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후인>은 고조선의 뱃사공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 만들어 부른 고대 가요다. 남편으로부터 백수광부와 그의 아내 이야기를 듣고 만든 이 노래의 또 다른 이름은 <공무도하가>. 가장 오래된 시가로 알려진 이 노래로 지금은 사라졌으나 그 이름을 알린 악기가 있다. 고대 현악기 <공후>다. 기록에 따르면 공후는 고대 아시리아로부터 페르시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들어왔다. 문헌상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현악기로 꼽히는 공후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문헌에 모두 전해지고 있고, 범종이나 벽화 등에도 공후를 연주하는 사람이 남아 있어 오랜 세월 활발하게 사용되었던 악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려 시대 이후 공후는 우리나라 음악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조선 시대에 편찬된 음악 서적 <악학궤범>에도 그 이름이 남아 있지 않으니 조선 시대 이전부터 연주에 사용하지 않은 악기가 되었을 것이란 추측만 있을 뿐이다.
2000년대 초, 잊혀진 고대의 현악기 공후를 복원하겠다고 나선 악기장이 있다. 현악기를 만드는 고수환 명장이다. 젊은 가야금 연주자와 함께 시작했던 복원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남아 있던 오래된 문헌과 국립국악원에 전시된 공후를 연구해 실패와 보완을 거듭하며 복원에 성공했다. ‘잊혀진 악기 공후’의 복원에 국악계는 주목했다. 연주 무대까지 선보이며 공후는 다시 살아난 악기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공후는 그 후 다시 연주되지 않았다. 공후를 찾는 연주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명장은 자신이 복원한 공후가 ‘10% 부족한 악기’에서 멈추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사실 공후는 25줄 현악기로 복원했지만, 음의 폭이 좁아 오늘의 무대에서 연주하기에는 보완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았다. 갈수록 자리가 좁아지는 국악기 제작을 평생의 업으로 살아온 그의 꿈은 다음 세대까지 남을 수 있는 생명력 긴 악기를 만드는 일. 좋은 악기를 만드는 것도 그렇지만 잊혀진 악기 공후 복원에 매달렸던 이유였다.
고수환 명장이 지난 7월,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이 됐다. 국가문화재 악기장 분야 지정은 26년 만의 일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숫자도 적어 올해 지정된 그를 포함한 현악기장은 3명이다. 알고 보니 이들 모두 전북 태생이다.
열여섯 살에 악기 만드는 일을 배우기 시작해 60년 동안 한길만 걸어온 그는 내려놓았던 <공후 복원>을 다시 꿈꾸고 있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연주 악기로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지만, 그에게 공후 복원은 이제 묻어둘 수 없는 일이 됐다. 동행할 연주자가 있으면 명장에게는 큰 힘이 될 터. 무대를 만날 공후가 기다려진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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