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의 성과와 과제
공주 원도심 재생과 사회적기업 '퍼즐랩'
우리나라 도시들은 198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신도시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오래된 도시다. 기능으로는 ’발전과 쇠퇴를 반복해오면서 특정한 지역 산업을 갖게 된 도시’이거나 그 도시만의 ‘두드러진 향토색을 가진 도시’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오래된 도시들은 발전과 쇠퇴를 반복해오면서 성장 동력을 잃었다.
한 시대, 우리나라의 도시발전 정책은 ’확장성‘의 가치를 앞세웠다. 도시마다 신시가지 개발이 유행처럼 번졌다. 도시의 확장에 환호했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신도시 건설에 집중하는 사이 원도심 쇠퇴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도시는 확장했으나 오래된 도시들의 고민은 다시 시작됐다.
쇠락한 원도심 살리기에 정부가 나선 것은 꽤 오래전이다. 정책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도시재생 정책이 만들어졌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도시재생 사업은 2018년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도시재생 뉴딜 정책’으로 선정되어 추진된 것들이다. 5년 동안 해마다 10조 원씩 50조 원을 투자하는 도시재생 뉴딜정책의 목표는 전국 500개 지역을 재생시키는 것이었다. 전면 개발 대신 지역이 주도하는 도시재생으로 도시 공간을 혁신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도시정책 목표이기도 했다. 전국의 수백 개 도시가 도시재생의 가치를 내세워 쇠퇴한 도심 살리기에 나선 배경이다.
역사문화자원에 재생을 더해 얻은 가치
충남 공주시는 도시재생 우수지역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부여로 도읍을 옮기기 전까지 64년 동안 백제의 도읍이었던 공주는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충청도 전체를 관할하는 충청감영과 관찰사가 주재했던 명실상부 충청도의 중심도시였다. 1932년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위상은 변했지만 공주여자사범학교(현 공주교육대학교), 공주사범대학(현 공주대학교) 등이 개교하고 중고등학교들이 들어서면서 공주는 교육의 도시가 됐다.
오래된 도시들이 그렇듯이 공주도 1980년대, 도시 확장에 도시의 미래를 걸었다. 금강 너머 북쪽에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인구 이동이 이어졌다. 상권이 옮겨지자 원도심은 쇠락하기 시작했다.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도시의 영역은 더 위축되어 한때 22만 명이나 됐던 인구는 반 토막으로 떨어졌다.
그러던 공주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제민천 일대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쇠락하던 원도심도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미미한 숫자지만 57년 만에 인구가 증가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공주의 도시재생은 꽤 오래전부터다. 고도 보존 및 육성사업(고도보존육성 기본계획)이 그 바탕이다. 2014년부터는 본격적인 도시 재생 사업 로드맵을 세우고 선도사업을 추진했다. 하숙마을, 문화예술촌을 비롯해 고성에 오르는 골목길, 박찬호 골목길, 근대문화골목길 등 골목길 사업이 이 시기에 이뤄졌다. 2019년에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 선정되면서 보다 본격적인 재생사업이 시작됐다. 올해 말까지 5개년 사업으로 추진된 공주의 뉴딜은 역사·문화 자산을 활용해 쇠퇴한 도심을 살리는 것이 중심이다. 관 주도가 아닌 주민 주도의 사업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 그동안 도시재생 선도사업 지정을 시작으로 옥룡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중학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면서도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주민참여형 도시재생 사업을 앞세웠었다.
공주시는 올해까지 '문화와 세계문화유산을 품은 공산성 마을'을 목표로 주거지지원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내년까지 '제민천과 함께하는 역사문화 골목 공동체'를 목표로 중심시가지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한다.
공주 도시재생 사업의 중심에는 주민과 청년이 있다. 시는 지원사업 공모뿐만 아니라 주민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사업을 주체적으로 이끄는 주민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시민대학을 운영하고, 마을 가꾸기 분과를 만들어 주민이 도시재생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 주민들의 참여는 눈에 띄게 늘었다. 도시재생 사업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위해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
송두범 공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공주는 여전히 인구 감소 현상이 이어지고 있지만, 청년들이 소소한 행복을 위해 찾아오고 일정한 기간이나마 살고 싶어 하고, 여기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지역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서는 주민들의 참여와 청년들이 필요한데 공주는 그런 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시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제민천과 원도심 활력을 이끄는 주식회사 퍼즐랩
제민천은 공주의 원도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물길이다. 공주는 금학동에서 시작해 금성동까지 4.2km를 흘러 금강에 이르는 제민천을 중심으로 도시를 형성했다. 그러나 신시가지가 개발되며 주요 상권이 이동하자 제민천 주변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원도심으로 쇠락하고 말았다. 제민천은 오염되어 악취가 나고 비가 오지 않으면 물도 흐르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공주시는 제민천 살리기에 나섰다. ‘제민천 생태하천 조성사업’과 ‘제민천 활력거점 조성사업’으로 주변 하수도를 정비하고 반죽동 일원에 하숙마을과 문화예술향유 공간을 만들었다. 맑고 깨끗한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자 서서히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외지의 청년들이 하나둘 공주를 찾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청년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일을 도모하며 지역의 미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사회적기업 ‘퍼즐랩’(대표 권오상)이 있다.
퍼즐랩은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일종의 지역 관리회사다. 공주가 가진 고유한 자원을 주목한 권오상 대표가 게스트하우스 ‘봉황재’를 운영하다 2019년 커뮤니티 기반의 사업을 고민하며 창업했다. 퍼즐랩은 마을 안에서 개개인에게 맞는 다채로운 커뮤니티와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느슨하게 연결하는 일을 한다.
퍼즐랩의 사업은 창업 4년 만에 큰 폭으로 확장됐다. 한옥 게스트하우스 ‘봉황재’와 ‘버드나무빌’, 커뮤니티호텔 ‘슬로크루즈’ 등의 숙소와 공유오피스인 ‘업스테어스’, 교육장인 ‘금강관’, 노인회관을 이용한 팝업 공간, 마을 자원을 활용해 소비와 유통을 이끄는 ‘크림오브엑스’와 마을 안내소 등이 모두 퍼즐랩이 운영하는 공간이다.
공주 원도심의 ‘마을 스테이’와 청년마을 ‘자유도’는 퍼즐랩이 설립한 브랜드 프로젝트다. 마을 스테이는 퍼즐랩이 운영하는 숙소와 원도심의 식당, 카페, 책방, 공방, 갤러리 등 다양한 운영자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해 일관성 있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이다. 이 네트워크에는 마을 주민들도 마을해설사로 참여하고 있다.
청년마을 ‘자유도’도 '마을 연결' 브랜드다. 공주 원도심을 찾아온 청년들이 이 마을 안에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각자의 자유 의지에 따라 삶과 일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갖춰져 있다. 원도심에 자리 잡은 다양한 공간을 중심으로 행사를 열고 참여한 사람들이 다시 공통적인 관심과 가치로 연대하는 틀을 확장해가는 퍼즐랩의 커뮤니티 프로젝트에는 청년들 뿐 아니라 원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늘고 있다.
퍼즐랩이 이즈음 새롭게 추구하는 것이 있다. 관계 인구(생활인구) 만들기다. 도시 대부분이 정주 인구 확보를 위해 청년들을 유입하는데 매달리고 있지만, 이제는 정주 인구가 아닌 관계 인구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퍼즐랩의 판단이다.
장원희 프로젝트 매니저는 ”거주하지 않지만 일을 위해 도시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도시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통로이기 때문"이라며 “관계 인구가 공주시에 와서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그들 또한 이곳에서 일거리를 찾아 정착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퍼즐랩 직원 중 과반수는 다른 도시에서 온 청년들이다. 일을 찾아왔다가 아예 공주로 거주지를 옮긴, 관계 인구로 시작해 정주 인구가 된 경우다.
퍼즐랩은 지난 2021년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됐다. 서울과 수도권 밖에 청년이 머물고 싶어 하는 마을을 만드는 이 사업에 2021년 한 해 동안 140명이 넘는 청년들이 참여했다. 이들 중에는 공주에 남았거나 다시 찾아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는 청년들도 여럿이다.
느슨하지만 강력한 결속력으로 만들어 내는 지역 커뮤니티의 힘으로 공주의 원도심을 바꾸어 가는 퍼즐랩은 건강한 커뮤니티의 활동이 지역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직은 경제적 자립과 인력 확보가 자유롭지 않지만 퍼즐랩의 활동에 더 큰 기대를 갖게 되는 이유다. / 김은정 선임기자, 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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