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一柱門), 인도 건축에서 온 불교 해탈의 상징
완주 송광사와 위봉사. 두 사찰을 비롯한 한국의 모든 불교 사원 입구에는 신성한 공간으로의 진입 그리고 불교의 해탈을 상징하는 산문(山門)이 있다. 이 출입문이 바로 일주문(一柱門)이다. 일주문이란 말은 기둥이 네 개인 가옥과 달리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은 데서 생겨난 말인데, 이는 고대 인도 건축의 아치형 출입문이었던 토라나(Torana)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대 인도에서 토라나는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의 종교 건축물에서 의식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도 영향을 미쳐 중국의 산문(山門), 일본 신사(神社)의 토리이(鳥居), 베트남의 탐꽌(Tam quan), 태국의 대추천(大秋千, Giant Swing)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한국 사찰의 일주문과 향교 출입문인 홍살문도 바로 인도 토라나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런데 고대 인도의 토라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중인도 산치(Sanchi)와 바르후트(Bharhut) 그리고 남인도 파니기리(Phanigiri)로 떠나야 한다.
△ 인도 스투파의 전형, 산치대탑(Sanchi Great Stupa)
인도어인 스투파(Stupa)는 한자로 번역하면 ‘탑파(塔婆)’이고, 이것이 오늘날의 탑(塔)이 되었다. 원래 고대 인도에서 스투파는 유력 인사의 유골이나 유품을 안치한 무덤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불교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전파되면서 탑의 형태로 변모되고, 점차 목조 건축의 영향을 받아 다층 구조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편 산치 스투파는 인도 마디야 프라데시(Madhya Pradesh) 주 의 라이센(Raisen) 마을 언덕 위에 있는 불교 유적지로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구조물 중 하나이다. 기원전 3세기 마우리아(Mauryan) 제국의 아쇼카(Ashoka) 왕이 불사리를 모시기 위해 지은 것이다. 초기에는 단순한 반구형 벽돌 구조물이었지만, 기원전 1세기경 정교하게 조각된 4개의 토라나와 난간이 추가되었다. 토라나 문은 석재로 만들어졌지만, 목재 건축처럼 조각되었다. 토라나에는 부처님 일대기 장면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일상 모습도 새겨졌다. 또한 석조 조각에서 부처님은 아니코니즘(aniconism) 즉 우상 금기 때문에 인체로 묘사되지 않고, 말, 발자국, 보리수 등의 상징물로 표현되었다. 인체만으로는 부처님의 위대함을 다 표현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역 주민들은 영적인 공덕을 얻기 위해 돈을 기부하여 스투파를 장식하였다. 기부자들은 돈을 기부한 댓가로 부처님의 삶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선택해 조각에 새기고 본인의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있었다. 스투파에 특정 에피소드가 무작위로 반복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북문 횡량에 새겨진 유명한 항마성도(降魔成道) 부조를 보기로 하자. 횡량(橫樑) 좌우에 나선형 문양이 새겨져 있어 마치 두루마리 그림을 펼쳐보는 듯하다. 먼저 왼쪽 가장자리에는 보리수 아래의 빈 대좌로 부처를 상징하였다. 가운데는 악마인 마라와 그의 딸들이 등장하여 부처님을 유혹한다. 오른쪽 장면은 악마의 군대가 패배하여 도망가는 모습이다.
△ 중인도 바르후트(Bharhut) 스투파
1873년 알렉산더 커닝햄(Alexander Cunningham)이 발굴한 바르후트(Bharhut)는 중인도 마디야 프라데시(Madhya Pradesh) 주의 사트나(Satna) 지구에 있는 마을이다. 바르후트 패널(panel)의 독특한 점은 각 조각판에 브라미(Brahmi) 문자로 무엇을 묘사하고 있는지 명시하고 있는 점이다. 바르후트 조각은 아쇼카 왕조 이후, 산치 2호 스투파 이전의 것으로 인도 불교 예술의 가장 초기 사례를 보여준다. 바르흐투 스투파는 산치와 유사한 배열로 돌 난간과 4개의 토라나로 둘러싸여 있다. 난간은 대부분 복구됐으나 토라나 4개 중 동문만 남아 있다. 토라나에 7개의 카로스티(Kharosthi) 문자 장인 마크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조각가들이 인도-그리스 왕국의 핵심 지역인 간다라 출신임을 알 수 있다. 이 장인들은 헬레니즘 기법과 양식을 토라나 제작에 도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면 동문 횡량(橫樑)에는 무엇이 그려져 있을까? 부처님을 상징하는 중앙의 대좌를 향해 동물들이 귀의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사자 두 마리, 왼쪽에 그리핀 한 마리 그리고 인간 머리를 한 사자(스핑크스 또는 만티코어) 한 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아래 횃돌에는 네 마리의 코끼리와 두 명의 인간 신도들이 부처님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다. 횃돌 사이에는 기둥들이 있는데, 그 중 일부에는 인도 인물상이 장식되어 있다. 이 기둥 기단에서 전체 8개 중 5개에는 카로슈티 조각가의 마크가 발견되었다. 위쪽과 중간 횃돌 사이에도 이런 기둥들이 있었겠지만 현재는 유실된 상태다.
△ 21세기의 신발견, 남인도 파니기리(Phanigiri) 스투파,
스투파로 들어가는 출입문인 토라나는 기원전에 만든 산치와 바르후트 스투파에서만 확인할 수 있고, 기원후 남인도 스투파 유적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21세기에 새롭게 조사된 텔랑가나(Telangana) 파니기리의 스투파 유적에서 토라나 부재가 발견되어 주목된다. 이것으로 기원후 남인도 스투파에도 토라나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파니기리 스투파의 토라나 양끝에는 전설 속의 동물 마카라가 사자, 코끼리 등과 결합하여 탄생한 상상 속의 동물로 장식되었다. 또 긴 문 위에는 모두 석가모니의 인생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석가모니는 무우수(無憂樹) 나뭇가지를 짚고 선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 먼저 석가모니의 탄생 장면이다. 하늘에는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뻐하는 천인들이 음악을 연주한다. 샤카족의 수호신도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하고 있다. 성장한 석가모니는 성 밖으로 나가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보게 된다. 석가모니가 출가의 뜻을 밝히자 궁의 여인들이 슬퍼한다.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에게 사천왕이 다가와 발우를 공양한다. 석가모니가 사르나트의 녹야원에서 5명의 수행자들에게 첫 설법을 하는 초전법륜 장면. 대좌 앞의 사슴이 바로 그 장면을 상징한다. 토라나의 앞부분은 석가모니의 인생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된다. 한편 뒷면의 이야기는 다른 순서로 진행된다. 여기에는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 왕자 시절의 싯다르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석가모니가 나가왕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코끼리를 타고 가는 모습 등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스투파를 경배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 일주문, 고대 인도 건축과의 깊은 연관성
토라나는 고대 인도 건축에서 유래한 장식적인 문 또는 출입구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원의 경계를 표시하고, 신성한 영역으로의 진입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토라나는 상징적인 의미와 더불어 신성하고 경외할 만한 입구를 표현하며, 때로는 축제나 왕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였다. 송광사와 위봉사의 일주문을 통해 우리는 고대 인도 건축의 영향이 아시아 전역에 미친 흔적과 함께 불교 해탈의 상징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전홍철 우석대 경영학부(예술경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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