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언제 청자로 대표되는 도자기가 생산되었는가는 현재까지도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초기청자의 등장은 가마의 등장 배경, 운영 주체, 제작 시기 등과 관련하여 다양한 견해가 분출하고 있으나, 현재에는 고려가 중국의 오월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10세기 중반경에 처음으로 청자를 제작하였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이러한 견해는 1980년대 이후 용인 서리, 시흥 방산동 청자가마들의 고고학적 조사 성과와 더불어 북한지역 황해남도의 배천 원산리 청자 가마등의 조사 성과를 인용하여 고려의 청자가마들이 중국 오월과의 교류, 오월의 멸망으로 인한 월주요 장인들의 고려 이주를 통해 중국의 벽돌가마를 모방하여 벽돌가마를 조성하여 최초의 한국 초기청자 가마는 벽돌가마이며, 그 시기는 대략 950년경으로 설정하였으며, 지역적으로는 초기 청자가마인 벽돌가마가 경기도와 북한의 황해남도 지역에 분포하여 한반도의 중서부지역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에 의문을 제시하며 호남의 전라북도 지역을 중심지역으로 하는 후백제가 우리나라 초기청자 가마의 운영 주체세력이었다는 새로운 견해가 최근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최근 조사가 진행된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초기청자 가마의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해석하여 기존 학설의 문제점을 분석하여 나온 결론이다.
후백제는 후삼국기 고려 보다도 훨씬 먼저 중국의 청자 주요 생산지인 월주요를 포함한 오월(吳越)과 서로 사신을 파견하는 등 교류를 밀접하게 진행하였는데, 이것은 국가 수립에 대한 국제적인 승인 및 장보고의 청해진 해체 이후 사라진 청자 수입과 공급이 주목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900년 완산주로 도읍을 옮겨 후백제 건국을 선포한 후 다시 오월국에 사신을 보내 오월왕으로부터 후백제왕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러한 오월과의 계속되는 교류는 백제-장보고로 연결된 국제 해양교류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오대십국 중 하나인 오월은 월주요(越州窯)의 성장을 통해서 번영하였고, 중국 청자의 본향인 월주요 도자 특징은 중국식 해무리굽과 벽돌가마로 대변된다.
중국에서 청자기술이 도입된 후 초창기에 제작된 청자를 소위 ‘초기 청자’로 일컫는다. 초기 청자를 생산하는 가마는 축요재(築窯材)에 따라 벽돌이 사용된 벽돌 가마와 진흙, 석재, 갑발 등으로 축조된 진흙가마로 나뉘는데, 중국의 전통을 이어받아 벽돌 가마가 진흙가마보다 이른 시기에 운영되었다.
전라북도의 내륙 중에서도 가장 내륙이라 할 수 있는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초기 청자가마는 2013∼2022년에 걸쳐 총 6차례 조사 되었다.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청자가마터에서는 이른 시기의 선해무리굽 및 중국식해무리굽 청자완들과 함께 한국식해무리굽 청자완이 수습되었으며, 진흙가마 2기와 벽돌 가마가 1기가 완벽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2022년의 시굴조사에서도 민가 앞마당에서 벽돌가마의 일부가 확인되어 정밀조사를 기다리고 있다.
2017년에 완벽하게 전모를 드러낸 벽돌 가마는 길이가 43m로 확인되어 호남지역에서는 최대 규모의 가마로 확인되었다. 2016∼2017년에 걸쳐 확인된 벽돌 가마는 초기의 벽돌 가마에서 점진적으로 진흙가마로 변화되는 과정을 한 곳에서 보여주는 최초의 가마로, 한국 초기 청자의 변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1, 2호 가마의 운영시기는 10세기 초 · 중반에 처음 축조되었다가 퇴화형해무리굽이 생산되는 11세기 중반에 폐요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확인된 제3호 가마인 진흙가마는 확인된 길이가 13.4m로 이 가마에서는 한국식 및 퇴화형해무리굽의 청자들이 수습되어 가마의 운영시기는 대체로 11세기 중엽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의 조사결과로 보면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의 운영시기는 10세기 초·중반인 930∼50년경에서 약 11세기 중반 경까지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의 초기청자 가마인 벽돌가마는 현재까지 가마유구가 확인된 곳이 8개소에 이르는데, 진안 도통리 및 고창 반암리 청자가마터를 제외하면 경기도에 시흥 방산동와 용인 서리 등 3곳과 북한지역인 황해남도의 배천 원산리 청자가마터 3곳 등 총 6곳이다. 기존에 조사된 6곳의 가마터는 대략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백자가마가 존재하거나 백자가마터가 확인되지 않았어도 가마의 퇴적층에서는 청자와 백자편들이 동시에 수습되고 있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들 벽돌가마 인근에는 도자기 가마와 구분되는 도기 가마가 별도로 운영된 흔적들이 확인되고 있으며, 6곳 중 배천 원산리, 시흥 방산동, 용인 서리 가마터에서는 초기 청자의 시대구분에 중요한 단서로 일부 도자사학자들이 인정하는 요도구인 점권들이 확인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청자가마에서는 한반도 중서부지역의 청자가마에서 확인되는 백자가마터 및 백자편의 존재, 도기가마터와 점권이 확인된 사례가 아직까지는 없는 점을 고려하면 한반도 중서부지방에서 확인된 벽돌가마군과 전북의 초기 청자가마터는 성격이 전혀 다른 집단에서 운영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아직 제작 연대를 가름할 정확하고 명확한 자료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청자가마는 지금까지의 조사결과로 보면 도자사적 측면에서는 고려시대 초기에 운영되었던 한반도 중 · 서부지역의 가마들과 여러 차이점이 나타나고 있어 고려와 다른 집단이 운영했을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정치 및 군사적 · 경제적 상황 등으로 판단하면 후백제 견훤시대에 제작된 한반도의 초기 청자가마 중에서 가장 이른 가마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가마가 후백제에 의해 운영되었다면 이들 가마는 중국 오월과의 교류관계 속에서 탄생하였다고 할 수 있다.
/정상기(문화체육관광부 학예연구관)
후백제와 고창 반암리 청자 가마
고창 반암리 청자가마에서는 청자요지군은 일부분만 조사되었지만, 2021년 조사된 구역에서는 벽돌가마 1기, 진흙가마 4기, 건물지 2기가 확인되었으며, 2022년 조사에서는 벽돌가마 1기, 진흙가마 5기, 건물지 2기가 확인되었다. 청자가마는 구릉의 사면부에, 건물지는 주로 평탄면에 입지하고 있다. 고창 반암리 청자요지는 일부분만 조사가 진행되었지만, 현재까지의 조사성과로도 한국 도자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실들이 확인되었다.
고창 반암리 유적에서는 벽돌 가마에서 진흙가마, 다시 진흙가마에서도 중층을 이루어 청자 생산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초기 청자가마의 밀집과 중첩양상은 다른 유적에서 아직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는 반암리 청자요지에서 집중적으로 청자생산이 이루어졌다는 방증일 것이다. 따라서 반암리 청자요지는 초기 청자 생산의 중심지로서, 우리나라 청자의 도입과 전개과정을 밝히는데 주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고창 반암리 청자요지는 지금까지의 조사 성과와 후백제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청자가마들 보다는 늦은 시기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여기서 제작된 청자류들은 서해안과 금강수로등을 이용해서 충정도 등 내륙으로 운반되어 후백제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현재까지의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고창 반암리 청자가마들의 조성시기와 성격을 규명하여 보면, 벽돌 가마를 구성하는 중요 요소인 벽돌편들의 상태를 보았을 때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청자가마의 벽돌 가마와 형태가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으며, 가마 축조 형식도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청가가마의 형태인 기반층을 사선으로 굴광한 다음 벽돌을 쌓아올려 축조한 형식이다.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 청자가마가 기존의 벽돌 가마의 내부 폭을 줄이는 방식으로 후대의 진흙가마를 운영한 반면 고창 반암리 청자가마는 기존의 벽돌 가마 위에 진흙가마를 조성하여 운영하는 방식으로 추정되어 약간의 차이점을 보인다.
고창 반암리 청자가마는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 보다는 늦은 시기에 운영되다가 고려에서 어느시기까지는 계속적으로 가마가 운영된 것으로 파악된다. 후백제와 중국 오월의 교류관계, 그리고 진안 도통리 중평마을과 고창 반암리 청자 가마 유적의 성격을 볼 때 고창과 진안 지역의 벽돌가마는 한반도 중·서부 지방의 벽돌가마의 영향을 받은 집단이 시차를 두고 운영한 것이라기 보다는 직접적으로 중국 오월과 교류하여 청자 가마를 독자적으로 운영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상기(문화체육관광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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