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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 탐방’] 그리스에서 완주까지(3)

비파, 활에서 태어난 악기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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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松廣寺) 주악비천도(奏樂飛天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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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위 류트 Vina를 연주하는 Sarasvati(간다라 출토, AD 2세기)

악기가 문화의 혁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그런 악기가 있다. 바로 비파(琵琶)다. 완주 송광사 대웅전의 천장에 그려진 주악비천도(奏樂飛天圖)에는 동서양의 문명 교류를 드러냄과 동시에 동아시아 음악문화의 패러다임을 혁명적으로 바꾼 악기인 비파가 있다. 사천왕(四天王) 중 다문천왕(多聞天王)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연주하고 있는 악기도 비파다. 동한(東漢:25-220) 시기의 서적 『석명(釋名)』에는 “비파는 본래 호중 즉 외국에서 태어났고, 말 위에서 연주했다(琵琶本出於胡中, 馬上所鼓也)”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 비파는 외래 악기이고, 원래 말을 타고 연주했었다. 근원을 좀더 추적하면 비파는 활에서 진화한 악기이다. 말의 대퇴골로 울림통을 만들고 말 내장과 힘줄로 현을 만들었던 노마드(nomad) 악기인 것이다. 또 비파라는 말은 페르시아 류트 ‘Barbat’을 한자로 옮기면서 생겨난 이름인데, 손을 앞으로 내밀어 타는 것을 ‘비(琵:枇)’, 손을 안으로 끌어당기면서 연주하는 것을 ‘파(琶:杷)’로 번역했다. 이처럼 한자에서 확인되듯이 비파는 서역에서 건너온 류트(lute) 계열 악기이다. 그러면 비파는 서아시아에서 어떻게 동아시아 완주까지 왔을까? 또 비파가 동아시아 음악문화에서 어떤 혁명을 일으켰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 서북부와 중앙아시아 간다라를 거쳐 메소포타미아 방향으로 실크로드 여행을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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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활 (활에서 태어난 악기).

△ 활, 인류 최초의 현악기

인류 최초의 현악기는 활에서 유래되었다. 기원전 13,000년 전 프랑스 남서부의 트루아 프레르(Trois Frères) 동굴 벽화에 “들소를 닮은 모습으로 위장한 사냥꾼이 짐승을 몰면서 활을 연주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사냥용 활이 단현 악기로 사용된 가장 이른 음악용 활이다. 음악에 사용된 활은 소리를 증폭시키기 위해 울림통을 달며 다양한 악기로 진화한다. 비파, 기타, 바이올린과 같은 류트(lute)류 현악기 뿐만 아니라 공후(箜篌), 하프, 쟁(箏), 거문고, 가야금과 같은 지터(zither)류 악기도 뮤지컬 활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리스 류트인 판두라(pandura)는 ‘작은 활’을 의미하는 수메르(sumer)어인 판투르(pantur)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비파는 활에서 파생된 류트계 악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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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다문천왕의 사현곡경비파.

△ 송광사 비파와 동일한 정창원 곡경비파 

일본의 보물 창고 정창원(正倉院)에는 세 종류의 비파 즉 완함(阮咸), 오현비파, 사현비파가 보관되어 있다. 먼저 완함은 중국 전통 악기에서 현의 수가 변화하여 만들어진 악기로 진비파(秦琵琶)라고도 불린다. 두 번째는 다섯 줄의 오현비파인데 흔히 나전자단오현비파(螺鈿紫檀五弦琵琶)라 한다. 이 비파는 인도가 원산이며 북위(北魏:386-534) 무렵에 중국으로 전해졌다. 낙타 위 기악인(伎樂人)이 연주하고 있는 악기는 비파인데 직경이 아닌 곡경이다. 세 번째 사현비파가 바로 송광사 비파와 동일한 유형이다. 이 사현비파는 풍소방염나전조비파(楓蘇芳染螺鈿槽琵琶)라고 하는데 현이 네 줄이고 목 부분이 굽어 있으며 배 모양을 하고 있어 사현곡경이형(四弦曲頸梨型) 비파 혹은 곡경비파라 한다. 또 당(唐)비파라고도 한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비파에 그려져 있는 코끼리 위의 악무단 즉 ‘기상주악도(騎象奏樂圖)’다. 높은 모자를 쓰고 북을 치고 있는 인물은 심목고비(深目高鼻)의 서역인이 분명하다. 이는 1959년 서안 당나라 무덤에서 출토된 당삼채 낙타 인물용인 삼채유도낙타재악용(三彩釉陶駱駝載樂俑)을 연상시킨다. 또 연이어 물가로 날아가는 새 떼의 뒤편에는 붉은 태양이 빛을 발한다. 이러한 산수 묘사는 극히 드문 것으로 8세기 당대 회화 수준을 보여주는 명작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이 비파는 중국 당나라에서 제작되어 해외 교역이나 견당(遣唐) 사신을 통해 일본으로 전해진 물건일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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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소방염나전조비파(楓蘇芳染螺鈿槽琵琶), 정창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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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소방염나전조비파의 기상주악도(騎象奏樂圖)

△ 류트(lute)의 출현과 전파 

비파의 원류를 파악하려면 류트가 어디에서 최초 출현했고, 어떻게 전파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류트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관점이 있는데, 서아시아설과 그리스설이 대표적 학설이다. 고고학 자료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류트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전 3,000년기에 출현했다. 이 류트는 목이 긴 장경 류트인데 셈족(Semitic)과의 관련성으로 보아 시리아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장경 류트는 기원전 2,000년기에 서아시아에서 이집트로 전해져 배 모양 즉 리형(梨型) 류트가 분화하여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발전한다. 그 후 알렉산더대왕(BC 356-323)의 동방 원정을 계기로 간다라 부근으로 전해지게 된다. 직경 류트는 1-2세기 쿠샨(Kushan) 왕조(AD 30-375)의 간다라에서 드디어 목이 굽은 곡경 류트로 바뀐다. 이것이 사현곡경 송광사 비파의 원초적 모습이다. 간다라에서 처음 출현한 곡경비파는 4세기 이후 거꾸로 페르시아 사산조에 전해져 크게 유행하게 되며, 5세기경에는 서역 호탄(Khotan)에서 중국 내륙으로 유입되고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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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 아래 류트 연주 악단 (Tabaristan 출토, 사산조 AD 7-8세기)
 

【보충 해설】 전문가 길잡이

“호탄(Khotan)에서 출토된 사현 류트 기악 테라코타는 연대가 AD 3세기 또는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사현 류트는 가장 초기의 서양 류트 중 하나로 중국 비파와 매우 유사하다. 사진을 보면, 기악 테라코타가 들고 있는 류트는 목 부분이 직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곡경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조각 기법의 한계 때문에 직경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호탄에서 둔황 지역에 이르기까지 비파류의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사현 류트가 호탄 지역을 통해 중국에 유입되었음을 말해주는 확실한 증거들이라 할 수 있다.(和田出土的手持四弦琵琶的伎乐陶猴可以追溯到三世纪,甚至更早。四弦琵琶是西方最早的琵琶之一,与中国琵琶非常相似。从图像上看,这个伎乐陶猴怀抱的琵琶颈似乎是直的,但实际上四弦琵琶的颈是弯的,有可能因为雕刻技术的限制表现为直的。从和田到敦煌地区出土了大量琵琶类型的文物,这些都充分证明了四弦琵琶琵琶通过和田地区传入中国的.)” 따이징(代静, 沧州师范学院,编导教研室主任,講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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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악 소조상(Khotan, Yotkan 출토, AD 1∼4세기)

 

△ 제례(祭禮) 악무를 변화시킨 비파 

예(禮)와 악(樂)으로써 임금과 신하, 백성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구현하고자 했던 농경 정착민의 유교 국가 중국. 전통 시기 중국에서 가장 중시되었던 악기는 ‘사직(社稷) 악기’라 불렸던 편종(編鐘)과 편경(編磬)이었다. 이 악기는 종묘제례용으로 왕이나 제후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무거운 악기였고 악무 역시 장중했다. 반면 초원 유목문화를 상징하는 활에서 진화한 비파와 같은 가벼운 현악기는 소그드 상인의 황금기였던 기원후 4-8세기 중국에 전해져 소그드춤 ‘호선무(胡旋舞)’와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놀랍게도 당 현종(玄宗:685-762)은 본인이 작곡가이자 비파 연주자였으며, 그의 비파 연주에 맞추어 춤추었던 경국지색(傾國之色) 양귀비(楊貴妃)와 소그드인으로 안사의 난(安史之亂)을 일으킨 안록산(安祿山)은 당대 최고 호선무 무용수였다. 비파와 서역 악무가 장안(長安) 궁정 뿐만 아니라 민간에 유입되며 중국 음악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렇게 활에서 태어난 혁명적인 악기 비파가 지금은 송광사에서 우리에게 천상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전홍철 우석대 경영학부(예술경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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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철 우석대 경영학부(예술경영) 교수
 

 

【심층 해설】 전문가 길잡이

“비파는 중국의 어떤 악기보다 빠르고 경쾌한 음악을 잘 연주할 수 있는 악기였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자국음악보다 외국음악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비파음악은 젊은이들이 환호하는 악기였습니다. 비파는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에 들어온 악기로 당시로서는 첨단을 걷는 악기였으며 단숨에 중국인들의 마음을 휘어잡은 악기였습니다. 비파음악은 바로 호악과 중국음악의 교류와 혼융을 결과로 태어난 새로운 음악이었습니다.” 전인평(중앙대 명예교수/아시아음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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