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을 들먹일때 흔히 인용되는 것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말년에 남겼다는 훈요십조(訓要十條)이다. 왕건은 이 훈요십조에서 ‘금강이남지역 사람들은 역모를 꾸밀 우려가 있으니 벼슬을 주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금강이남, 즉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차별화는 여기서 부터 비롯 됐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훈요십조에는 굳이 ‘금강이남 운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충신과 간신을 가려야 한다는 등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충고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왕건이 후손들에게 왕권을 강화시켜 주기 위해 내린 일종의 지침일 뿐이다. 그런데도 훗날 통치자들이 이를 왜곡하여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등 국론분열의 씨앗으로 키워 온 점이 더 많다.
연전에 한 학자가 이 훈요십조에 대해 지금까지와 다른 주장을 내놓은 일도 있다. 왕건이 중용하지 말라고 한 지역은 차령산맥과 금강 사이이며 그나마 그 후에는 그 지역 출신들도 중용했다는 것이다. ‘공주강외’라는 표현가운데 외(外)의 해석을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자의로 왜곡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역사속의 전라도’란 책을 펴낸 공주대 이해준 교수가 이런 주장을 뒷받침 해 주목을 끌고 있다. 그는 ‘훈요십조’가 왕건 당시가 아니라 후세인 현종때 발견된 점을 들어 이는 후대의 정치적 대립의 산물일수도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교수는 이밖에도 한반도 전체의 90%를 차지하는 고인돌, 완도지역에 장보고가 세운 해상왕국 청해진(淸海鎭), 국보로 지정된 고려청자, 동학농민혁명의 진원지이자 삼별초의 마지막 거점인 전라도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와 문화등을 조명하고 있다.
우리 지역 출신이 아니면서도 ‘전라도를 바로 보기 위한 역사산책’이란 부제를 달아 학계에선 드물게 전라도를 집중 탐구한 충청도 출신 역사학자의 노력이 우리지역 문화유산과 자존심을 되찾는데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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