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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왕이 보던 어람용 의궤 - 비단 표지에 고급 종이 …조선시대 편찬 기술의 결정체

▲ '효장세자책례도감의궤' 중 반차도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행사가 있으면 그 과정과 결과를 빠짐없이 기록하여 의궤로 편찬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면 한 부의 의궤만 만든 것은 아니었다. 보통 다섯 부에서 아홉 부를 만든 것이다. 그 중 한 부는 반드시 왕이 보는 '어람용' 의궤로, 나머지는 행사와 관련된 중앙 관청이나 지방사고 보관용으로 만든 '분상용' 의궤였다. 한 행사 때 만들어진 의궤에는 같은 내용이 수록되었지만, 어람용 의궤는 왕이 보았던 의궤였기 때문에 분상용 의궤와는 다르게 특별하게 제작되었다.

 

우선 표지에서부터 어람용 의궤는 분상용 의궤와는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어람용 의궤의 표지는 초록색 비단을 사용하였다. 초록색 비단은 구름무늬, 봉황무늬, 연꽃무늬 등으로 짜여진 것도 있고 아무 무늬 없이 제작된 것도 있었다. 책의 가장자리에는 여러 장의 종이를 철하는 변철이라는 긴 막대와 같은 금속이 사용되었는데 변철은 고급 놋쇠로 만들었다. 이 변철은 머리가 둥근 박을못 5개로 고정하였고, 박을못도 역시 국화 모양의 판으로 고정하였다.

 

어람용 의궤의 종이는 초주지라는 고급 종이를 사용하였다. 사실 초주지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방법이 전해지지 않아 현재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현재 남아 있는 의궤를 통해 본다면 초주지는 다른 종이에 비하면 매우 두껍고 발색이 잘되며 오랜 세월이 지나도 쉽게 변색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의궤 중에는 만든 지 300년이 지난 것도 있는데 이를 보면 바로 얼마 전에 제작된 것이라도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여서 초주지의 질이 얼마나 좋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이에 비하면 분상용 의궤의 표지는 베로 만들고, 초주지보다는 질이 떨어지는 저주지를 사용하였다.

 

행사의 내용을 기록한 의궤의 속지 역시 어람용 의궤는 분상용 의궤와는 달리 제작되었다. 우선 속지의 각 면에는 붉은 색 테두리와 세로 줄이 그어져 있는데 이를 인찰선(印札線)이라 한다. 그 간격과 굵기가 일정하여 마치 판으로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조선시대 그림을 담당한 관청인 도화서 화원들이 일일이 손으로 그은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글자도 당시 공식문서나 외교문서의 작성을 담당한 사자관이 해서체로 단정하게 써내려갔다. 수백 페이지에서 많게는 만 페이지가 넘어가는 어람용 의궤의 인찰선과 글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는 것을 보면 어람용 의궤 제작에 들어가는 공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림 역시, 분상용 의궤가 반복되는 인물이나 기물은 도장으로 찍고 일부 그림이나 색채는 생략한 반면, 어람용 의궤는 도화서 화원들이 반복되는 인물을 일일이 손으로 그리고 색상 또한 선명하게 채색하였다.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의 반차도에는 등장 인물이 총 1299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많은 인물을 도화서 화원들이 일일이 붓으로 그린 것이다.

 

이렇듯 어람용 의궤는 그 재료에서 제작 방식에 이르기까지 분상용 의궤와는 달리 많은 공력을 들어 정성껏 제작되었다. 즉, 어람용 의궤는 조선시대 각 분야의 최고의 역량을 보여준 결정체였던 것이다.

 

황지현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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