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자체기사

[후백제 역사, 다시 일으키다-문화유산으로 본 후백제] (17)전주성 유적을 톺아보다

견훤때 도성 전주 지키기 위해 쌓은 남고산성
승암산 자락 자리잡은 후백제 왕성 위용 여전
후백제 궁성 추정지 정밀한 발굴조사 더 필요

'후백제의 왕도(王都)'라는 역사적 정체성을 간직한 전주. 전주에는 성곽, 건축물, 생산지, 분묘, 생활 유물 등 다양한 유적이 산재해 있다. 초록빛 녹음이 우거진 8월 남고산성과 동고산성 등 후백제 고성벽지를 따라 걸었다. 이번 여정에는 전주문화유산연구원 학예연구실장 재직 당시 『전주시 후백제 유적 정밀지표조사』에 참여한 강원종 서경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이 동행했다. 

image
남고산성의 서쪽 성문인 '서문지'. 성벽 뒷편에는 남고사가 있고, 동편에는 창암 이삼만이 쓴 '남고진 사적비'가 남아있다. 조현욱 기자

△조선시대 피난성, 남고산성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일원에 자리한 사적 제294호 '남고산성'. 이 산성은 고덕산 자락을 따라 쌓아서 '고덕산성'이라고도 부르며, 후백제 견훤이 도성인 전주를 지키기 위해 쌓아서 '견훤성'이라고도 부른다. 

서암문 천경대와 서문 만경대를 포함한 역사길은 오늘날 전주시민들이 즐겨 찾는 산책코스가 됐다. 

현재 임진왜란 때 왜군을 막기 위해 쌓은 성벽이 보존돼 있는데, 남고사에 있는 남고진 사적비를 보면 당시 산성 내부의 건물 수와 규모가 나와 있다. 남고산성이 조선시대 피난성이라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산성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산성을 방어하기 위한 지휘소로 '남장대'와 '북장대'를 뒀다. 성벽 위의 담장인 '여장'과 적으로부터 은닉하기 위해 그 사이 사이에 만든 '총안'도 확인할 수 있다. 

누각에 대포를 설치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포루'는 천경대(남포루), 만경대, 억경대(서포루)로 나눠진다. 이름에 붙은 숫자가 클수록 경관이 좋은 정도라는데, 이곳에 오르면 전주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성의 가장 구석지고 드나들기 편리한 곳에는 '암문'을 두었다. 적들이 알 수 없게 꾸민 작은 성문이다. 아치형태인 남고산성 서암문의 높이는 발굴조사에 의해 높이 2.1m, 길이 4.7m인 것으로 밝혀졌다. 

가파른 경사와 맞서 싸우듯 남고사를 향하는 길을 오르다 보면 남고산성의 서쪽 성문인 '서문지'를 마주하게 된다. 길이 6m, 폭 2.9m이며 석축으로 된 이 성벽 통로 위에는 문루가 설치돼 있다. 성벽 뒷편에는 남고사가 있고, 동편에는 창암 이삼만이 쓴 '남고진 사적비'가 남아있다. 

강 연구위원은 "조선시대 추정 행궁터로 알려진 계곡 주위에는 평탄대지와 함께 초석이나 기단석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재와 기와편이 수습됐다"며 "계곡부에 물과 관련된 집수정 시설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고 설명했다.

 

image
강원종 연구위원이 동고산성 주건물터를 바라보며 이 일대에서 출토된 유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천년고도 전주성, 동고산성

후백제 전주성 '동고산성'은 전라북도기념물 제44호로 지정돼 있다. 전주시 완산구 교동과 대성동이 접한 산줄기를 따라 성벽을 이루고 있으며 <전주부사>에 '승암산성지'로 기록돼 있다. 

이곳에는 주건물터를 비롯해 건물지 13개소가 남아있는데, 이 중 성황당 뒷편에 있는 주건물터에서 '전주성(全州城)'이라고 적힌 막새기와 등이 출토되면서 900년경 견훤왕이 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운 근거로 보고 있다. 지난 1980년 전영래 원광대 교수가 진행한 동고산성 개괄조사에 의하면 이곳에서 출토된 수막새와 암막새(쌍봉황문, 쌍무사문) 등 유물에서 전주성명이 확인된다.

동고산성의 정문 역할은 동고산성 내부의 주건물지와 같은 중심선상에 있는 서문지가 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돌출된 형태로 날개처럼 양쪽에 쌓아 가운데에 있는 성의 기능을 보조하는 '익성'이 있는 것도 동고산성의 특징이다. 북익성은 기린봉 가는 길에 있고, 남익성은 승암산 방향에, 동익성은 동남쪽에 지어졌다. 서문지는 남익성과 북익성 사이에 있다. 

동고산성 남익성 동편 능선에는 7건물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의 둘레에는 차양칸이 둘러져 있는데 차양칸 초석이 한 칸씩 건너 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남익성 동쪽으로 가다보면 치명자산으로 내려가는 길목이 나오는데, 이곳을 남문지 위치로 추정하고 있다.  

성벽 능선을 따라 계속 산을 올랐다. 작은 공터가 나와 한숨 돌려보니 승암산에서 바라본 시가지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반겨준다.  

강 연구위원은 "동고산성 높은 곳에서는 남고산성 억경대, 기린봉, 오목대, 이목대, 용머리고개, 고추산 등 전주시내에 있는 후백제 관련 유적을 다 내려다볼 수 있다"며 "후백제 유적 중 가장 실체가 명백하게 밝혀진 동고산성은 왕성이자 후백제 유적으로서 유일하게 인정받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image
강원종 연구위원이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뒷편의 토축 현장을 찾아 기자에게 후백제 궁성벽 추정지 시굴조사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후백제 궁성과 도성벽을 따라서

강원종 연구위원은 후백제 궁성에 관한 설을 3가지로 요약했다. 

지방행정의 요충지였다는 '전라감영설', 전주부사에 기록된 '물왕멀설', 이전에 궁성이 있었다는 '인봉리설' 등이다. 

이 중 완산구 중노송동 일원은 현재 후백제 궁성으로 추정되는 지역인데, 현재는 대부분 도심화가 이뤄져 성벽의 흔적을 육안으로 찾아보긴 어렵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는 인봉리와 문화촌 일대에 왕성을 두른 궁성 혹은 왕성으로 추정되는 흔적을 확인했으며,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뒷편의 토축을 궁성벽으로 제시했다. 인봉리 일원으로 추정되는 궁성지는 주변보다 높은 지형을 띠고 있으며 시굴조사 결과 이 일대에서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 각종 유물이 나와 성벽으로 보고 있다. 

image
전주 기자촌 일원 후백제 궁성 추정지 전경. 조현욱 기자

특히, 기자촌 일원 대지면적 399㎡에 이르는 후백제 궁성 추정지에는 목책이나 망루 등과 같은 시설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4개 구역에 도랑을 만들어 궁성 관련 유적을 조사한 결과 주공의 일부가 확인됐다.

완산구 교동 일원 오목대에서는 후백제 도성의 남쪽 성벽의 흔적을 확인했다. 전라북도기념물 제16호인 오목대 일원에 자리한 도성벽지의 실체를 밝히려면 이 일대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실시한 시굴조사에 의하면 이 일원에서 후백제시대의 토성벽이 확인된 바 있다. 

 

image
강원종 연구위원이 무릉마을 인근 우아동 사지를 둘러보고 있다. 조현욱 기자

△우아동 사지와 무릉 고분군

무릉마을 남쪽 암석골 인근에 위치한 우아동 사지는 우물지와 석축의 흔적과 함께 다량의 기와편이 확인된 곳이다. 마을 뒷산과 앞산 정상부에 위치해 있는데, 아중저수지 인근 산 정상부에서 인위적으로 조성돼 정연하게 배열된 숯 조각이 확인됐다. 마을 주민들의 제보로 후백제 분묘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정밀조사하고 있다. 

현재 무릉을 2곳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주변에 대한 발굴조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덕진구 우아동에 왜망실 재전마을과 용계마을 사이에서는 와요지가 확인된다. 이곳에서 생산된 기와는 주로 관아에 공급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조금 더 가면 도요지가 있다. 주변에서 확인된 숯과 가마벽체, 토기편 등을 통해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후백제 왕궁터는 어디에

후백제 왕궁터 위치를 비정하는 과제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수년간 연구 끝에 물왕멀설, 전라감영설, 인봉리설 등으로 정리되고 있다. 

image
동고산성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 본 전주시가지 전경. 김태경 기자

<전주부사>에 의하면 물왕멀은 전주시청 동쪽의 고산방면의 도로와 전주고등학교 사이의 언덕 일대를 가리킨다. 지금은 전주도시혁신센터의 동쪽지역부터 동초등학교 서쪽지역 일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는 가옥이 밀집해 있어 궁성이나 관련 시설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전주의 주산을 기린봉으로 삼고 제일고등학교 부근을 혈처로 보아 풍수지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설이다. 

전라감영설은 전북문화재연구원이 실시한 전라감영지 발굴 과정에서 통일신라 유구로 추정되는 건물지와 배수시설, 담장 기초시설이 확인된 것을 근거로 삼고 있다. 통일신라 때 지금처럼 이 일대에 전주천의 물줄기가 흐른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명문와도 출토돼 오랫동안 관청과 관련된 시설들이 자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명기와는 동고산성 출토품과도 유사한 형태를 띤다.

2013년 전주도성 정밀 지표조사 때 구전으로 후백제 왕궁 터로 정해지는 곳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인봉리설이 주목받았다. 2014년 이 일대에서 왕궁을 두른 왕성으로 추정되는 성벽이 확인됐다. 인봉리 일대 왕궁의 존재는 <전주부사>에서도 언급된다. 왕성의 북벽은 현재 중노송동 기자촌과 문화촌을 경계로 대부분 주택단지가 개발됐는데도 자연 지형이 그대로 살아있다. 일제강점기 때 촬영된 항공사진에 의하면 왕성의 북벽으로 추정되는 산줄기 정상부가 인위적으로 조성해 놓은 것처럼 평탄한데, 지금도 그 뼈대가 그대로 남아 주변보다 높은 지형을 이룬다. 

 

김태경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남원남원시, '수궁야광놀이터 in 관서당' 운영… 겨울밤 문화유산 특별 경험 선사

남원남원시, 드론 배송 첫 해 성공적 마무리… 161회 운항

사람들[줌]전통식품 대중화에 앞장 김종덕 순창성가정식품 대표

스포츠일반군산시체육회, 초중고 체육부에 운동용품 전달

사람들국립군산대학교, 대학회계직 정규직 전환 적극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