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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산 공부, 그리고 고통의 다른 이름 '판소리'] 소리꾼 득음 위한 처절한 노력에 반했어요

영국 런던대 정치학도 / 한국전통음악 접한 뒤 판소리 공부하러 유학

▲ ‘산 공부’ 모습.

나는 원래 영국의 런던대학교 SOAS(소아스, School of Oriental & African studies)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던 정치학도다. 어느 날 아시아 정치에 관한 수업을 듣던 중 한국의 전통음악을 접하게 됐다. 당시 런던에서 송순섭 명창과 이자람 씨의 적벽가를 관람할 수 있는 계기도 연이어 생겼다. 언어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전해지는 격렬한 감정에 전율을 느꼈다. 나와 판소리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나는 소리꾼들의 표현력에 반했고, ‘판소리’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창작 판소리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게 됐다. 현재 박사과정 1년을 마치고 현장 연구를 위해 한국에 와 있다. 판소리를 직접 배우고 소리꾼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며 판소리를 연구하고 있는데, 그들을 통해 가장 먼저 놀라고 인상 깊었던 부분이 바로 처절하고도 간절한 노력,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공부 방식’이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른바 ‘산 공부’였다.

 

‘산 공부’는 판소리를 배우는 과정의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산 공부’는 옛날 명창들이 해오던 ‘백일 공부’다. 이름만으로도 금세 짐작할 수 있겠지만 자기 소리를 얻는 득음을 위해 백일 동안 절이나 동굴에 살면서 종일 혼자서 소리 공부를 한다. 이 과정에서 소리꾼들이 메아리와 폭포 소리를 이기기 위해 피를 토해가며 노력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만으로도 판소리를 배우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백일 공부에 들어가는 소리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아무런 수입 없이 백일간 공부에만 매달리기가 힘든 까닭이다. 그래서 요즘 소리꾼은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 산에 들어가서 소리 공부를 한다. 옛날 명창들처럼 피를 토할 때까지 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산 공부도 만만치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나는 지난 겨울, 처음으로 ‘소리 몸살’이란 단어를 알게 됐다. 나 역시 판소리를 배우고 있는 터라, 연습을 많이 하면서부터 갑자기 온몸이 아팠다. 처음에 소리 연습을 많이 하면 목이 아프기 시작한다. 그러면 계속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배에 힘을 주게 된다. 배에 힘을 주게 되면 배 근육도 아프기 시작하고 배 대신 등에 힘을 주고 결국 등까지 온 몸이 아프기 때문에 ‘소리 몸살’을 앓게 된다.

 

‘산 공부’를 하면서 응당 겪게 되는 것이 목이 쉬는 일이다. 목은 소리꾼에게는 생명이다. 그래서 감기에 걸려 목이 쉬면 절대로 목을 사용하면 안 된다. 하지만 공부 때문에 목이 쉰다면 계속 해야 한다. 쉬었던 목을 극복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야 그 다음에 더 좋은 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운동할 때도 근육이 아플 때가 있다. 그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근육이 풀릴 때까지 계속 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더 강한 근육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쉰 목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훈련해야 이후 다섯 시간의 완창 공연을 할 수 있다.

 

산에 들어가 물 옆에서 연습하는 이유도 따로 있다. 보통 실내 연습을 하면 목이 빨리 마르기 때문에 하루 종일 연습을 하려면 물을 많이 마셔야한다. 강변이나 폭포 근처에서 연습을 하면 습도가 높아 물을 많이 마시지 않아도 목이 상하지 않고 오래 연습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소리꾼들이 매년 적어도 한 번씩 산 공부에 들어간다.

 

‘산 공부’ 이야기만 들어도 판소리를 배우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낄 수 있다. 소리에만 집중하고 몇 십년간 공부한 사람을 진짜 ‘소리꾼’이라고 부를 수 있기에 판소리란 예술이 더욱 귀하다. 이런 생활을 선택한 소리꾼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그리고 나처럼 그저 판소리가 좋아서 ‘산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다녔던 ‘산 공부’에는 초등학생부터 예순을 넘은 사람까지 다양한 나이대를 만날 수 있었다. 힘든 과정을 직업이 아닌 그저 판소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판소리가 매우 대단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일반인이 판소리를 배우고 즐길 수 있다면, 판소리의 미래가 더욱더 밝다고 믿는다.

▲ 안나 예이츠. 영국 런던대 한국음악연구 박사과정

※이 칼럼은 오는 10월7일~11일 열리는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의 ‘영국 소녀 안나의 Open your Sori!(오픈 유어 소리)’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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