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의 성과와 과제
일본 규슈의 도시들/ 구마모토현의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프로젝트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쇠퇴와 성장의 순환이 그 변화를 주도하지만 때로는 예기치 않은 외부의 힘에 의해 변화하기도 한다. 규슈지역 중심에 있는 구마모토현. 세계 최대의 칼데라 분화구를 가진 아소산과 기쿠치강을 비롯한 네 개의 강을 품어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오래된 도시들이 그러하듯이 구마모토 역시 급격한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맞닥뜨린 환경문제가 있다. 1950년대 중반, 구마모토현의 미나마타 시에 몰아친 환경 재앙 <미나마타병>이다. 원인은 미나마타 시에 들어선 화학공장 등이 배출한 유기수은. 연안 수자원과 환경을 오염시킨 유기수은의 폐해는 컸다. 미나마타 시의 어민들 사이에서 집단으로 발병한 미나마타병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금속성분이 사람의 몸에 축적되어 나타나는 대표적인 공해병이 되어버린 미나마타병은 그 이후 미나마타 뿐 아니라 구마모토현의 도시들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83년 구마모토현의 지사로 취임한 호소카와 모리히로는 추락한 도시이미지를 바꾸어 사람을 불러들이고 새로운 산업을 유치할 수 있는 환경 정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구마모토현은 문화를 중심에 세운 다양한 정책을 만들어 냈다. 그 정점에 구마모토의 도시이미지를 바꾸고 구마모토를 아름다운 건축의 도시로 세계에 알린 사업이 있다. 도시에 아름다운 건축물을 들여놓는 사업 <구마모토 아트폴리스(KAP)>다. 특색 없고 단조로운 도시 미관을 새롭게 고쳐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로 만들기 위한 이 정책은 구마모토에 새로운 이미지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1988년 시작, 35년째 지속되어온 정책의 힘
1988년 호소카와 지사가 만든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풍부한 자연과 풍토를 살리면서 후세에 문화적 유산으로 남길 수 있는 우수한 건조물을 만들고’ ‘주민들의 도시문화와 건축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며 지역 발전을 이끌 구마모토만의 생활공간을 창조해나가는’ 것이 목적이다. 올해로 35년째. 자치단체의 같은 사업, 같은 정책이 이처럼 긴 시간 동안 일관되게 추진해온 예는 드물다. 구마모토현은 아트폴리스 사업을 만든 호소카와 지사 이후 후쿠시마 지사, 사오타니 지사, 그리고 현 가바시마 이쿠오 지사까지 세 번이나 지사가 바뀌었지만 사업의 취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 활력있는 사업추진을 위해 방식을 보완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지사나 시장 군수가 바뀌면 하루아침에 정책이 바뀌고 잘 진행되던 사업까지도 중단되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이유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동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호소카와 지사가 1988년 발표한 정책이다. 호소카와 지사는 바로 전 해인 1987년, 베를린에서 열린 <베를린건축박람회>에서 영향을 받아 이 정책을 주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아트폴리스로 지정된 공공건축물과 민간건축물이 구마모토현의 이곳저곳에 들어서며 도시를 빛내기 시작했다. 아트폴리스 지정은 철저한 심사와 절차를 거쳐 이루어졌다. 사업을 이끈 초대 커미셔너는 이소자키 아라타 씨. 세계적 건축가로 명성을 쌓은 그는 구마모토현 출신이 아니었지만, 발주자와 건축가, 시민들과 협의하고 설득하고 토론하면서 구마모토의 새로운 역사를 써냈다.
흥미로운 것은 적지 않은 건축물들이 아트폴리스 지정을 신청하지만 정작 이 사업을 주도하는 현 당국은 별도의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공건축물도 현 차원에서는 지방자치단체나 민간기관이 예산을 투입해 만들 예정이던 마을회관이나 다리, 미술관 등의 건조물이 아트폴리스의 취지에 맞게 잘 만들어지도록 과정에 참여하고 그 진행을 돕는 역할만 할 뿐이다. 그런데도 아트폴리스 사업이 성공한 이유를 전문가들은 단호하고 과감하게 시행한 커미셔너 제도 덕분이라고 평가한다.
주민들에게 자부심 안긴 공공임대 아파트의 변신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프로젝트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공공 영구임대아파트다. 목표는 대부분의 공공임대주택이 가진 획일적인 디자인과 주거의 양적인 측면만을 고려한 건축 방식 대신 아름다운 디자인과 쾌적한 환경의 주거지를 영세민들에게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첫 결실은 구마모토현이 운영하는 ‘호타쿠보 1단지’. 1991년에 준공된 호타구보 1단지는 아트폴리스 정책이 적용된 첫 공공 영구임대아파트였다. 그 뒤를 잇는 것이 구마모토시가 운영하는 ‘신치단지’다. 모두 5개의 구역으로 구성된 신치단지는 4천 명 인구가 거주하는 서민 아파트 단지다. 다섯 명 건축가가 각각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설계해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디자인을 가진 덕분에 이 아파트 단지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도시의 관광상품으로 부상했다. 쇠퇴하는 구도심의 재생에 새로운 동력이 된 셈이다.
변화와 재생의 힘으로 세계적 건축 도시가 되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로 추진된 프로젝트는 2021년 7월 기준, 109개다. 이 중 95개 건축물이 완공됐다. 내로라하는 건축상을 받은 건축물도 여럿이고 집합주택, 교육과 스포츠시설, 관광시설, 농업시설, 박물관 미술관 관공서 등 종류도 다양하다. 공원이나 전망대 다리 등의 조형물도 적지 않고, 화장실도 여러 개다. 역사적 건축물도 별도로 지정해 지역 문화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온전히 살렸다. 이러한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사업의 성과는 단순히 건축물을 들여 외형적 환경을 바꾼 것에 그치지 않는다. 문화의 새바람을 불어넣어 재생의 힘을 얻었으며 세계 각국의 건축도 들이 찾아오는 건축의 도시가 됐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세 번째 커미셔너인 건축가 이토 도요오 씨가 이끌고 있다. <자연을 열고 사람과 조화한다>는 그가 아트폴리스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담아낸 슬로건이다. 각 지역에 들어선 건축물은 ‘점’으로 산재하고 있지만, 이것을 ‘선’으로 연결하고 또 다른 프로젝트와의 연대를 강화해 구마모토 전 지역을 ‘면’으로 확장하겠다는 아트폴리스의 목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35년 동안 일관되게 지속해온 한 도시의 정책이 갖는 힘과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하는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이 도시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 일본 규슈=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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