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의 천년고찰 송광사(松廣寺). 송광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금강역사나 사천왕상이 생각날 수도 있지만 송광사를 대표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대웅전 천장에 그려진 ‘비천(飛天)’도이다. 비천은 부처의 정토에서 공중을 날아가면서 하늘의 꽃을 흩뜨리거나 하늘의 음악을 연주하는 천녀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비천’은 인도에서 생겨났지만 사실은 서양의 날개 달린 천사가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 간다라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전파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송광사 비천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경로를 거쳐 완주까지 왔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메소포타미아로 떠나야 한다.
△날개를 단 최초의 동물, 우룩(Uruk) 그리핀
비천의 기원은 인도로 알려져 있지만, 초기 인도 불교 미술에 등장하기 훨씬 오래 전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지역에서 날개를 단 동물과 신(神)이 장식 모티프로 사용되었다. 원래 날개가 없는 인간이나 동물에 날개를 다는 것은 신성(神聖)과 보호의 상징이다. 또한 날개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메신저로도 기능한다. 날개 달린 최초의 동물 모습은 BC 4100-3000년 메소포타미아 우룩(Uruk) 시대의 원통형 인장에 보인다. 작은 인장 속에는 괴이한 동물들 중 최초의 그리핀(griffin)이라 할 수 있는 사자 머리를 한 독수리와 기다란 목에 사자 머리를 한 신화 속 짐승 세르포파드(serpopard)가 있다. 이러한 날개 달린 신화 속 짐승은 날개를 가진 신인(神人)으로 확산되어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초기 문화에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기원전 2700년 이집트 고왕국 시대의 여신 이시스(Isis)도 커다란 날개를 가지고 있다. 그 외에도 기원전 9세기 아시리아(Assyria)의 도시 님루드(Nimrud) 궁전에 세워졌던 거대한 비석에는 긴 수염과 한 쌍의 커다란 날개를 지닌 신인(神人)이 신성한 나무 좌우에 나란히 서 있다. 이처럼 날개 달린 동물과 인간의 형상이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 널리 확산된 것은 군사적 정복과 무역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 근동의 신(神), 세라핌과 아후라 마즈다
메소포타미아의 날개 달린 신(神)은 성경 속 천사로도 이어진다. 기원전 8세기에 아시리아가 이스라엘 지역을 정복했었던 때 기록된 이사야(Isaiah)서 6장 1절에 보이는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진 ‘세라핌(seraphim)’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BC 6세기 페르세폴리스에서는 조로아스터교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를 날개가 달린 신성한 인물로 형상화되기도 했다. 이러한 날개를 가진 근동(近東) 지역의 신들은 후대에 이슬람의 천사로 계승되는 동시에 그리스로 전해져 헬레니즘 미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랑의 여신 에로스(Eros), 승리와 풍요의 여신 니케(Nike), 꿈의 신 모르페우스(Morpheus) 등이 된다. 이처럼 날개를 단 서양의 천사가 늘어나는 것은 지중해 동부를 중심으로 지역 간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생겨난 문화적 융합 현상이다.
△초기 인도 불교 미술의 날개 달린 천사
근동 지역에 이웃해 있는 인도. 소위 무불상 시대인 인도의 초기 불교 미술에는 날개를 단 천인(天人)이 많이 보인다. 이 공중을 나는 천녀는 부처님 생애의 주요 사건을 묘사할 때 등장하며, 하늘에서 내려와 신변(神變)을 목격하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예를 들면, BC 2세기경 조성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교 스투파인 바르후트(Bharhut) 스투파 토라나(torana)에는 하늘에서 비스듬히 내려온 두 명의 천사가 보리수 위에서 화환을 들거나 꽃을 뿌리고 있다. 이러한 형상은 성수(聖樹)를 가운데 두고 좌우에 인물이 대칭적으로 배치되는 님루드 비석의 양식과 맞닿아 있다. AD 1세기에 만들어진 산치(Sanchi) 스투파 토라나 서문과 북문을 장식한 부조에도 비슷한 양상이 보인다. 보리수 위쪽 좌우에 두 명의 공양인은 비샤푸르(Bishapur) 부조의 천사와 비슷한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전형적인 페르시아의 입수쌍인(立樹雙人)의 형상이다. 인도 초기 불교에서 확인되는 이 날개 달린 천사는 대승불교의 확산 추세에 힘입어 중앙아시아 간다라에서 헬레니즘과 만난다.
△붓다를 수호하는 기독교 아기 천사와 그리스 신
불교와 헬레니즘이 만나 탄생한 간다라(Gandhara) 미술은 쿠샨 왕조(AD 1~4세기) 시기에 가장 번성했다. 이 시기 실크로드는 무역 네트워크로써 활발히 작동하면서 로마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고, 이에 따라 간다라에서는 불상의 탄생 뿐만 아니라 불교적인 모티프가 고대 그리스 예술과 결합하는 문화적 혼합주의로 진화한다. 특히 간다라 그레코 불교 미술(Greco-Buddhist art)에서는 날개 달린 이미지에 한층 친숙해진다. 구체적 사례로 파키스탄 쿠날라(Kunala) 불교 사원의 석조 부조에는 날개 달린 천녀가 많이 보이고, 기독교 신학에서 가장 고귀한 이미지 중 하나인 벌거벗은 아기 천사 큐피드(Cupid)가 신을 숭배하는 화환을 들고 있다. 또 아프가니스탄 하다의 타파 칼란(Tapa Kalan) 사원에서는 3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큐폴라(cupola)가 출토되었는데, 목이 잘린 붓다 위로 화환을 들고 날아다니는 사랑과 섹스의 그리스 신 에로스(Eros)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처럼 헬레니즘화된 날개 달린 천사는 간다라에서 한반도를 향하여 차츰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즉 천사의 날개가 차츰 사라지는 것이다.
△ 키질 석굴 : 천사와 비천의 과도기
AD 4-7세기에 조성된 중국 신장 키질(Kizil) 석굴. 이곳 벽화에는 날개 달린 천사가 여전히 보이지만 날개 없는 천사들도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키질 38굴 벽화에는 왕관을 쓰고 후광을 두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쓰러지는 한 인물을 붙잡고 있는데 두 개의 푸른 날개가 펄럭이고 있다. 또 키질 227굴 벽화에는 아치 위쪽에 날개 달린 나체 인물 두 명이 그려져 있는데 한 명은 피부색이 하얗고 한 명은 어둡다. 간다라에서 보았던 그레코로만(Greco-Roman) 양식의 천사이다. 한편 키질 8굴 벽화에는 드디어 송광사 비천의 모습과 유사한 날개 대신 스카프를 휘날리는 비천이 등장한다. 머리 뒤에 동그란 광배를 두르고 왕관을 쓴 두 명의 비천은 꽃을 뿌리고 악기를 연주하며 공중을 비행하는데 팔목에 휘감긴 스카프가 펄럭이고 있다.
△ 서양 천사의 동아시아적 수용
키질을 지나 돈황 막고굴(莫古窟), 맥적산(麥積山) 석굴과 운강(雲崗) 석굴 등으로 동점(東漸)하여 한반도에 가까워질수록 날개 달린 천사의 서양식 이미지는 점차 동양식 천인(天人)의 이미지로 변해간다. 서양 천사의 날개는 사라지고 천의(天衣)를 길게 나부끼는 형태로 변모하며, 여성의 가슴 같은 섹시한 육체미는 복숭아로 대체하거나 두툼한 옷으로 가려지게 된다. 불교미술 전문가 김은아 교수(우석대 대학원 예술경영학과)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공중을 날지만 날개가 없는 송광사 비천은 날개 달린 서양 천사라는 이미지를 동아시아가 어떻게 수용하였는지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송광사 비천은 동일한 의미를 가지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데 동서양의 해석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전홍철 우석대 경영학부(예술경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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