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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대한제국 국새 - 치욕의 역사 모두 기억하는 '황제의 상징'

 

1897년 10월12일(음력 9월17일) 고종은 환구단에서 천지에 제사를 올리고 대한제국(大韓帝國)의 황제에 등극했다. 이때의 의례를 기록한 책이 '대례의궤'다. 의궤에는 황제에 오르는 일에 대한 논의과정, 의례의 진행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국새를 제작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국새는 황제를 상징하는 물건이었기에 모든 의례에 황제와 함께 하였고, 황제의 옆 자리에는 항상 국새를 올려놓는 보안이라는 상이 놓여 있었다.

 

현재 남아있는 국새는 모두 3개다. 대한제국 이전에도 국새가 만들어졌고 사용되었지만 대한제국의 선포와 더불어 모두 폐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대한제국의 국새는 우리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1897년 이후 대한제국의 국새는 여러 용도에 맞게 제작되어 사용됐다. 그러다가 1910년 일제에 병합되면서 국새는 조선총독부를 거쳐 일본으로 반출됐다. 일본이 패망한 뒤 1946년 해방 1주년 기념식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국새들은 맥아더를 통해 우리나라에 돌아왔다. 이때 모두 6개의 국새가 반환되었고 1948년에 전시회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을 거치면서 이중 3개는 없어지고 3개의 국새만이 국립박물관으로 이관되어 보존되게 되었다. 국새를 둘러싼 여러 사건들은 그 자체로 우리의 현대사이기도 하다.

 

지금도 고궁박물관에는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를 비롯한 왕실, 황실의 보인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어보는 의례에 사용되었던 상징물이다. 실제 나라의 행정에 쓰인 국새는 대한제국의 국새뿐이며, 실제 이 국새가 찍혀진 문서들이 많이 남아 있다. 제고지보는 황제의 명령을 뜻하는 국새로, 칙임관으로 분류되는 고위 관리들의 임명장에 찍었다. 대원수보는 무관들의 임명장과 군사 명령문서에 찍었다. 그리고 칙명지보는 하위 관리들의 임명장과 황제의 명령문서에 찍었다. 이렇게 대한제국의 국새는 길지 않았지만 대한제국의 역사와 늘 함께 했던 대한제국의 상징이었다.

 

대례의궤를 통해 국새의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제고지보는 황금으로 주조하고 금도금을 하였고, 무게는 10근 14량이며 용모양의 꼭지를 장식하였다. 대원수보와 칙명지보는 은으로 주조하고 금도금하여 만들었다. 국새에 새겨진 글씨는 홍문관 학사인 민병석이 썼다. 국새는 만드는 데에는 전흥길 등의 보장을 비롯하여 다양한 장인들이 참여하였으며, 당대 최고의 기술과 자원들이 동원되었다.

 

 

이문현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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