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은 고대시대부터 인간의 생존수단이었고 역사적으로 널리 사용된 무기였다.
양궁은 고대시대의 인간들이 유능한 사냥꾼이 되도록 해 주었고 식량이나 안전한 은신처 등을 제공해 주었으며 세계문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윌리암 황제시대부터 수세기 동안 영국에서 양궁은 국가수호의 주요 무기였다. 1200년경 징기스칸을 비롯한 몽고인들은 양궁을 가지고 세계 정복을 시도했고 미국 식민지시대 양궁은 원주민들의 생존수단이었다. 총이나 대포같은 화력이 전쟁무기로써 양궁을 대체한 후 양궁은 스포츠로 활성화 되었다.
오늘날 알려진 양궁 토너먼트는 영국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에서는 17세기 초 지역 축제의 일부문으로 양궁 토너먼트 경기를 개최했다. 1900년경 양궁은 올림픽 경기에서 주요 경기였으나 그 후 국제적 경기규칙이 결정되지 않아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고 1972년까지 올림픽 경기에서 제외되어 왔다.
국제양궁협회(FITA)는 양궁의 국제기구로써 1931년 창립되었는데 양궁경기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왔고 정규화된 규칙을 정했다. 그후 1972년에 양궁은 올림픽 경기에서 다시 정규종목으로 채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양궁이 들어온 것은 1950년대 말 체육교사로 재직중이던 고 석봉근씨가 양궁을 새로운 스포츠 종목으로 개발하면서부터이다. 이후 한국양궁은 1964년 첫 국내대회를 실시했고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정상의 기량을 자랑하고 있다.
시드니로부터 드디어 금메달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이 양궁 여자 개인전에서 금, 은, 동메달을 모두 휩쓸었다. 스포츠 강국 한국의 새천년 첫번째 금메달의 주인공 윤미진은 대표팀 선배 김남순을 꺾고 금메달의 영광을 안았다. 정치경제적으로 우울한 국민에게 모처럼 즐거움을 선사한 쾌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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