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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대통령의 의자

구세대들의 푸념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나이 50대에 접어들어 집안의 가장으로, 직장의 상사로, 그리고 사회의 리더로 자리잡고 있는 그들의 푸념이, 아니 불만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도대체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혹은 직장 상사로서의 권위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50대들의 하나같은 불만이다.

 

일면, 그들의 푸념이 이해가 된다. 부모의 꾸지람을 듣기 싫다는 이유로 부모를 폭행하는 자식, 교사의 훈계에 앙심을 품고 경찰서에 고발해버리는 학생들의 뉴스가 떠들썩하게 들릴 때마다 기성세대의 '사라져버린 권위'가 안타깝게 여겨진다. '애비노릇도, 선생노릇도 못하겠다'는 50대들의 불만이 남의 일로만 생각되지는 않는다.

 

혹자는 '어른의 권위'가 무시되는 오늘날의 현상을 무분별한 서구화의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서구의 '자유분방함'이 도를 넘어 동양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무너뜨리면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서구의 '무질서'가 동양의 '질서'를 뒤흔들면서 '부모를, 스승을 존중하는' 미덕이 사라져버렸다고 이야기한다.

 

서구사회를 들여다보면 부모 자식간의 관계, 선·후배 사이의 관계,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 할 것 없이 모두 '질서'가 없어 보인다. 특히 미국의 경우, 종교적·인종적 다양성과 자유주의적인 분권적 정치구조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조차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이런 '무질서'를 견뎌낼 수 있는 내성(耐性)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관계에 대해 '권위주의'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자발적인 조정과 합의의 과정을 존중하는 그들의 문화적 풍토는 '무질서'를 '다원적 민주주의'로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기간 중에 참석했던 한 연찬회는 '과연 권위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때 식장에서는 클린턴을 포함한 5명의 연사가 연설을 하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면서 참으로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대통령을 포함한 5명의 연사가 서게 될 행사장 연단의 뒤쪽으로 똑같은 모양의 의자가, 그것도 단 4개만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사가 진행되면서 다섯 명의 연설에 왜 네 개의 의자만이 필요한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즉, 다섯명 중 한명의 자리는 식장의 연단이 되고, 연설이 끝나면 다음 연설자가 일어난 자리에 앉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통령을 위한 특별한 의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도 다른 연설자와 마찬가지로 연설을 마친 후 빈자리에 앉아 다음 연설을 경청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엄연한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그 누구도 그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을 이끄는 미국 대통령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것은 미국사회의 무질서가 아니라 '권위주의'의 옷을 벗은 진정한 '권위'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가장으로서의 권위, 스승으로서의 권위, 사회적 리더로서의 권위가 무시된다고 불평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한번 질문해 보자. 우리는 진정 권위의 상실을 염려하고 있는가? 혹시 아직도 '권위주의'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가장으로서, 스승으로서 그리고 사회의 리더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는가? 혹시 그저 그 자리에 걸맞는 대접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우리는 산업화시기의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성공적으로 민주화를 일궈낸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정치·사회 모든 분야에는 여전히 권위주의의 잔재가 남아있다. 우리는 아직도 진정한 '권위'보다는 '권위 있어 보이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그렇지만 분명히 염두에 둘 것은 진정한 '권위'는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능력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지 외면으로 치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겉모양에 집착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알맹이 없는 권위주의에 빠져버리게 된다. 이제부터라도 권위주의의 옷을 벗고 권위를 지켜야겠다. 아니 잃어버린 권위를 찾아야 하겠다.

 

/국회의원 정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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