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던 얼굴에 남은 세월의 흔적이 다름 아닌 주름살이다. 누구나 어느 날 아침, 눈 밑의 작은 주름을 발견했을 때 당황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세월의 무상함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마음만은 청춘이라는 서글픈 위안을 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현대의학으로 주름살을 없애려 하지만 다림질을 통해 펴진 옷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시 쭈글쭈글해지듯 주름살 역시 세월이 감에 따라 다시 생기기 마련이다. 세월엔 장사가 없음을 알고 늙음에 순응하게 될 것이다.
고금을 통해 이런 늙음에 대한 탄식은 똑 같다. ‘한 손에 가시를 들고/또 한 손에 막대 들고/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하니/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우탁의 탄로가(歎老歌)다. 춘향전 백발가는 막대보다 더 강력한 도끼로 막는다. ‘우수(右手)에 도끼 들고/좌수(左手)에 가시들고/오는 백발 두드리며/가는 홍안(紅顔) 끌어 당겨’라고 읊었지만 떠나가는 젊음을 어쩔 수 없다 했다.
당나라 시인 이백의 과장스런 엄살은 극치를 보여준다. ‘흰 머리털이 삼천길(白髮三千丈)/근심으로 인하여 이처럼 길어졌네/알지 못해라 밝은 거울속/어디서 가을 서리를 얻었는고’라고 내뱉으며 세월의 무상함을 노래했다.
이렇듯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광음처럼 흐르지만 하지만 사람들의 욕심과 집착은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모르는 것 같다. 몸은 죽어 북망산의 공동묘지에 묻힐 것이 뻔한 일인데도 황금과 권력에 눈이 어두워 부정과 타협하고 욕심에 길을 잃고 삶의 어두운 죄업만 저지르며 늙어만 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늙고 죽음 앞둔 사람이라해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점점 많아지고 있는 노령인구를 위한 멋진 실버타운이 지자체중 처음으로 우리고장 김제시에 들어섰다. 모처럼 주름살 펴질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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