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공단은 낡고 오래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고단한 일터와 낙후된 삶터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살고 있는 사람, 일하는 사람 말고는 그 누구도 찾지 않았다. 피상적으로는 내일의 일보다 과거의 기억이 더 깊게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 팔복공단에 지난 3월 미술관이 들어섰다. 50년이 넘는 공단 역사 이래 처음 들어서는 문화시설이다. 바로 공단 철길 중간 쯤에 위치한 ‘팔복예술공장’. 지난 5개월 동안 무려 3만여명이 미술관을 찾았다.
“시장님, 우리 팔복동은 버려진 동네지요? 우리들은 전주사람도 아니지요? 전주 전체가 우리 팔복동 공단 땜시 50년 넘게 먹고 산거 알지요? 팔복동에서 돈 벌어 집도 사고 애들 학교도 보내고 다들 했는데. 근데 우리 팔복동 사는 사람들은 뭔가요. 전주사람들 먹고 남은 쓰레기는 죄다 팔복동으로 퍼 넘기고...”
2014년 지난 임기 초 팔복동 주민들의 원망이었다. 서운함과 서러움,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손도 잡아드리고 꼭 안아드렸다. 팔복예술공장은 그렇게 시작됐다.
2014년 가을, 삼고초려로 전국적인 도시재생 전문가 10여분을 전주로 초대했다. 현재 장소인 팔복동과 선미촌, 법원검찰청사, 종합경기장 등을 보여드렸고 긴 토론이 이어졌다. 전주가 왜 그 공간들에 주목하는지, 왜 문화재생을 고집하는지, 그 공간들은 어떤 기억이 있는지. 그 토론의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팔복예술공장이다.
팔복예술공장은 가칭 팔복문화지구의 한 부분이다. 팔복문화지구는 세가지 프로젝트로 진행된다. 잡풀과 각종 쓰레기로 버려진 철길, 철길 왼쪽으로 흐르는 지저분하고 말라버린 하천, 산업화와 노동인권의 짙은 먹구름 같은 폐공장을 자기 색깔대로 재생하고 하나의 컨셉으로 잇는 것이다. 즉, 물고기가 돌아오는 생태하천, 예술기찻길, 팔복예술공장과 예술교육센터 조성사업이다. 현재 설계를 마친 금학천은 2년 후면 생태하천으로 거듭난다. 항상 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돌아올 것이다. 생태와 디자인이 결합해서 심미적이면서도 생태적인 명소가 될 것이다. 팔복철길은 공단의 물류 때문에 지금도 기차가 다닌다. 아직 협의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주말에는 음악도 듣고 공연도 보는 예술열차를 띄우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아울러 철도 옆 이팝나무를 잘 살리고 인접 2차선 도로는 1차선 일방으로 전환한다. 그러면 남는 공간이 생기는데 그곳에 아름다운 조경과 걷고 싶은 보행로가 만들어 질 것이다. 끝으로 팔복예술공장이다. 이 팔복예술공장은 황순우 총괄감독의 열정을 빼놓을 수가 없다. 2014년 문화재생을 꿈꾸며 초대했던 전문가 중 한 분이다. 그 인연이 오늘날 팔복예술공장을 있게 했다. 이 칼럼을 통해 황순우 교수과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팔복동 주민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오늘도 팔복예술공장에 가면 순박한 웃음을 띤 바리스타 팔복동 주민들을 만난다. 진지한 미소로 작품들을 해설하는 팔복동 주민 도슨트를 만난다. 4년 전 팔복동은 버려진 곳이라고 울먹였던 주민 중 한사람일 지도 모른다. 팔복문화지구는 공간을 예쁘게 꾸미는 소위 관광명소 조성사업이 아니다. 팔복동이 가진 기억의 자산에 전문가와 주민들의 손길을 더해 더 자부심 있는 삶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친 노동을 마친 누군가의 아빠나 엄마가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시민들이 아이들과 함께 또 다른 전주다움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팔복동이 팔복동답게, 전주가 전주답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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