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빈집에서 마을과 원도심 살리는 새로운 공간으로
한때 공동화되어가는 농어촌 마을을 살리기 위해 빈집을 활용한 프로젝트가 유행처럼 번졌던 적이 있다. 덕분에 더러는 마을 거점으로, 더러는 체험을 위한 공간으로 태어나 새로운 역할을 얻기도 하고 예술인들의 작업이 더해지면서 마을을 알리는 통로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빈집은 갈수록 늘고 있고, 저출산 고령화와 함께 늘어나는 빈집은 이제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부상했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빈집은 151만 1,300여 채, 전체 주택 1,852만 채의 8.2%다. 2015년 조사 결과 106만 9,000채였던 것에 비하면 40% 넘게 늘었다. 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이 중 25.6%인 38만 7천여 채가 1년 넘게 방치된 빈집이다. 전국에서 가장 빈집이 많은 곳은 전남이지만 전북도 12.9%로 제주와 강원에 이어 4위다.
빈집은 도시의 지속가능성, 도시의 쇠락과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빈집 관리’에 고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시재생 역시 '빈집'에 주목한다. 그 결과 오랫동안 방치됐던 빈집이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같은 주민 공동시설로 변신하고 도서관 등 다양한 공공시설이 확대되고 있다. 쇠락한 중소도시의 원도심 재생사업은 대부분이 빈집을 활용해 거점을 만들고 침체된 상권을 살리는 것이 목표다. 전북에서도 마무리되었거나 진행 중인 빈집 활용 재생사업이 많다. 그중에서도 재생사업의 지속성을 주목하게 하는 곳이 있다. 상권 이동에 따라 침체된 원도심을 살려낸 부안의 ‘매화풍류마을'과 빈집을 사들여 책방과 공방, 식당과 카페 등 독특한 문화거리로 조성한 순창의 ’창림문화누리마을'이다.
△쇠락하던 원도심의 변신, 부안 매화풍류마을
작고 값이 싸 서민들이 숙소로 애용했던 '여인숙'. 여관과 모텔 등 현대식 시설을 갖춘 숙박업소가 등장하면서 대부분 사라졌지만, 아직 명맥을 잇고 있는 곳이 있다. 부안상설시장 인근에 있는 골목이다. 지금은 두세 개 남았지만, 예전에는 시장에 물건을 팔러온 상인들과 손님들이 오가며 찾던 여인숙이 몰려 있었던 곳이다. 이 골목이 자리한 부안읍 동중리 일대는 한 시절 가장 번성했던 부안의 중심가였다. 그러나 생활 환경이 변하고 시외버스 정류소가 이전하자 전통시장을 제외한 인근 상권이 붕괴하면서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
부안군은 군청과 부안상설시장을 잇는 원도심 일대를 살려내기 위해 정비사업을 시작했다. 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니던 4m 거리가 넓어지고 보행환경이 개선됐다. 눈에 띄게 달라진 원도심 기반 시설에 다시 도시재생 사업을 얹혔다. 2018년 말 9월, ‘매화풍류마을’이 국토부 공모사업에 일반근린형 뉴딜사업으로 선정되면서다. 이 사업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초 4년 동안 추진되는 사업이었지만 1년 연장되어 거점시설 중 하나인 어울림센터가 완공되면 2023년 말 마무리 된다.
매화풍류마을에는 4곳의 거점시설이 만들어졌다. 청년창업플랫폼 1·2동과 실버커뮤니티센터, 어울림센터와 매화풍류 예술공방이다. 청년창업플랫폼에는 동네 사랑방 '동네카페'가 있다. 도시재생 시작 전부터 마을 사업을 주도했던 매화풍류마을협동조합이 운영하고 있다. 카페에 있는 모든 시설과 장비는 조합원들이 직접 제작했다. 주민공모사업으로 바리스타 교육과 목공 강습을 받은 주민들의 솜씨다.
‘동네카페’ 주변에는 실버커뮤니티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소금공장이 있던 건물을 새롭게 조성한 매화풍류 예술공방은 개원을 준비하고 있고,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상인·청소년, 방문·관광객이 함께 이용하는 소통 공간으로 운영될 어울림센터 역시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예술공방은 부안 예술인들로 구성된 ‘예술인사회적협동조합’이 위탁을 받아 운영할 계획이다. 이 공방을 이끄는 심성희 이사는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이면서도 부안군의 정체성을 담은 문화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협업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거점시설 4곳을 중심으로 부안에서 창업을 희망하는 만 39세 이하 청년 창업가들을 위해 문을 연 '챌린지숍'도 인기다.
부안도시재생지원센터는 하드웨어적인 공간 조성에만 주목하지 않고 공간이 자생할 수 있는 운영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민역량강화를 위한 프로그램과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그 일환이다.
김종원 부안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은 "거주자 중심으로만 거점시설을 운영하고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부안 전 지역의 어린이부터 청소년, 중장년, 노년들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시설로 운영된다면 동력도 얻고 자생 역량도 커질 수 있을 것”이라며 "공간 조성에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연계사업을 발굴하고 사업화를 함께 고민하면서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빈집이 모여 또 다른 마을을 만든 순창 창림문화누리마을
순창군에는 특별한 마을이 있다. '창조적 마을'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창림문화누리마을이다. 순창군은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의 '창조적 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마을의 역사·문화를 담은 새로운 마을을 조성했다. 2021년에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되면서 ‘창림문화누리마을’부터 그 일대를 새롭게 갖추는 사업을 더해 관광명소 추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순창읍에 있는 ‘창림문화누리마을’은 내년까지 진행되는 사업이다. 중앙로를 정비하고 창림문화누리마을 조성을 끝내고 내년에는 이 일대의 활성화 방안 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 창림문화누리마을이 도시재생 사업으로 정비되면서 이 일대의 환경은 크게 변했다. 저녁만 되면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어둠도 일찍 찾아왔지만, 지금은 기반 시설은 물론 조명까지 갖춰져 밤에도 환하고 아름다운 마을이 됐다.
새로운 모습으로 정비된 창림문화누리마을에는 6개 공간이 들어섰다. 방앗간, 상점, 주택 등 빈집으로 방치되어 있거나 이주를 희망하던 가구를 사들여 보수한 공간들이다. 이 공간에는 창림국수, 창림카페, 길거리책방, 크레파스, 토닥토닥 발효공방, 은희공방 자수 등이 입주해있다.
창림문화누리마을은 건물과 땅을 순창군에서 매입해 공간을 조성하고 입주자를 모집해 운영하고 있다. 임대료가 저렴해 부담이 없지만, 본격적으로 공간이 운영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을 단위의 운영 시스템은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기관과의 연계 프로그램도 아직은 미흡해 마을의 홍보나 마케팅은 입주자들 스스로가 해내야 하는 여건이다.
순창도시재생지원센터는 현재 공간 조성에 집중하고 있지만, 공간이 마무리되면 주민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해 운영하면서 주민들이 주도하는 공간으로 이끌 계획이다.
이곳에 입주해있는 공간 중 가장 오래된 곳은 창림국수(대표 권주철)다. 방앗간이 있던 가게를 보수해 식당으로 개조한 창림국수는 오래된 가게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낸 외관과 벽화가 눈에 띄는 식당이다. 권대표는 순창 출신으로 외지에서 활동하다 귀향해 농사를 지었으나 전업해(?) 2년 전 식당을 열었다. 6개 공간의 교류와 소통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그는 문화누리마을을 순창의 관광지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침체 됐던 상권을 되살리고, 외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은 물론 주민들이 함께하는 문화마을을 만드는 작업이다. 얼마 전에는 6개 공간이 함께 활용하는 할인권을 만들었다. 6개 공간의 대표가 홍보 마케팅을 위해 마음을 모아 시작한 첫 작업이다.
순창군청 도시재생 뉴딜사업 담당자는 "창림문화누리마을은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과 더불어 그 일대가 도시재생 사업에 포함돼 있다. 진행하고 있는 어울림센터로 사업은 완료된다. 아직 사업이 진행 중이다 보니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하드웨어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도시재생 대학 강좌를 진행하는 등 소프트웨어 쪽에 주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김은정 선임기자, 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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