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23년 전인 1989년 7월 25일은 남원 두락리 고분군에서 전북대 박물관이 조사를 시작한 날이다. 고분군의 분포 범위와 연대를 파악하는 조사였다. 그런데 전북대 조사단은 1982년 남원 월산리 고분군 발굴조사(원광대)와 1988년 남원 건지리 고분군 발굴조사(전북대)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전라북도 동부지역 가야 문화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북지역 가야 문화의 성격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성에도 공감했다. 조사 결과 6세기경의 가야계 토기와 함께 무덤 만드는 방식에서 두락리 고분군의 독창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두락리 출토 원통모양그릇받침은 당시 1호분에서 출토되었다. 그릇받침은 삼국시대 백제, 신라, 가야지역에서 널리 쓰였던 기종이다. 그 위에는 대개 바닥이 둥근 항아리가 올려졌다.
두락리 1호분의 원통모양그릇받침은 항아리를 닮은 윗부분과 원통 모양의 중간 부분, 종을 닮은 아랫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곳곳에 삼각형과 사각형의 구멍(透窓)이 뚫려 있고, 세로 방향으로는 뱀 모양 세로장식이 부착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의 원류를 찾는다면 대가야의 그릇받침을 꼽을 수 있다. 대가야계 원통모양그릇받침은 다른 나라의 것에 비할 때 특히 안정감과 조형미가 뛰어났다. 그중에서도 두락리 1호분의 원통모양그릇받침은 균형미와 실루엣의 유연함에서 비교 대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원통모양그릇받침은 그 범상치 않은 생김새만큼이나 특수한 용도를 가졌을 것이다. 가야에는 삶을 위한 그릇과 죽음을 위한 그릇이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가야의 주거지 유적에서 발견되는 그릇과 무덤에서 출토되는 그릇의 종류가 다르다는 점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중 원통모양그릇받침이나 바리모양그릇받침, 긴목항아리처럼 무덤에 묻혔던 그릇은 화려한 문양과 다양한 장식을 가졌다. 또한 높은 온도에서 구워 표면이 매우 단단하고 회청색을 띄었다. 따라서 장례 의식과 같은 특별한 때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두락리 고분군을 만들었던 옛사람들이 백제와 가야 그리고 신라의 점이지대였던 전북 동부지역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했을까는 자못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문헌기록에서는 그들의 역사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직 조사되지 않은 그곳의 수많은 유적들에서 새로운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형제들에 앞서 세상 빛을 다시 본 두락리 1호분의 원통모양그릇받침이 우리의 관심을 재촉하는 듯하다.
/최경환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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