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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미륵사지 金銅香爐

백제 무왕(武王)은 쇠잔해 가는 백제의 국운을 되살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고구려의 남진(南進)을 막기 위해 수나라에 조공을 바치면서 도움을 청했고 신라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신라 서쪽 변방을 빈번하게 침공하기도 했다.

 


특히 신라에 대한 경쟁의식이 강했던 무왕은 당시 신라가 경주에 황룡사를 짓자 이를 능가하는 미륵사를 익산 금마에 지었다. 미륵사의 전체 규모는 황룡사와 비슷했지만 강당은 황룡사의 그것보다 훨씬 큰 백제 최대의 사찰이었다. 황룡사는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때까지 왕실의 보호를 받는 호국사찰이었으나 서기 1238년 몽고침입때 불타버렸다. 미륵사도 백제가 멸망한후 몰락했으며 그후 명맥만 유지해오다가 조선 중기에 역시 폐사(廢寺)되고 말았다.

 


지금은 옛 절터에 국보 11호로 지정된 서쪽 석탑과 당간지주만 남아 있고 동쪽 석탑은 고증에 따라 새로 축조한 것이다.

 


미륵사지는 지난 80년부터 부여문화연구소가 집중적으로 예산을 투입하여 대대적으로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다. 일본사람들이 붕괴된 한쪽 면을 콘크리트로 때워 흉물스럽게 버티고  서 있는 서쪽 석탑도 해체 복원할 계획으로 있다. 그런 미륵사지에서 엊그제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향로가 출토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건물지 통로 시설등을 정비하다가 한 인부에 의해 발견된 이 향로는 지난 93년 충남 부여에서 출토된 국보 287호 백제금동향로와 맞먹는 귀중한 문화재로 평가된다고 한다.

 


문제는 이렇게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유물들을 어떻게 보존 관리하느냐에 있다. 현재 미륵사지내 유물전시관의 규모로 봐서는 국보급 문화재를 관리 하기에는 어딘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자칫 관리소홀로 귀중한 문화재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전문인력을 확충하고 전시관 규모도 확대하여 과학적인 보관체계를 갖춰야 할 것이다. 그일에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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