄포만의 통해 서해안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정학적 이점은 고부지역이 해양문화의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고부, 호남평야의 농업생산력을 기반으로 성장
그간의 고고학적 조사 성과를 보면, 고부지역을 비롯한 동진강 유역에는 다수의 선사~고대 문화유적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초기국가가 성장하기 시작하는 원삼국시대에 동진강 유역에는 적어도 4개 이상의 마한 소국이 존재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고부면 일대에는 마한의 지배자 무덤으로 알려진 분구묘의 밀집도가 매우 높다. 특히 천태산 자락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지류의 정상부에 위치한 운학리 분구묘는 원형의 대형 분구를 갖춘 석실무덤으로 발굴조사를 통해 4세기 말에서 5세기 중반 경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백제가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이전에 강력한 토착집단이 존재했었음을 암시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08년 고부천 유역에 위치한 백산성(국가 사적)에서 마한의 대규모 취락유적이 발견되어 큰 관심을 끌었다. 백산성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을 알렸던 백산기포(白山起泡)의 무대로 잘 알려진 곳이다. 본래 학계에는 백제의 토성으로 보고되어 있었으나, 발굴조사 결과 2~4세기경에 조성된 마한의 집 자리 17기를 비롯하여 집 자리를 둘러싼 환호(취락을 방어하기 위해 그 주위에 두른 도랑)가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광활한 호남평야를 배경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렸던 마한 사람들의 사회상을 복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방대한 농업생산력을 기반으로 해양문화의 거점으로 성장했던 동진강 유역의 문화양상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백제 지방통치의 거점으로 급부상
마한의 전통을 이어받은 백제는 5세기 중반부터 고부를 비롯한 동진강 유역으로의 진출을 본격화한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 마한의 지배자 무덤인 분구묘는 점차 사라지고, 영원면 은선리 일대에 백제의 중앙묘제로 알려진 횡혈식 석실분이 급증한다. 현재까지 육안으로 확인된 고분의 수량만 120여 기에 이른다. 천태산의 서쪽 기슭에 위치한 은선리 고분군에서는 정연하게 가공된 대형 석재를 가구식으로 짜 맞춘 이른바 ‘능산리형 석실분’은 상당수 확인된다. ‘능산리형 석실분’은 백제 사비기 왕릉군으로 알려진 부여 능산리 고분군과 무덤의 축조기법 및 재료, 구조 등이 유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이렇게 정형화된 무덤은 부여나 익산 등 백제의 고도에서 주로 확인되는 것으로, 피장자의 신분이 매우 높았음을 증명해주는 고고학 자료이다. 2014년 은선리 고분군에서 그다지 멀지 않는 영원면 갈선마을에서 2점의 그릇받침을 서로 맞닿게 가로로 눕힌 특이한 형태의 백제 독무덤이 발굴되었다. 독무덤으로 사용된 그릇받침은 외면에 고사리모양의 장식대가 부착되어 있고, 하트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는 독특한 형태이다.이와 유사한 그릇받침은 지금까지 무령왕릉이 있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과 부여 신리 유적 등 백제 고도에서 확인된 바 있다. 백제 중앙묘제의 확산과 위세품의 존재는 백제 웅진기 이후 고부를 비롯한 동진강 유역이 백제 지방 통치의 거점으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백제~후백제 역사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사부리성
538년 수도를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옮긴 백제는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지방 통치를 위해 수도 사비를 제외한 영토를 중방, 북방, 남방, 동방, 서방 등 5개의 구역으로 나눈 5方 체제를 실시한다. 5방 중 동방과 서방, 남방의 위치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중방(정읍 고부 일대), 북방(충남 공주)의 위치에 대해서는 이견이 거의 없다. 백제 중방의 방성으로 지목되고 있는 곳이 바로 고부면 소재지의 배후에 있는 고사부리성(국가 사적)이다.
고사부리성은 성황산의 두 봉우리를 한 바퀴 두른 석성이다. 2006년 이후,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 사비기~후백제의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쏟아져 나왔고, 이를 통해 동진강 유역의 역사성과 문화양상을 복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백제의 대표적인 성문 형식으로 알려진 어긋문이 확인되었고, 수원확보를 위한 대규모 집수시설도 조사되었다. 고사부리성의 성벽은 옥수수 알갱이 모양으로 정연하게 다듬어진 화강암을 사용하여 틈새가 거의 없을 정도로 견고하게 축조되었다. 이 성벽을 백제의 초축 성벽으로 보기도 하지만, 후백제에 의해 개축된 성벽으로 보는 견해 역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고사부리성에서 출토된 유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상부상항(上部上巷)’명 인장와와 백제 기마무사의 모습이 새겨진 평기와이다. 이 유물들은 고사부리성이 백제 중방의 방성으로 비정되고,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외에도 통일신라시대 신라 왕경의 6부 중‘본피부(本彼部)’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本彼官’명 기와와 초기청자 등도 주목된다. 특히 초기청자의 경우, 후백제 때 해양문화의 거점으로서 고부지역의 위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물로 인식되고 있다. 발굴조사 당시만 하더라도 고사부리성에서 출토된 초기청자는 통일신라시대 중국 월주요에서 수입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최근 후백제의 도성이었던 전주의 동쪽에 인접된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에서 초기청자를 생산했던 벽돌 가마가 발견되면서, 초기청자의 생산과 유통이 후백제에 의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주지하다시피, 후삼국 중 후백제는 청자의 본향으로 알려진 중국의 오월(吳越)과 가장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쳤다. 문헌기록에 등장하는 국가대 국가의 정식 외교기록만 5차례에 이른다. 그 횟수만 보면 적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후백제의 존속기간이 40년에 불과하고, 같은 기간 고려 또는 신라와 오월국의 교류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 오월과의 국제교류는 후백제가 주도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국제교류를 통해 오월의 청자 제작기술이 후백제로 전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익산 왕궁리, 미륵사지, 장수 합미·침령산성, 광양 마로산성, 전주 동고산성 등 호남지역에서 초기청자가 확인되고 있는 유적들 모두 후백제와의 관련성이 매우 높은 곳이라는 점에서도 이를 증명한다.
고사부리성이 있는 정읍시 고부면 일원은 지정학적으로 후백제의 도성인 전주에서 동진강, 줄포만을 통해 서해로 진출하기 위한 해상교통의 요지에 해당되며, 후삼국시대 호남지역에서 유일하게 고려의 왕건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던 나주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이러한 중요성으로 인해 고부지역에 대한 견훤의 관심이 지대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더욱이 고부가 백제 중방의 치소이자,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였다는 역사성은 백제 계승의지를 천명한 견훤이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후백제 외교의 관문이자 해양문화의 거점으로 고부지역이 선택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부면의 서쪽에 남-북으로 흐르는 고부천은 동진강의 최대 지류로서 예전에는 조수가 드나들 정도로 큰 하천이었다. 현재 고부의 북쪽에 인접해 있는 영원면 앵성리 수성마을은 본래‘수성지(水城址)’로 알려져 있는데, 백제 때 고부천변에 형성되어 있던 큰 포구를 지키던 성터로 전해지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고부군, 산천조에는‘大浦在郡 四十里 訥堤川下流 潮水往來’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백제의 유산을 이어받은 후백제의 거점 포구 역시 이곳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루 빨리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져 후백제 해양문화 양상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조명일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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