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체득한 예능 유일한 텍스트 / 오랜 수련 쌓는 힘겨운 과정 같아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라는 질문을 받으면 농악은 실기인이고 판소리는 연구자라고 답한다. 한 가지를 매진해도 부족할 마당에 무슨 욕심으로 두 가지나 하고 있다. 힘들고 뚜렷하게 잘 하는 게 없지만 할 얘기는 생긴다. 농악인과 판소리인의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무대 위 같은 듯 다른 문화
고독하게 혼자 서야 하는 게 소리판이다.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잘 되어도, 못 되어도 결국은 소리꾼 책임이다. 고수는 길동무가 되어 줄 따름이다. 무대에서 관객의 냉엄한 평가를 온전히 혼자 맞이해야 한다. 경쟁도 피할 수 없다. 스승이냐 제자냐 하는 것조차 잠시 접어두게 된다. 많은 판소리인은 외롭고 무섭다고 한다.
어느 중견 명창이 “제자고 후배라도 빼어난 소리하는 걸 들으면 긴장하고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오정숙 명창도 “하루 연습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 안 하면 옆 사람이 알고, 삼일 안하면 온 세상이 다 안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긴장을 늦출 수 없고 연습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일상이 보이는 듯하다.
‘사진소리’라는 말이 있다. 스승을 곧이곧대로 흉내내는 소리를 이른다. 판소리인은 전통적으로 사진소리를 ‘지양’했다고 한다. 스승을 계승하되 자신만의 소리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판소리는 개인예술이다. 자신의 색깔로 존재가치를 증명한다.
몇 년 전 어느 지역 축제에서 농악공연이 시작되기 전, 상쇠는 두 번째 꽹과리잽이인 부쇠와 장고잽이의 우두머리인 수장고, 북잽이의 수장인 수북 그리고 소고수의 우두머리인 수소고와 양반, 각시 등 잡색의 대장인 대포수도 불렀다. 공연의 순서와 강조할 부분, 유념할 내용 등을 얘기했다. 상쇠와 나눈 이야기를 부쇠, 수장고, 수북, 수소고, 대포수가 각 분야에 전했다. 공연 중간 중간에도 상쇠는 눈짓과 손짓으로 신호를 했다. 현장 상황에 맞게 길이와 내용을 조정해가며 공연은 마무리됐다.
농악판은 ‘네가 없으면 안 되는 판’이다. 집단예술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난 상쇠도 장고잽이나 북잽이, 소고잽이 등이 없으면 훌륭한 농악판을 만들 수가 없다. 협동과 화합의 속성이 배어 있다.
농악도 개인간 경쟁이 없지는 않다. 예전 농악판에서는 상쇠가 어리바리하면 지나가던 다른 동네 상쇠가 꽹과리를 치며 판에 들어가 기존 상쇠를 쫓아내도 아무소리 못하곤 했다고 한다. 수장고, 수소고가 되려는 경쟁은 두말할 것도 없다. 다만 형태적으로 싫건 좋건 함께해야 하는 특징이 있다.
△국악인으로 다른 듯 같은 문화
판소리에서나 농악에서나 스승의 존재감은 대단히 크다. 문헌이나 악보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스승은 예술을 담고 있는 유일한 존재다. 스승이 체득한 예능은 제자가 학습할 수 있는 유일한 텍스트다. 구전심수로 오랜 세월 학습하다보면 부모자식 같은 정도 쌓인다. 판소리 사제간이나 농악의 사제간이나 부모자식처럼 되는 경우가 많다.
농악의 연주기교 중에 겹소리를 내는 것이 있다. 꽹과리는 ‘지갠’, 장고는 ‘구궁 또는 기닥’의 소리다. 한 번 칠 때 ‘지’와 ‘갠’, ‘구’와 ‘궁’ 소리가 함께 나야 한다. 또한 두 소리의 간격을 띄어 치고 붙여 치고,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하지만 정확한 소리를 내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농악인들 사이에서는 일명 ‘구궁만타’라 하여 하루에 ‘구궁’을 만 번씩 쳐야 제대로 된 ‘구궁’소리를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 3~4년 정도의 수련이 필요하다. 가락의 기교뿐만 아니라 머리에 쓰는 상모의 기교도 필요하다. 긴 농악 판굿의 순서도 익혀야 한다. 각 악기별 개인놀이도 배워야 한다. 농악 역시 오랜 수련이 필요하다.
학위 논문을 쓰기위해 지난 2009년부터 4년 반 정도 판소리인을 취재했다. 조사가 끝나갈 무렵 질문은 한 가지로 모아졌다. ‘왜 판소리를 하는가?’였다. 부귀영화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수련이 쉬운 것도 아닌데 왜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리고 당연했다. 때론 흔들리고 이따금 한 눈도 팔지만 그래도 이 삶을 계속하는 것은 판소리가, 농악이 다른 어떤 것보다 좋기 때문이었다. 판소리인과 농악인의 본질적인 공통점은 국악인으로서의 삶을 사랑하고 힘들어도 그 길을 간다는 점이었다.
※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2015.10.7.~10.11)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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