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연원할까? 자연과 달리 도시는 사람들이 창조한 인공 세계다. 아름다운 공간이 많으면 아름다운 도시가 된다. 뉴욕, 런던, 파리 등 유명 도시는 저마다 도시를 대표할 아름다운 공간이자 핫플레이스로 예술관을 품고 있다. 대한민국 충남의 젊은 도시 천안도 담장 없는 거리의 예술관이 있다. 여느 도시의 평범한 예술관이 아니다. 야구로 치면 오타니 같은 슈퍼스타의 플레이가 눈 앞에서 펼쳐지듯 세계적 작가의 조각품이 즐비하다. 바로 신세계 백화점 천안아산점 일대의 조각광장이다. 아라리오 조각광장은 미슐랭 그린가이드에도 소개된 명소다. BTS 리더 아르엠도 조각광장의 작품 인증샷을 찍어 화제가 됐다.
◇세계적 조각품들의 향연장=충남 천안시 동남구 신부동 만남로 43에 위치한 아라리오 조각광장은 천안의 향토기업인 (주)아라리오가 조성했다. 1978년 버스터미널 사업으로 출발한 아라리오는 2010년부터 신세계와 경영제휴해 신세계백화점 천안아산점을 운영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천안아산점과 고속버스 및 시외버스 터미널의 장소성을 상징하는 조각품으로는 용도를 다한 자동차의 차축 999개를 탑처럼 쌓아 올린 '수백만 마일-머나먼 여정'이 있다. 아르망 페르난데스의 작품 '수백만 마일'은 1989년부터 조각광장을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수백만 마일'과 지척에는 국내외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장기간 소개하며 아트 도시의 면모를 더하고 있는 아라리오 갤러리가 있다. 갤러리 입구에서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찬가'가 반긴다. 어린이용 해부학세트 모형을 확대한 '찬가'는 죽음을 잊고 지내는 현대인들에게 몸의 물질성을 은유하며 삶의 유한함을 일러준다. 아라리오 조각광장에는 1950년대 영국에서 사용했던 모금함을 부풀려 놓은 듯한 작품 '채러티'도 있다. '채러티'도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다. 데미안 허스트는 1990년대 영국 현대 예술 조류에 속하는 예술가 중 가장 유명하며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현대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예술의 대중화를 이끌어 낸 선구자 키스 해링의 '줄리아'는 조각광장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아기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으로 좌, 우 각도를 조금만 달리해도 다양한 모습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무제(피규어 온 베이비)'도 키스 해링의 작품. 키스 해링은 탄생과 죽음, 사랑, 전쟁과 평화 등의 우주관을 바탕으로 작품활동을 통해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표현하고 인종차별 반대, 에이즈 교육, 동성애자 인권운동 등의 사회문제를 천착하고 있다.
인도가정에서 흔히 쓰이는 수천 개의 헌 놋그릇으로 핵폭탄의 위력을 상징하는 버섯구름을 형상화한 수보드 굽타의 '통제선'도 조각광장의 인기 스타이다. 2013년 6월에 설치된 일본 작가 코헤이 나와의 '매니폴드'는 높이 15m, 무게 약 27톤으로 설치부터 제작까지 무려 3년의 시간이 걸렸다. 코헤이 나와는 일본의 가장 파워풀한 현대미술가로 2011년 아라리오갤러리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원색의 18m 꽃송이 '꽃의 마음'=백색의 부드러운 윤곽선을 지닌 김인배의 조각상 '사랑해'는 조각과 드로잉의 경계를 허문 색다른 감흥을 선사한다. 사람인 듯 하나 얼굴이 존재하지 않으며 오른손에 쥔 뭉친 선은 작가만의 특색을 보여준다. 조각광장에 있는 김인배의 또 다른 작품 '늑대가 와도 무섭지 않아'는 재미있는 아이디어와 재현 가능성에 대한 고민 속에서 차원의 경계를 설정한 작가의 발상이 돋보인다. 2007년 유토로 제작한 조각 작품을 확대해 제작한 것으로 두려움이 없는 강인한 돼지를 표현하며 아라리오를 수호하는 상징으로도 여겨진다.
18m의 바늘모양 스테인레스 기둥에 원색의 꽃송이 7개부를 부착시킨 최정화의 작품 '꽃의 마음'은 2007년 야우리 백화점의 지원으로 탄생했다. 금속과 꽃이라는 상반된 낯선 소재를 배치, 거대한 꽃송이들의 이미지는 권태로운 일상과 공허함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조각광장에는 좌충우돌하지만 고독한 전사의 회한도 간직한 돈키호테도 만날 수 있다. 성동훈의 '무식한 소-돈키호테'는 고철 조각들로 말탄 돈키호테상의 꼬장꼬장한 풍모를 빚어낸 연작 중 하나로 시대에 대한 저항의식을 보여준다. 브래드 하우의 '빗 속의 댄스'는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인 관계를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조각으로 형상화했다. 인간과 물질, 과거와 현재, 색과 형태 등을 주제로 존재의 관계적 사유를 떠 올리게하는 노부코 와타나베의 작품 '블루 앤드 화이트, 화이트 앤드 레드'는 종이 형태의 작품으로 2.5m 크기의 스테인리스로 제작했다. 2017년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에서 처음 선보인 뒤 2018년 아라리오 뮤지엄 탑동시네마에 잠시 전시했다가 현재 장소인 아라리오 조각공원으로 옮겨 설치했다.
새 봄 조각광장의 예술작품들을 더욱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아라리오는 최근 '매니폴드'와 '꽃의 마음' 두 작품의 물청소를 실시했다. 물과 중성세제를 섞은 후 저압 세척기와 부드러운 천을 이용해 작품 표면의 먼지와 이물질을 제거했다. "물에서 갓 나온 아이마냥 말간 얼굴로 웃으며/ 영혼 속 별들이 부서질 때까지 안아"(최백규 시, '백야' 중) 줄 조각작품들을 만나러 가자. 아라리오 조각광장으로. 대전일보=윤평호 기자
<박스> 빛과 어둠 사이 피어난 색의 향연…아라리오갤러리 천안, 씨 킴 17번째 개인전 '레인보우’
작가 씨 킴(CI Kim)의 17번째 개인전 '레인보우(Rainbow)'가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열리고 있다.
씨 킴은 이번 전시에서 회화부터 조각, 드로잉, 설치작품, 사진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장르의 작품 170여점을 선보인다. 개인전으로선 규모가 큰 전시다.
씨 킴은 전시 주제인 무지개에 대해 "어린 시절 하늘에서 봤던 무지개를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며 "비가 그치고 떠오른 태양 뒤로 펼쳐진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라고 설명했다.
씨 킴은 매일 아침 빈 캔버스, 카펫, 빈 상자 등을 마주하고 그 위에 색을 얹는 작업을 해왔다. 일상의 사물이나 사람을 묘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색을 흘려 보내며 그것의 응집과 확산, 건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갈라짐 등을 관찰했다.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그가 빛과 어둠 사이에 피어난 색들의 향연에 매료되어 그 속에서 자신의 회화적 질서를 찾으려 한 수많은 노력과 실험의 결과물이다.
과일상자나 카탈로그, 잡지 화보, 신문지, 편지 봉투 등 일상 속 마주친 사물들에 그린 그림과 비 오는 차 안에서 창 밖을 아날로그 필름으로 찍은 미공개 사진까지 그의 폭 넓은 예술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이번 전시회는 내년 2월 9일까지 이어진다.
대전일보=박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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