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들이 죽음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기업이라고 생명체와 다를 바가 없다.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생명이지만, 일단 생명을 갖고 이 세상에 나왔다면 결국은 죽고 만다. 그러길래 노자(老子)는 “정신적 물질적으로 고통을 느끼게 하는 육신이 있는게 너무 부담스럽다. 육신이 사라진다면 내가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라고 이야기 했다.
막가는 사람이라도 빌어먹는 사람이라도 막상 죽을래 하면 얼굴색이 변하다. 저승의 환락세계도 이승의 똥밭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현실의 고통이 괴로워 도피하고자 하면서도 생명만은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죽지 않으려고 불사약을 구하려했던 사람들은 멍청했고, 향락에 빠지는 친구들은 비겁했고, 후세를 기약하는 친구들은 피곤했고, 종교에 귀의하는 친구들은 불확실했다.
사람들은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죽음을 생명의 끝으로 생각하여 연장하려 한다. 나의 것과 남의 것을 반드시 구분하여 내 것은 영원히 내것으로 삼으며 절대 남에게 넘겨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명이 유한한데도 내 명예, 내 재물, 내 지위만은 절대 영원히 보관하려 한다.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사라진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낫다. 없던 생명이 이 세상에 나왔듯 그 생명이 때가 되면 다시 원래 없던 곳으로 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내 것이 영원히 내 것이 아님을 알았어야 했다. 피고 지는 꽃처럼, 돌고 도는 사계절처럼, 인간이건 기업이건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도연명(陶淵明)이 생전에 써놓은 자신의 추도문을 보자.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 곳, 봉분만 우뚝 솟았다/ 주인 잃은 말은 고개 들어 울부짖고, 바람은 소슬하게 불어온다/ 어두운 방 닫히는 순간, 천년을 두고 아침 다시 맞지 못하리/ 죽음이 뭐 대수로우랴, 산과 언덕에 내 육신을 합치는 것일 뿐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퇴출 기업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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