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대 최다인 11개 부문을 석권했던 영화 ‘벤허’ 의 명장면은 마지막 마차경주인데 벤허가 자신의 누이와 어머니가 한센병에 걸린 것을 보고 기겁하던 장면은 너무나 생생하다. 한센병은 1871년 이를 최초로 발견한 노르웨이 의학자 ‘한센’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세균성 질병인데 걸리면 피부에 염증이 발생하고 신체 조직에 변형이 일어난다. 한센인들은 흉한 외형으로 ‘문둥이’라 불리며 편견과 혐오, 극단적 차별을 받아 왔다. 전남 장흥 출신 소설가 이청준은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통해 한센인의 아픔을 잘 묘사했다. 한센인들은 오랫동안 정부의 격리 정책으로 깊은 산 속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 만든 정착촌에서 축산업 등에 종사하며 살아왔다. ‘한센인’ 하면 소록도처럼 먼 곳이 연상되지만 실은 바로 우리 주위에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익산 왕궁과 김제 용지다. 지난해 ‘제29회 김제시민의 장’ 공익장을 수상했던 김창수(62) 전주김제완주 축협조합장. 그는 용지의 한센인 정착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받아온 차별과 혐오를 신앙심으로 극복하며 결국 5선 조합장의 신화를 쓴 인물이다. 어린 시절 문둥이라는 비아냥에 피눈물을 흘리며 성장한 그였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시작한 선교헌금이 벌써 30 여년이 지났고, 누적 선교헌금액은 15억 원도 넘는다고 한다. 지난 14일 ‘새만금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김제 용지 한센인촌 축사 매입 사업 종료시점은 오는 2028년까지 가까스로 4년 연장됐다. 문제는 향후 김제 축사 매입 사업을 지속하기 위한 추가 예산 확보 여부다. 용지 한센인 정착농원은 53개 축산농가(돼지 47, 한우 6)에서 가축 6만두를 사육하고 있다. 축산폐수로 인한 환경문제와 전북혁신도시 악취 문제, 특히 새만금 수질관리의 핵심 포인트로 꼽힌다. 총 53개 축사 중 26개 매입에만 사업비 481억원을 모두 소진, 남은 곳 27개 매입과 생태복원에 370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한 실정이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 내년에도 마무리할 수 있는 액수다. 용지와 여건이 비슷한 왕궁의 경우 축사 매입이 지난해 마무리됐고 이젠 환경복원의 메카로 만드는 중이다. 최근 영국 에덴 프로젝트 팀이 익산을 방문,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에덴 프로젝트는 영국 콘월의 방치된 폐광지역을 세계 최대의 친환경 온실정원으로 탈바꿈시킨 생태복원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익산시는 '왕궁정착농원'을 생태교육의 장으로 복원하기 위해 '에덴 프로젝트' 를 추진중이다. 이제 모든 관심은 김제 용지로 쏠렸다. 새만금 수질관리는 물론 한센촌 문제 핵결을 위해 지방정부는 물론, 중앙정부와 국회가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큰 곳보다 급한 곳에 손이 먼저 가야만 한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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