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힘이 만들어내는 개항도시의 부활
목포 원도심 <꿈바다협동조합>과 <건맥 1897 협동조합>
목포는 1897년 개항한 도시다. 부산 원산 인천에 이어 네 번째 개항했으나 빠르게 성장해 우리나라 3대 항으로 자리 잡았다. 항구가 번성하면서 목포의 성장은 지속됐다. 그 영향으로 1990년대까지 인구가 늘어났으나 연근해 어업이 위축되고 목포의 경제를 이끌었던 조선업이 쇠락하면서 도시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도시들이 그러하듯 목포 역시 신도심이 개발되자 중심 상권이 붕괴되고 사람들이 떠나간 원도심은 활기를 잃었다.
그러나 개항이 만들어낸 근대도시 목포는 지금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빈 곳이 늘어나 황폐해진 거리, 시간이 멈춘 원도심에 그 꿈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덕분이다. 2010년대 중반, 정부의 지원정책으로 기반을 닦기 시작한 원도심 도시재생이 이어낸 결실이다. 새로운 힘도 더해졌다. 2020년 문화체육부가 선정한 관광거점도시에 선정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목포시는 관광거점도시로 선정된 직후 주요 관광·취약지를 정비하고 관광도시로서의 환경을 가꾸는 일에 힘써왔다. 그러나 기대한 만큼 관광객 수는 크게 늘지 않았고 관광의 형태도 당일치기 여행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변화가 생겼다. 목포의 원도심과 근대문화유산 공간들이 활기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목포의 원도심 부활을 이끄는 중심에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마을기업과 협동조합이 있다. 전국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꿈바다협동조합>과 <건맥 1897 협동조합>이다.
골목, 공간과 공간을 이어 마을 호텔이 되다
<꿈바다협동조합>
<꿈바다 협동조합>은 원도심에서 게스트 하우스, 식당, 카페 등을 운영하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협동조합이면서 마을기업이다. 서로 다른 공간을 갖고 있지만, 원도심을 일으키는 일에 뜻을 모은 이들의 목표는 각각의 공간을 하나로 이어 수평적 마을호텔을 만드는 것. '꿈꾸는 바다꼴목'이라 이름 붙인 이 마을 호텔에는 게스트하우스 10곳, 식당·카페 등 6곳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꿈바다 협동조합이 뜻을 모은 것은 2019년. 이들은 원도심의 도시재생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내외의 다양한 사례를 배우며 주민이 주도하고 협력적으로 운영하는 마을사업 모델을 주목했다.
원도심을 아우르는 마을호텔 '꿈꾸는 바다꼴목'은 관광객이 특색 있는 숙소와 음식 등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와 환경을 제공한다. 몇 걸음만 가면 만날 수 있는 공간들을 목포의 특별한 정취를 느끼면서 걸을 수 있다는 것도 '꿈꾸는 바다꼴목'이 주는 선물이다. 지역에 있는 작가들과 협력해 1897 개항문화거리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을 출간하고 옛 건축물 드로잉 엽서, 소책자 등을 제작해 판매도 한다. 관광객들은 조합이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고, 목포의 관광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목포역 근처에 문을 연 오프라인 플랫폼 '라운지 꿈'에서는 관광 정보와 함께 체크인하기 전 짐을 맡길 수도 있다. 꿈바다 협동조합 방은희 이사는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쉐프가 되고 호텔리어가 되는 순간을 꿈꿨다“며 ”숙박부터 음식, 차, 술도 마시면서 목포의 지역에서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여행 상품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꿈바다 협동조합이 골목(거리)으로 이어지는 '마을호텔'을 만들게 된 특별한 이유는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골목 전체가 하나의 호텔이 돼서 함께 상생했을 때 의미 있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다. 실제로 마을호텔의 수익은 각각의 공간 수입에 그치지 않고 마을과 주민들이 성장하는 발판으로 쓰인다. 지역과 관광객이 상생할 방안을 함께 고민하며 다양한 방법을 찾아 시도할 수 있는 것도 이 덕분이다.
사실 이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목포의 원도심 도시재생 구역에서 운영되는 게스트하우스는 외국인 관광객의 투숙만 허용되는 도시민박업이다. 현행법상 도시 안에서의 숙박업은 상업지역에서만 운영할 수 있지만, 외국인도시민박업은 주거지에서도 '외국인'에 한해 운영할 수 있다. 조합원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는 모두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도시민박업이다. 조합이 출범하고 곧바로 터진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조합의 존립을 위태롭게 했다. 그러다 마을기업은 내국인 숙박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행히 2021년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에 선정됐다. 온·오프라인 플랫폼 구축 등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한편으로는 내국인도 숙박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추진했다. 자치단체와 협의하면서 정부의 관련 부처를 설득하며 길을 찾았으나 과제는 해결하지 못한 상황. 그래서 아직 갈 길이 멀다.
”건어물거리, 축제 열고 마을펍 열어 살렸죠“
<건맥 1897 협동조합>
목포시 만호동에는 중심을 관통하는 오래된 거리가 있다. 도소매, 중계, 경매 등 종사자들이 모인 이 거리는 목포항을 거친 건해산물이 들고 나는 유통 중심이었다. 1958년, 이 거리를 중심으로 건해산물 조합이 만들어졌다. 전국 최초였다. 거리는 80년대까지도 번성했으나 어업이 위축되고 항구가 쇠락하면서 사람도 떠나고 상점도 크게 줄어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거리로 쇠퇴했다.
원도심의 재생과 함께 거리를 되살리기 위해 상인들이 나섰다. 상인들이 십시일반 뜻을 모아 연 맥주축제가 시작이었다. 축제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자 건어물 거리에 있는 상가들은 아예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건맥 1897 협동조합>이다. 조합은 거리를 활성화하기 위한 통로로 마을펍을 열었다. 거리의 상권 활성화를 위해 만든 이 공간은 오래된 여관 건물을 무상으로 임차해 개조했다. 처음에는 1층에 ‘1897건맥펍’을 열고 운영하다 2∼3층에 숙박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건맥스테이'까지 열었다.
마을펍은 자주·자립·자치적인 운영을 통해 목포 건어물 자원을 지역 상품화하고 ‘1897 건맥펍’을 지역특화 브랜드로 만들어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골목상권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을펍에서는 건어물과 맥주를 판매하는데 처음에는 오징어, 쥐포 등 건어물 중심 메뉴가 전부였지만, 손님이 많아지자 전문가의 자문까지 얻어 지역특화형 안주를 개발했다. 건새우를 갈아 양념을 치킨에 뿌린 ‘새우통닭’이나 해산물을 듬뿍 섞은 ‘바다 피자’ 등 지역을 담아 만든 안주는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다.
조합은 마을펍에 이어 거리를 살리는 새로운 사업을 추진했다. 2019년 가을 첫 문을 연 건맥축제 '토야호(土夜好)'다. 만 원을 내면 무한으로 생맥주를 ‘리필’해 주는 이 축제는 첫해부터 관심을 모았다. 젊은 세대를 건어물 거리로 끌어들이려는 전략도 성공했다. 적은 예산으로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조합원들과 지역주민들이 협력해 축제를 이끌었다. 예산의 한계에도 300명 정도가 즐길 수 있는 축제로 정착한 ‘토야호’는 1년에 15주,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데 지금은 목포여행의 필수 코스가 되어 관광객들을 부른다.
건맥축제 '토야호'도 처음에는 확신을 얻지 못하는 축제였다. ‘과연 사람들이 올까?’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걱정이 많았지만, 축제는 성공했고 자리를 잡았다. 그 바탕에는 주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축제의 방식을 고민해온 조합의 노력이 있었다. 대부분의 축제는 비가 오면 취소되지만 ‘토야호’는 비 오는 날에도 축제를 열었다. 비가 오면 상인들은 점포의 창고를 열어 손님을 맞고 손님들은 파라솔까지 챙겨와 축제를 즐겼다. 유명한 가수가 서는 축제의 공연무대를 아마추어 예술인들이 재능기부로 채우고 주민들은 자원봉사로 힘을 보탰다. ‘토야호’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2020년을 제외하고 30회 넘게 열렸다. 누적 방문객은 2만 1,000명. 조합은 2억 5,000만 원이 넘는 경제 효과를 얻었다고 소개했다.
건맥 1897 협동조합 정우영 이사는 "우리는 상품을 줄 때도 케이블카·요트 이용권 등 다시 목포를 올 수밖에 없도록 행사를 기획한다”며 “토야호를 즐기기 위해 하루 더 자고 간다는 관광객을 만났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목포 만호동 건해산물거리의 부활을 이끄는 중심에는 <건맥 1897 협동조합>의 건강한 힘이 있다. 그들 공동체의 의지가 가져올 앞으로의 변화가 더 기대된다. / 김은정 선임기자, 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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