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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비와 차우셰스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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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매우 큰 사건사고 등을 날짜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들면, 3∙15 부정선거, 6∙3사태, 8∙18 도끼만행사건 하는 식으로 말이다. 가깝게는 1979년 발생한 10∙26과 12∙12사태를 꼽을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인 박정희의 갑작스런 서거와 그를 추종했던 엘리트 정치장교들의 군사반란이 바로 뒤를 이었다. 그 이듬해인 1980년 잠깐 서울의 봄이 오는듯 했으나, 이는 권력의 속성을 모르는 순진한 착각이었다. 곧바로 이어진 5∙17과 5∙18은 어쩌면 시간과 장소가 정해지지 않았을뿐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12∙12사태때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정치장교들은 어떻게든 권력을 이어가고자 했으나 민초들은 더 이상 순치된 백성이 아니었다. 상식과 순리를 거슬렀을 경우 엄청난 저항과 유혈사태는 불을보듯 뻔했다. 박정희 정권이 몰락한 1979년 중동에서도 엄청난 소용돌이가 일었다. 이란에 군림했던 마지막 페르시아 제국 팔라비 왕조가 그해 2월 11일 이슬람 혁명으로 붕괴된 것이다.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 혁명으로 인해 2500년 전통의 군주제는 폐지되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됐다. 이슬람 혁명은 인간다운 삶의 질 측면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실패한 혁명으로 볼 수도 있는데, 어쨋든 도도히 흐르는 민심과 맞서 군림했을때 그 끝은 파멸임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10∙26 하면 사람들은 흔히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서거(1979년)를 떠올리는데, 사실은 그로부터 꼭 70년전인 1909년 10월 26일 동북아 정세에 중대한 분수령이 됐던 일대 사건이 있었다. 바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하얼빈 의거다. 공교롭게 10월 26일 같은 날이다. 지난 3일 저녁 사람들은 계엄령 선포 소식에 자신의 눈과 귀를 의심했다. 후진국에서나 일어나는 일이 전세계 10대 강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진다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KBS 라디오에서는 정규방송 대신 행진곡과 함께 박종세 아나운서의 떨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금조 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 소위 혁명공약의 발표였다. 당연히 계엄령이 뒤따랐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는 하지만 오늘날 또다시 계엄령이 선포되면 유혈사태는 불을보듯 뻔하고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지금까지 총 16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늘 유혈사태가 이어졌다. 루마니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에게 총칼을 겨누다가 끝내 처참한 말로를 겪게된 일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 도도히 흐르는 역사적 물줄기를 거스르면 그 끝은 결국 파멸 뿐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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