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주도 도시재생사업의 모범 <개항로 프로젝트>
예술적 실험 공간으로 주목받는 폐공장의 변신<코스모40>
1876년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이후 원산과 인천의 항구를 잇달아 열었다. 불평등조약의 산물로 이루어진 이른바 강제 개항이었다. 인천은 일본의 조선 진출과 주권 침략의 음모를 실현하기 위한 도시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문화가 밀려 들어오는 이국적인 장소이자 새로운 것에 대한 희망이 교차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개항기와 근대를 거치며 새로운 문물이 들고 나는 창구로 근대의 여명을 밝힌 인천의 성장은 역동적이다. 본격적인 성장은 1960년대와 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이루어졌다. 공단이 들어서면서 투자가 집중되어 각종 기간시설과 편의시설이 확충됐다. 각종 산업이 발달하면서 인구도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서울, 부산, 대구에 이어 4대 도시로 성장한 것도 이즈음이다. 1981년에는 인구 1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직할시로 승격했고, 1995년에는 인천광역시로 확장되며 승격됐다.
이후 개발과 성장을 지속해온 인천의 오늘은 외형적으로(?) 화려하다. 항만 상업 도시를 기반으로 농공업과 수산, 문화와 관광, 물류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비약적인 성장을 하는 도시. 그러나 인천 역시 오래된 도시로서 오랫동안 안고 있는 과제가 있다. 도시 확장으로 쇠퇴한 원도심을 다시 살려내는 일이다.
기능을 잃은 공간에 새로운 역할을 불어넣다 <개항로 프로젝트 >
인천의 원도심인 중구 개항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 일대는 ‘힙’한 문화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곳 역시 도시가 확장되면서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거리에 남은 것은 사람의 온기를 잃어버린 공간들. 개항로는 곧 ‘과거’를 품은 역사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 인천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원도심의 부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뭉친 덕분이다. 이 중심에는 민간이 주도하는 도시재생 사업 ‘개항로 프로젝트(대표 이창길)’가 있다. 2018년 시작된 개항로 프로젝트는 원도심 재생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인천 중구 구도심을 중심으로 제 기능을 잃은 건축물에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능을 부여해 거리를 재편하는 프로젝트다.
개항로 프로젝트가 주목한 공간은 인천항과 맞닿은 신포동 입구에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이르는 1km 남짓한 2차선 거리다. 영화관과 병원, 회사 등 건축적으로도 가치 있는 근대 건축물과 항구도시로 한 시절 번성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된 곳이다. 개항로를 살리는 주체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지역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있는 10여 명 기획자와 원도심을 지켜온 오래된 가게들. 개항로 부활을 꿈꾸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새로운 기능을 갖게 된 공간은 20여 곳에 이른다.
프로젝트 첫 공간은 오래된 이비인후과를 복고풍 콘셉트로 개조한 카페 '브라운 핸즈'. 이후 다양한 성격의 가게와 공간이 뒤를 이어 문을 열었다. 옛집을 무조건 부수지 않고 건축물의 개성을 살리고 특별한 기능을 더한 곳들이다. 한 조명회사가 조명 인테리어를 콘셉트로 오래전 문을 닫은 산부인과를 개조해 만든 카페 '라이트 하우스', 방치되어 있던 창고를 개조해 만든 갤러리 '잇다 스페이스', 볼품없는 건물을 작은 잡화 백화점으로 탄생시킨 ‘개항백화’, 일제시대 때 지어진 튼튼한 벽돌 건물을 고치고 개항로의 기억을 품은 소품을 더해 문을 연 ‘개항로 통닭’ 등 근대 건축물의 가치를 온전히 담고 있는 공간의 변신은 흥미롭다. 덕분에 개항로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새로운 공간과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오래된 가게들이 어우러져 특별한 풍경을 갖게 됐다.
개항로 프로젝트는 2021년, 오래된 가게를 지켜온 어른들과 함께 ‘개항로 맥주’를 만들어 출시했다. 지역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는 이 맥주는 협업의 결실이다. 개항로 프로젝트는 새로운 것에만 열광하지 않고 도시를 지켜온 오래된 가게들과 협력하면서 상생의 길을 찾아간다. 도시재생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주는 사례다.
지역주민 예술가와 연대하는 폐공장의 변신 <코스모 40>
인천에는 뜨거운 관심을 받는 복합문화공간이 있다. 공간 성격을 하나로 규정하거나 한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예술적 실험과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의 탐색과 시도를 껴안은 공간 <코스모40>이다. 공간의 전신은 화학 공장. 인천 서구 가좌동에 있던 코스모 화학의 대규모 공장 단지에 있던 건물 한 동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당초 이곳에는 45동이나 되는 거대한 공장이 있었다. 2016년 공장이 울산으로 이전하면서 2만 평이 넘는 대규모 단지에 있던 공장들은 빠르게 철거되기 시작했다. 40동도 철거 대상이었으나 공간의 맥락을 지키고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지역 주민의 제안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주민참여와 지역재생의 의미를 담아 특별한 공간으로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폐공장의 재생은 낯설지 않다. 복합문화공간, 미술관과 공연장, 혹은 상업적 성격을 앞세운 대형카페 등 방치됐던 대규모 공장을 활용해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시킨 예는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코스모40>은 좀 더 특별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외형적으로 돋보이는 독특한 구조다. <코스모40>은 원래의 건물을 보수하면서 최소한의 증축을 했다. 완전히 분리된 듯하면서도 연속된 하나의 고리 모양으로 삽입된 신관은 옛 공장 공간의 새로운 활용도를 적극적으로(?) 돕는 역할을 한다. 특이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물로 개조된 <코스모40>'은 '인천시 건축상 대상',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공장의 기초 구조물과 기계들을 최대한 남겨 놓은 내부도 새로운 건축적 요소와 결합해 시간의 중첩이 자아내는 아름답고 흥미로운 공간이 됐다.
이러한 특성으로 <코스모40>은 예술적 실험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어디서도 품을 수 없는 날카롭고 날이 서 있는 작업을 담아내는 공간,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주목하는 공간이 <코스코 40>이다. 지역 주민들과의 탄탄한 연대도 돋보인다. 주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바자회 팝업스토어 등을 통해 주민 참여를 끊임없이 이끌어낸다. 방치됐던 건축물이 가져올 지역사회의 변화가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김은정 선임기자, 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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