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그리스는 직선거리로 약 8,150km 떨어져 있다. 두 지역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과 서쪽 끝에 위치해 있어 문화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만, 고대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대 한국은 실크로드 3대 교역로인 초원로, 오아시스로, 해로를 통해 다양한 문물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초원로(Steppe Route)를 통해서는 유목민들의 문화가 전해졌다.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스키토-시베리아(Schytho-Siberia) 계통의 동물 문양, 신수(神樹) 숭배 신앙, 샤머니즘 의례나 축제에 사용된 북과 청동방울, 말 관련 유물들은 초원 유목민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보여준다. 오아시스로(Oasis Route)는 초원로의 남쪽, 타클라마칸 사막의 가장자리를 따라 형성된 교역로다. 이 길을 따라 페르시아와 그레코-로만형(Greco-Roman Style) 문화가 한반도에 전해졌다. 한국에서 발견된 사산 왕조(Sasanian Dynasty) 문양, 로만 글라스, 금속 장신구 등은 오아시스로를 통한 문화 교류를 시사한다. 해로(Maritime Route)는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거쳐 한반도에 이르는 교역로다. 해로를 통해서는 주로 동남아시아와 인도, 페르시아 등지의 문물이 전해졌다. 이번 연재부터는 필자가 직접 답사해 촬영한 실크로드 3대 교역로의 수많은 보물을 소개한다. 그 가운데 첫 번째로 한반도 금관 특히 신라 수목형(樹木型) 금관과 유사한 사르마티안(Sarmatian) 황금 왕관에 대해 알아 본다.
△ 사르마티안(Sarmatian) 왕관이란?
이 황금 왕관은 1864년 러시아 로스토프(Rostov)주 노보체르카스크(Novocherkassk) 변두리에서 수도관 건설 작업 중 우연히 발견된 호흐라치(Khokhlach) 쿠르간의 출토품이다. 이 고분은 크게 도굴되었음에도 다행히 많은 유물이 남아 있었고, 이 왕관은 당시 고분 주변 은신처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회수하였다. 이 왕관은 왕관 정면에 새겨진 그리스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의 흉상이 유난히 독특했지만, 훨씬 세계적인 이목을 끈 것은 아프가니스탄 금관과 신라 금관의 동일 계열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즉 세 금관 모두 수목형 왕관으로 성수(聖樹), 새와 사슴 숭배 신앙 등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한편 특이하게도 왕관의 소유자가 앉았던 것으로 보이는 나무 의자 조각과 장식물도 출토되었다. 이 왕관의 제작 연대는 BC 1세기에서 AD 1세기경이며, 사르마티안 부족의 통치자로 여제사장을 겸했던 여성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어 ‘사르마티안(Sarmatian) 왕관(Diadem)’이라 불린다.
△ 사르마티안족은 누구인가?
사르마티안족은 BC 5세기부터 AD 4세기까지 유라시아에서 활약했던 고대 이란계 민족이다.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사르마티안인은 BC 6세기 서쪽으로 이주했고 스키타이인들과 대립했다. 사르마티안인은 불의 신을 숭배한다는 점에서 스키타이인과 달랐고, 서기 1세기경 다뉴브(Danube)강과 볼가(Volga)강 지역 및 흑해와 카스피해(Caspian Sea) 연안에서 활약했다. AD 1세기 게르만족과 연합해 로마 제국을 잠식하기도 했으나 4세기 훈족(Huns)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알란인(Alans)은 사르마티안계 유목민족으로 알려져 있는데 중세 초기까지 북 코카서스(Caucasus)에서 살아 남았다.
△ 왕관의 세부 장식과 그 의미
황금 왕관은 쭉 펼치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경첩으로 연결되어 있다. 금관의 파손된 부분을 복원하여 관찰하면, 관대(冠帶) 위 중앙의 성수를 중심으로 두 마리의 사슴이 마주 보는 모습을 하고 있고, 그 옆에서 염소와 사슴으로 여겨지는 신성한 동물이 성수(聖樹)를 향해 나아가는 제의적인 장면이 연출되어 있다. 즉 가운데 생명의 나무를 중심으로 좌우의 신성한 동물 세 마리가 나란히 성수를 향해 행진하는 듯하다. 그리고 신성한 동물 뒤 좌우측 맨 가장자리에는 새 두 마리씩 총 네 마리가 성수를 향해 앉아 있다. 새 부리에는 보요용 고리가 있는데 성수에도 이러한 고리가 달려 있다. 한편 관대의 정면 중앙에는 자수정으로 조각한 여성의 흉상이 있어 이 왕관이 사르마티안 귀족 여성의 소유였음을 나타낸다. 흉상의 주인공은 사랑과 다산의 여신 아프로디테인데 고대 그리스나 로마 여성들이 입던 소매가 없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웃옷인 튜닉(tunic)을 입고 있고, 여신의 머리 위에는 횡타원형의 석류석을 감입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 여인의 고전적인 머리 모양이다. 여인의 머리 카락은 황금 왕관 뒤에 숨겨져 있고, 두 개의 땋은 머리가 어깨 너머로 떨어져 있다. 이는 장인이 그리스 보석 세공에 능숙한 전문가였음을 나타낸다. 또 흉상 주위 좌우에도 석류석이 상감되어 있으며 그 옆에는 독수리 형상의 맹금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테두리 전체는 훼손된 곳이 많지만 전체가 황금 구슬과 진주 그리고 작은 명판으로 장식되어 있다. 테두리 하단은 장미 꽃잎 무늬가 있는 펜던트가 여럿 매달려 있고, 왕관 소유자가 움직일 때마다 멜로디한 소리가 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 왕관 외 다른 고분 출토품
왕관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포도 나무 덩굴에는 플루트를 연주하는 작은 큐피드 상이 핀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또 고분에서 왕관 외에 늑대를 연상시키는 상상의 동물이 독수리 머리 그리핀을 공격하는 황금 목걸이, 상상의 동물이 상하 2열을 이룬 황금 팔찌, 제의 때 사용되었을 향료와 독성 물질을 담는 황금 향통(香桶)과 동물 모양의 황금 컵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무기나 말 장비 같은 남성용 부장품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묘주는 여성임이 확실하다.
△ 왕관의 미스터리: 월지인이 이주해 만들었을까?
이 왕관은 제례 의식에 사용되었으며, 다산 숭배와도 관련이 있음이 분명하다. 또 아프로디테 흉상의 정교한 제작 기법으로 보아 이 왕관을 제작한 장인은 분명히 헬레니즘 특히 그리스 보석 세공 기술과 사르마티안 유목민의 샤마니즘에 대한 지식을 모두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독특한 작품은 아마도 그리스 보석 세공사가 지위가 매우 높은 사르마티안 귀족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 고분 출토품의 또 다른 독특한 특징인 ‘다색 상감 스타일(polychrome-inlay style)’은 왕관과 제작 시기가 BC 1세기에서 AD 1세기경으로 유사한 아프가니스탄 틸랴 테페(Tillya Tepe)의 황금 유물에서도 대거 발견되었다. 이는 사르마티안족과 알란인(Alans) 그리고 중앙아시아 월지인(月氏人)의 연관성(이주) 문제를 다시금 부각시킨다. 황금 유물의 다색 상감 장식에 대한 고찰은 사르마티안-아프가니스탄-한반도 금관으로 이어지는 수목(樹木)형 금관의 전파 루트와 함께 고대 한반도의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전홍철 우석대 경영학부(예술경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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