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청년을 모으고 청년의 힘을 일으키다
익산청년시청과 군산의 ‘술익는 마을’ 프로젝트
20만 명. 20여 년간 전북을 떠난 청년 인구수다. 올해 8월 기준, 전라북도 인구는 176만 명. 전체 인구의 11%, 꼭 정읍과 완주를 합한 인구수다. 청년 유출은 전북의 문제만이 아니라 대부분 중소도시가 안고 있는 현실이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 상황을 고려한다 해도 대도시에 미치지 못하는 교육·산업 환경 때문에 지역을 떠나는 청년인구가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은 안타깝다. 전국의 도시들을 긴장시키고 있는 지역소멸 위기도 결국은 청년들의 유출이 가장 큰 원인이다. 전북뿐만 아니라 전국의 작은(?) 도시들이 지역소멸을 막기 위한 해법으로 청년들이 떠나는 것을 막고 외지의 청년들을 끌어들이는 정책에 부심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시재생이 청년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 있다. 정부의 다양한 공모사업의 중심에는 청년이 있다. 덕분에 전국 각 지역에서 청년을 내세운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도시재생 사업에서도 관심을 끄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 대부분은 아직 시작 단계이거나 실험 단계에 놓여 있지만,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오래된 도시를 살려내는 현장은 희망을 준다.
전북에도 이런 현장이 여럿 있다. 지역의 오래된 공간과 자산을 주목해 건물을 거쳐 다시 만들고 지역만의 특별한 콘텐츠를 활용해 도시의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의지가 담긴 현장이다. 그중에서도 주목을 모으는 사례가 있다. 익산시가 구도심에 있는 오래된 호텔을 고쳐 청년의 취·창업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탄생시킨 <익산청년시청>과 지역 콘텐츠를 개발해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동네 청년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군산 청년기업 지방의 <영화타운과 술익는마을> 프로젝트다.
△방치된 호텔의 변신, 대한민국 1호 익산 청년시청
대부분 도시들이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 부심하고 있는 것은 청년 정책이다. 전라북도의 도시들도 예외가 아니다. 익산시는 그중에서도 청년인구 잡기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자치단체다.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익산시는 시정의 우선순위에 청년을 앞세웠다. 지방소멸대응기금 까지도 다른 시군과는 달리 청년을 위해 투자할 정도다.
지난해 12월, 익산에 새로운 공간이 문을 열었다. 익산청년시청이다. 전국에서 처음 시도한 덕분에 ‘대한민국 1호’란 별칭을 얻었다. 청년시청이 있는 중앙로는 익산의 구도심 중심이다. 이 일대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익산의 상권을 대표하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외곽에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주민들이 떠나고, 자연스럽게 상권은 위축되면서 활기를 잃었다. 빈 곳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하고 더러는 흉물로 방치됐다. 한때 성업했던 ‘하노바 호텔’도 그중 하나였다. 익산시는 구도심에 남아 있는 오래된 건물 하노바 호텔을 사들이기로 했다. 이 공간을 활용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거점으로 만드는 것, 그 영향으로 구도심이 활기를 찾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익산청년시청>이 탄생한 배경이다.
청년시청은 ‘청년들의 행복한 삶과 사회진입을 위해 조성된 공간’이다. 취업과 창업을 위한 정보를 나누고 교육이 진행되며 공간을 지원하고 놀이와 소통을 위한 다양한 공간과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문을 연 지 1년이 채 안 됐지만 익산청년시청은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 청년시청을 다녀간 청년은 1만 5,500여 명, 매월 1,700여 명이 이곳을 찾아 다양한 지원사업과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청년 취업 성과도 이어지고 있다. 청년시청이 주도하고 있는 청년도전 지원사업에 참여한 청년 10명이 취업을 하고 ‘다이로움 취업박람회’로 청년 100명이 일자리를 찾았다. 창업공간으로도 인기를 모으면서 여러 개의 회사가 독립의 기반을 이곳에서 닦고 있다. 청년들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네트워크를 이어내는 프로그램도 활발하다. 그중에서도 추진 중인 익산 ‘청년지도’ 사업은 청년들의 창업공간과 작업공간을 점으로 이어 공간과 콘텐츠 네트워크로 활용하기 위한 것. 익산이 젊은 도시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담아내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청년시청 운영은 시가 맡고 있다. 중간 조직 없이 자치단체가 직접 운영과 관리를 맡는 형식이다. 청년시청 운영을 위해 기업일자리과의 창업지원계가 아예 사무실을 옮겨왔다. 대부분 민간 위탁이나 전문가 채용으로 운영 기반을 마련하는 것과 달리 자치단체의 직영 방식은 특별한 예다. 그래서인지 사업의 추진과 운영이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거점공간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전문화된 조직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익산의 청년 사업을 주도해온 ‘청숲’의 활동가가 임기제 공무원으로 합류해 있지만, 전문성과 지속성을 위한 조직과 운영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다. 오정선 익산시 창업지원계장(청년시청 대표 운영자)도 "청년 단체나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며 ”그러나 청년시청의 지속적이고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는 조직과 인력의 전문화가 과제”라고 말했다.
△청년이 다시 살리는 군산의 양조산업
군산은 일제강점기 쌀 수탈 전진기지였다. 개항 초기, 군산에 이주해온 일본인 중에는 특히 농장을 운영하는 지주들이 많았다.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일제의 식민지 농업정책)으로 쌀 수탈량이 급증하면서 부를 축적하게 된 일본인 지주들이 그들이다. 쌀을 가공하는 산업도 번성했다. 정미소와 양조업이다. 특히 양조업은 어느 도시보다도 번성해 군산은 양조산업 본고장으로 부상했다. 명절이나 제사 등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면 빼놓을 수 없었던 '백화수복'이 군산의 양조산업체 백화양조의 대표상품이다. 1940년대 설립된 조선양조가 모태인 백화양조는 일찌감치 국내 청주 업계를 석권했으며 국산 양주 제조로도 높은 시장 점유율을 지켜온 업체다. 그러나 1990년대 말 경영권이 바뀌면서 지금은 롯데가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군산의 양조산업 역사를 지역 콘텐츠로 주목한 청년들이 있다. 구도심 재생에 다양한 프로젝트로 참여해온 지역관리회사 ㈜지방도 그중 하나다. 양조산업에 관심을 가졌던 지방의 조권능 대표는 농업회사법인 '흑화양조'를 만들었다. 조 대표는 일찌감치 군산을 청주의 도시로 되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2017년 영화시장을 살리기 위해 시작한 ‘영화타운 프로젝트’도 양조산업을 다시 일으켜보겠다는 생각이 바탕이었다. 영화타운에는 술집을 중심으로 빵집, 화장품 가게 등을 조성했다. 단순히 영화시장 살리기에만 주목하기보다는 영화시장을 활성화하면서 군산이 가진 콘텐츠를 엮어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대규모 단지는 아니지만, 테마파크 형식을 도입, 인근 상점과 협업하면서 마을을 군산의 색깔로 채워나가겠다는 목표였다.
도시재생으로 시작한 이 사업은 다시 새롭게 기획한 ‘술 익는 마을’ 프로젝트가 행정안전부의 청년 마을 만들기에 선정되면서 점점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 사업으로 조 대표는 영화시장에서 도보로 500여m 떨어진 곳에 '술익는마을'을 만들었다. 지금 이곳에는 양조장과 스파 공간이 조성돼 있다. 스파는 양조장에서 술 만든 후 나오는 술지게미로 입욕제 등을 만들고 직접 피로를 풀 수 있는 관광상품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아직 정식으로 문을 열진 않았지만, 영화시장과 이곳 일대에는 관광객들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조 대표는 앞으로 군산의 대표 술을 만들 계획이다. 단순히 지역 술을 개발하는 것뿐 아니라 제대로 판매망을 갖출 수 있도록 마케팅 방법을 연구 중이다. 그가 기획한 프로젝트는 군산의 밤 문화(?)를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는 목표와 닿아 있다.
"지금 군산은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근 도시에 왔다가 잠시 들렀다 가는 도시, 한번 다녀가면 두 번은 오지 않는 도시로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원인이 건강한 밤 문화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타운이나 술익는 마을이 술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고민하는 이유지요.”
‘술익는 마을’은 내년 초, 기획한 술을 출시하고 연계된 공간의 운영을 시작할 계획이다. 청년들이 몰려 오는 도시, 다시 찾고 싶은 도시로 가는 길이 열리고 있다. / 김은정 선임기자, 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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