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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역사, 다시 일으키다-문화유산으로 본 후백제] (22)논산지역 견훤왕릉

전주시 비롯 논산시 등 7개 시·군 후백제문화권 협력
전주에 후백제 세운 견훤왕, 충남 논산에 왕릉 전해져
고려 개국사찰 '개태사' 견훤이 숨 거둔 황산불사 짐작

호남·영남·충청을 아우르는 '후백제 왕도복원 프로젝트'. 올초 '역사문화권 정비에 관한 특별법'에 후백제역사문화권이 새로 지정되면서 후백제 역사문화 관련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전주시‧문경시‧상주시‧논산시‧완주군‧진안군‧장수군 등 7개 시·군은 지난 2021년 11월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를 구성해 활동하면서 후백제 관련 유물유적을 보전하는 데 머리를 맞대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전주에서 전라·경상·충청권 7개 시·군의 단체장들이 모여 '후백제역사문화권 지정 기념식'을 개최하고 후백제 역사문화 복원을 위한 협력을 약속하기도 했다.

경북 문경 출신인 견훤왕은 전주에 후백제를 세우고 충남 논산에 잠들었다. 

문경시는 견훤 탄생 설화의 마을에 후백제 민속촌과 테마영상 전시관을 조성하고, 견훤과 관련된 유적지를 둘레길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논산시는 견훤왕릉을 국가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서 2000년 견훤왕릉보존위원회를 발족했으며, 해마다 왕릉제를 지내면서 견훤왕을 기리고 있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완산이 그립다'고 했던 견훤왕의 마지막을 따라가보기 위해 후백제 왕도였던 전주에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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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본 견훤왕릉 전경. 봉분은 직경 10m, 높이 5m에 달한다. 사진=조현욱 기자 

선선해진 바람 끝으로 가을 냄새가 코를 간지럽히는 9월, 충청남도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된 견훤왕릉을 찾았다. 충남 논산군 연무읍 금곡리 산18-3번지. '견훤왕릉공원'이라고 표시된 넓은 공터에 주차를 하고 계단을 오르면 왕릉이 있는 언덕으로 갈 수 있다. 

널따란 터에 홀로 자리한 직경 10m, 높이 5m 규모의 봉분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두커니 홀로 있는 능 앞에 서서 바라보니 어쩐지 쓸쓸한 감상이 들면서도 아름드리 배롱나무가 마치 호위무사처럼  주변을 든든하게 지키고 서 있어 든든하게 느껴진다. 이곳은 후백제의 왕 견훤의 능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뜻에서 '전견훤묘'라고도 불린다. 

견훤은 900년에 완산(현재의 전주)을 도읍으로 정하고 후백제를 세웠다. 40년 가까이 후백제를 다스렸던 그는 936년 죽음을 앞두고 "완산이 그리우니 이곳에 무덤을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맑은 날이면 강너머로 모악산이 바라보이는 곳. 1970년 견씨 문중에서는 그를 기려 '후백제왕견훤릉'이라고 새긴 비석을 세웠다.

견훤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여러 기록이 있다.

논산시 문화예술과 문화재팀 관계자는 "'삼국사기'에는 견훤이 왕위계승 문제 등으로 걱정이 심해 등창이 생기면서 황산에 있는 불사에서 죽었다고 돼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견훤의 묘가 은진현의 남쪽 12리 떨어진 풍계촌에 있다고 기록돼있다"며 "현재 개태사에 있는 석조여래삼존입상이 있던 터를 황산 불사의 터로 보거나, 왕건이 통일을 하면서 황산 불사 터에 개태사를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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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태사 극락대보전에 보존돼 있는 보물 제219호 석조여래삼존입상. 

그렇다면 개태사는 어떤 곳인가. 936년 고려 태조 왕건은 연산의 황산에서 후백제 신검의 항복을 받아 삼한을 통일하면서 부처님의 은덕에 감사하며 절을 세웠다. 통일기념사찰이자 개국사찰으로서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의 천호산 정기를 받아 '태평성대를 연다'는 뜻으로 창건했다.

현재 논산시에서는 개태사를 '논산 8경'의 하나로 지정했으며, 보물 제219호인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이 있다. 1992년 완공한 극락대보전은 석존삼존여래입상을 보호하기 위한 불전이다. 

대대로 백제인이 살아온 황산 땅에 왕실사찰을 지은 배경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하다.

'고려 대화엄도량 개태사' 자료를 보면 "백제와 후백제의 자취가 완연한 황산의 이름은 천호산으로 바꾸고 그 산자락에 왕실에서 막대하 재원을 투입해 대규모 국찰을 지었다"며 "마치 고려의 힘과 국력을 자랑하는 듯 격전지에 왕실사찰을 지어 후백제의 그림자를 지우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보고 있다.

견훤이 황산 불사에서 종말을 고한 배경과도 연관이 있다는 설명이다. 완산에 도읍을 정한 후백제는 건국 36년 만에 황산에서 종말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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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태사 종무소에서 바라본 극락대보전. 1992년 완공한 극락대보전은 석존삼존여래입상을 보호하기 위한 불전이다. 사진=조현욱 기자

왕건이 후백제 신검의 항복을 받은 '황산'과 견훤이 임종을 맞이한 '황산 불사'와 관련해서는 대체로 논산시 연산면 일대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황산과 황산벌을 연산면 일원으로, 황산성을 연산면 관동리 산성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동사강목'의 기록 등으로 보면 개태사 이전에 사찰이 있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견훤은 울분과 번민으로 종기가 난 지 며칠 만에 황산(지금의 연산 동쪽 5리에 있다)의 절에서 졸하니, 나이 70이었다. 견훤의 묘는 지금의 은진현 남쪽 12리 풍계촌에 있는데 세상에서 왕묘라고 한다."

견훤이 황산의 사찰에서 죽었으며, 후백제를 멸하고 삼한을 통일한 왕건이 그 마지막 전쟁터에 있던 옛절을 새롭게 크게 지어 승리를 기념했다는 것이다.

개태사는 936년 착공해 4년 만인 940년 완공했으니, 그야말로 고려왕실의 국력과 재정이 총동원된 왕실사찰이다. 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 왕건의 지극한 불심과 의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왕건은 개태사 완공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친히 발원문을 지어 올리기도 했다. 

개태사 관계자는 "개태사는 통일 이후 최초로 지방에 세워졌고, 왕건이 직접 세운 왕실사찰로서 위상이 매우 높았다"며 "게다가 왕의 어진을 모신 진전사찰이기 때문에 보호와 안전, 방어 체제가 구축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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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태사지로부터 남쪽으로 400m 가량 떨어진 곳에 현재의 '개태사'가 있다. 개태사의 영역은 '개태사지'와 현재의 '개태사' 등 2곳으로 구분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개태사의 영역. 사진=조현욱 기자

한편, 개태사의 영역은 '개태사지'와 현재의 '개태사' 등 2곳으로 구분하고 있다. 

'개태사지'는 고려초 왕건이 세운 사찰의 중심지로 사찰의 본당과 진전이 있었던 곳이다. 완만한 구릉지에 사찰의 핵심기능을 하는 '중심사역'과 부속시설이 있는 '주변사역'으로 구분했다. 그중 동쪽에 자리한 중심사역에는 중문, 금당, 탑, 진전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건물지와 유구가 확인됐다. 국보 제213호 금동대탑, 부여박물관의 초대형 금고(쇠북), 충남무형문화재 제91호 비로자나석불도 이곳에서 출토됐다. 현재는 문화재구역 및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됐으며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개태사지로부터 남쪽으로 400m 가량 떨어진 곳에 현재의 '개태사'가 있다.

높이 4m를 웃도는 석조여래삼존입상 본존상, 둘레 910cm의 개태사 철확(쇠솥), 지름 102cm의 개태사 금고(쇠북) 등 문화재를 살펴보면 개태사의 방대한 규모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범위가 정확히 어디까지인지는 더욱 정밀한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의 '개태사'와 당초 사찰의 중심지인 '개태사지'를 중심으로 지난 1986년 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6차례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전주를 바라보며 잠든 견훤왕

견훤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견훤왕릉'은 산 전체가 '왕묘'라고 불린다. 후백제를 일으킨 완산을 그리워한 그의 유언을 따라 묫자리를 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견훤왕릉 남쪽으로 70리 떨어진 곳에는 전주의 뒷산이 자리하고 있다. 이후 이곳은 1981년 충남도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됐다.

전주시는 후백제 문화 중심의 거점으로 거듭나기 위해 후백제 역사문화도시를 조성해나가고 있다. 국립 후백제 역사문화센터를 건립해 후백제 연구의 기반을 다지고 후백제 역사공원과 후백제 마을을 조성해 '후백제 왕도'로서의 정체성을 보다 견고하게 세운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는 올해 '역사문화권 정비에 관한 특별법'에 후백제역사문화권이 지정됐으며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개정된 덕분이다. 

앞으로 전주가 고도로 지정되면 후백제 왕도라는 전주의 역사적 정체성을 되찾는 기회가 보다 확장될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후백제사에 대해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조사·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고, 전주시도 이에 발맞춰 움직이고 있다.

특히, 전주시의 역점 사업인 '왕의궁원 프로젝트'의 항해를 시작하면서 후백제를 비롯한 역사문화유산이 커다란 돛이 돼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견훤왕이 남겨준 후백제의 역사문화유산. 이는 비단 전주시만의 일이 아니라 문경, 상주, 논산, 완주, 진안, 장수 등 후백제문화권 지방정부협의회에 몸담고 있는 다양한 지자체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더이상 패배로 기록된 역사가 아니다. 원대한 기지로 후삼국시대를 이끌었던 견훤대왕의 원대한 꿈이 오늘날 새로운 모습으로 실현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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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견훤왕릉 #개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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