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전주시청 현관에 들어서면 천장까지 빼곡히 들어차 있는 책을 보면 왠지 압도 당하는 기분이다. 그런데 카페와 어우러진 분위기, 아늑한 조명에서 편안함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랑방 역할도 한다.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색깔있는 동네 책방으로 초대된 느낌의 이 공간은 경직된 공직 사회 이미지도 한결 부드럽게 해준다. 무엇보다 잊혀진 우리의 추억과 감성을 자극한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이처럼 우리 동네에 맘만 먹으면 찾을 수 있는 작고 소중한 책방들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심지어 전주 덕진 연못 한 가운데는 물론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 공원 근처에 주로 자리잡고 있다. 고사 위기에 놓인 출판업과 달리 특유의 존재감을 뽐내는 책방들이 시민들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동안 디지털 기기에 빼앗겼던 책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독서 환경이 개선되는 것에 비해 책을 읽는 사람은 거꾸로 줄어들면서 아이러니한 생각이 든다.
한때 전주 상권의 노른자위로 불린 동서관통로 사거리가 속칭 '민중서관 사거리' 로 유명세를 더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이 서점이 그곳에 터를 잡고 요즘 말로 '핫 플레이스' 로 인기를 끌면서 연인 약속 장소의 대명사가 됐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동안 책과 잡지를 들춰 보거나 추위와 무더위를 피해 서점에 들르곤 했다. 이렇게 애틋한 추억을 간직한 이 곳도 서점가 퇴조로 인해 자취를 감춘 지 꽤 오래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서점도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대규모 자본이나 유통망에 얽매이지 않고 주인의 취향대로 꾸며진 '독립서점' 이 MZ세대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고객이 추천하고 구하기 힘든 책과 이색 잡지, SF소설과 같은 독립 출판물을 판매하며 북 콘서트, 전시회 같은 행사도 열린다. 좀처럼 찾지 않는 서점이 개성 만점의 서비스를 통해 1년새 70곳이 생겨 났다고 한다.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만을 거부한 채 서점은 사람이 힐링하고 영감을 얻는 곳으로 진화 중이다. 곳곳의 동네 책방도 이런 시대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 디지털 속도가 너무 빠르고 광범위하게 전개되면서 생활 환경 또한 간편하고 편리한 것만 찾게 됐다. 과거 독서를 통해 세상의 안목을 키우고 지식을 습득한 것에 비하면 지금은 인터넷 의존도가 압도적이다. 이처럼 각박한 세태 속에서 자투리 시간이라도 활용해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개권유익(開券有益)이라고 해서 책을 펼치기만 해도 유익하다는 말이 있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동네 책방이 늘어나는 데도 굳이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인터넷을 선호한다.
우리나라 성인 60%가 일 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디지털 시대 굳이 책을 통하지 않더라도 지식과 정보를 얻는 루트는 다양해졌다. 과거에는 서점을 비롯해 도서관, 독서 서클 모임 등 고전 방식의 제한된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것들이 스마트폰 등장으로 역할이 축소됐다. 디지털 혁명이 우리의 일상을 폭넓게 지배한다 해도 추억의 아날로그 감성만은 쉽게 만족시킬 순 없다. 빛바랜 책 갈피 속에서 발견한 단풍잎을 보며 켜켜이 쌓인 그 시절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고, 아내에게 썼던 20대 연애 편지 묶음을 통해 새삼 느껴지는 뜨거운 감정도 인터넷에선 불가능하다. 세상이 편리한 디지털 세계로 빠져 들수록 문득 생각나는 건 힘들고 궁핍했던 시절의 간절함이다. 그 때는 책 속에 만물의 우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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